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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Mar 04. 2020

“노력하지 마. Don’t try.”

서른아홉, 취업을 향한 고군분투기 1편

이것은 새드엔딩이 될지 해피엔딩이 될지 모를 나의 취업 도전기, 그 첫번째 이야기이다.      




서재랄 것도 없는, 네평 남짓한 방에 앉아 손가락 끝에 우주의 기운을 모은다. 연주하듯 타닥타닥 키보드를 친다. 노트북 화면에 희멀건 하게 띄워져 있는 것은 자기소개서. A4용지 한두 장에 성장 과정, 지원동기, 성격적 장단점, 업무경력, 장래 계획과 입사 후 포부까지 적으라는 게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어떻게든 ‘자신’를 욱여넣어보려고 씨름을 한다. 누구도 관심 없는 혼자만의 싸움.      


어디선가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직장을 걷어차고 나와  좋다.’라는 비아냥 섞인 환청이 들린다. 이어 돌아가고 싶어?’라고 물음이 들려온다.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나를 저주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질문은 입에도 담지 말아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다. 10년전 회사를 떠난 동기가 아직까지도 회사가 있는 쪽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었는데 나또한 그 심정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열 걸음을 걸어 매일 출근하는 나의 사무실, 동료로는 달팀장과 밤부장이 있다.



그러나 내 기분과는 별개로,

지금  앞에 놓인 것은 실업이라는 엄연한 현실이다.


취업 준비 초 구인공고 사이트에 계약직과 기간제라는 말이 흔해서 놀랐다. 우리 사회는 기간제와 계약직이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구나! 스무한살 회사에 입사해 1년간 계약직으로 살아보긴 했으나 꽤 오랫동안 그것은 나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최근 블랙독이라는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았는데 내 일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기간제나 계약직이라는 말에 냉정하고 사무적인 기운이 잔뜩 서려 있다는 것을... 아니 나는 지금 그것조차 따질 처지가 아니니 요란한 엄살이라도 떨어보아야 뱃속이 좀더 편안해 질까?


이력서 학력사항에 쓸 내용은 두 줄 뿐이다. 추가로 적을 것이라곤 대학을 다니던 중 입사해 16년간 눌러앉아 있었던 회사 이름과 누구나 가지고 있을 듯한 자격증 두 개가 전부다. 내 이력이 이렇게나 단출하다니. 사람은 자고로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을걸 그랬다. 애교라도 얹어 보자는 마음으로 얼마 전 수료한 시각디자인 과정에 대한 내용도 넣어 본다. 이력서 작성이 완료되고 자기소개서까지 첨부해 입사지원 버튼을 누른 후에는 자조섞인 푸념을 한다. 스펙이 차고 넘치는 젊은 인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뽑겠어?’      

나와 함께 일터로 와준 동료  낮잠 자는 '밤부장님'


하지만 취업에 도전하는 패기와 포부 만큼은 화려한 스펙에 지지 않는다. ‘하루에 한 회사’라는 목표를 세워두고 입사 지원 현황을 노트에 기록해 나가고 있다. 세어보니 지금까지 일곱 곳에 지원했다. 분야는 사회복지, 교육, 소셜 커뮤니티 쪽이다. 지원처를 정하는 기준은 한 가지였다. 즐겁게, 의미를 담아 일할  있는 곳일 .      


고여서 썩어버린 물에 비유해야 적당할 이전 회사에서는 즐거움도, 보람도, 자율성도, 성취감도 바닥이었다. 16년간 그곳에서 절인 장아찌처럼 살았으니 ‘가슴 뛰는 일’에 대한 목마름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은 밥벌이는 작게나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많이 벌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최저시급만 주면 발에 고성능 부스터를 달고 어디든 달려갈 참이다.


허나 결정적인 문제는 이런 나를 찾아주는 곳이 없는 것이다. 퇴사만 하면 오라는 ,  곳이 넘쳐 발바닥에 땀이   알았는데 그것은 순전히  희망사항이었다. 자신감은 창피하니까 아는척도 하지 말라며  멀리 도망쳐버렸다.  지원한 회사들은 시종일관 응답이 없다.

나도 다시 무언가에 소속될 수 있는 날이 올까?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라는 문구는 아니더라도     


귀하께서 보유하신 자질과 능력은 충분히 인지하였으나, 회사 여건상 함께   없게 되어 아쉽습니다. 가시는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라는 배려 깊은 문구가 적힌 회신을 기다렸다. 하지만 뼈아프게도 내 입사 지원서는 소위 말해 ‘읽씹’을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여러번이나. 채용공고를 낸 회사 입장에서는 일일이 대답을 해주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좋아한다는 표현을 했는데 단번에 거절당한 것처럼 무안해 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조금 더 나아가면 체념에 익숙해  지는 시기도 오겠지.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시작하며 멘탈이 가출하려던 와중,  정신줄을 부여잡고 박연준 작가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라는 책을 보았다.

간절함을 품고 행한 뒤, 존재에 내리는 것.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지나치게 애를 쓰는 일은 사람을 상하게 한다. 찰스 부코스키가 한 명언이 있다.
“노력하지 마. Don’t try.”  
안심되는 말 아닌가? 나는 그의 말을 안달복달하지 말고 순리에 맞게 살라. 지나치게 애쓰다 상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사람이 상한다는 건 독해지고 비루해진다는 거다. 무엇이든 적당한 거리에서 숨 쉬듯 받아들이는 자세, ‘되는 대로 즐겁게’ 해보려는 자세가 좋다. 숨 쉬듯 자연스럽다는 것.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 군대에서나 통용될 법한 이 말은 끔찍하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다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안되니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니 ‘자살 각’ 같은, 끔찍한 말이 유행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생긴 모습 그대로 사는 게 아닐까?                 


눈의 피로함을 느끼며 창밖을 내다보니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을 보며 집을 나서도  곳이 마땅히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목받지 않은 방관자이고 싶었으나  편으로는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주지않는게 괜히 섭섭한 날이 있다. 오늘은 아마도 그런 날인가. 모두에게서 대답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닿지 않더라도,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가난하고 찌질한 글을 잔뜩 써서 이 세상에 투척해 버려야겠다.

부디 너무 과한 노력은 하지 말기로. 'Don't 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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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TV N 드라마 '블랙독' 장면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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