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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Jan 04. 2022

새해 변기 소동

1 1, 그러니까 신정에 저는 소파에 늘어져 위쳐를 보고 있었어요. 저녁 여섯 시 무렵 카톡 메시지가 왔어요. 책방 일을 하는 중에 어지간하면 연락을 하지 않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콩사원이 보낸 것이었죠.

"탱님, 화장실 변기가 막힌 것 같아요."


마감을 끝내고 집에 가기  잠깐 화장실에 렀다 이미 막혀있는 변기를 발견하고 연락한 것이었어요.

'아, 하필이면 새해 첫날 이런 일이...'

콩사원에게 내일 해결할 테니 어서 데굴데굴 굴러 집으로 가라고 하고 다시 넷플릭스의 세계에 빠졌고 막힌 변기 생각은 조각나 흩어졌어요.


1 2 일요일, 평소처럼 출근해 바닥청소를 하기 위해 대걸레를 가지러 화장실로 향했어요. 걸레를 손에 잡았는데 뭔가 음산한 기운이. 시선은 이내 뚜껑이 닫혀있는 변기에 머물렀어요. 번뜩 어제 일이 기억을 스쳤고, 미간을 찌푸리며 뚜껑을 열었더니 피하고 싶은 갈색 현실이 눈앞에 드러났어요. '내려갈 거야. 내려갈 거야'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변기 레버를 힘주어 눌렀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레버를 누르면 누를수록 변기는 부글부글 거리며 화를 냈어요.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생각. '책방 근처에는 공중 화장실이 없으니 손님들더러 풍산역 화장실을 가라고 해야 하나 책방 문을 닫아야 하나 화장실 이용이 안된다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 순간 첫 번째로 생각난 사람은 그래도 내 평생 반려인 홍님. 전화를 했더니 역시 찬물 홍선생답게 혼자서 해결하라고 하네요. 일요일이라 철물점도 문을 닫았을 듯하고 다음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건물주님과 우리의 은선님. 두 사람에게 뚫어뻥이 있느냐 문자를 보냈어요. 거의 동시에 두 사람에게 긍정의 답이 왔고, 뚫어뻥을 들고 공원을 건너는 은선님 모습을 상상하니 지켜주지못해미안해 일 것 같아 건물주님께 도움을 청했어요.


2022년이 나한테  그러는 거지 뚫을  있을까 발을 구르는 와중 책방 오픈 시간인 1시가 되었어요. 정확히 시간을 맞춰 행님(앵무새를 기르시는 책방 친구) 단골이지만 자주 얘기를 나눠   없는 청년 손님 한분이 와버렸네요. 마침 건물주님이 소중한 뚫어뻥을 가져오셨고  사이 이야기를 들은 행님은 자신이 해결하겠다며 손님 커피를 내리는 사이 화장실로 가버리셨어요. 화장실에 다시 갔을  행님은  막힌 무언가를 시원하게 뚫어버리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나 변기 좀 뚫어봤어." ㅋㅋ

저는 운 좋게 변기가 잘 내려가는 집에서 살았던 것인지 40년 인생 중 한 번도 뚫어뻥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분명 헤맸을 것인데 행님이 한방에 해결해준 것이죠!


이제 그만 화장실에서 나오라고 행님한테 소리소리를 질렀는데 물청소까지 깨끗하게 하고 있는 행님! 제발 그러지 말라고 자꾸 소리를 지르니 행님 대사가   압권이에요.

"우리가 남이가."

고난이도 문제를 해결하고 책상에  앉으니 콩사원, 은선님, 홍님한테 상황을 묻는 메시지가 와있어요. 웃음이 났어요. 책방 변기 걱정까지 해주는  사람들 ㅋㅋ. 콩사원은    떠서 집에 뚫어뻥 여분이 있으니 가지고 오겠대요.


파라솔이 날아가고, 싱크대 수도가 터져 책방에 홍수가 일어나고, 변기가 막히고 책방의 일상은 항상 스펙터클 해요. 누군가 책방을 한다면 낭만이 20%, 현실이 80%라고 말해줘야 할까요. 아무튼 새해를 맞아 액땜을 크게 제대로 한 것 같죠. 그런 거라면, 그런 거라면 참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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