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님 Dec 09. 2021

연준에게.

박연준 시인 북토크 후기


박연준 시인을 향한 팬심으로 씁니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 날, 오래 좋아한 사람과 차를 타고 가던 중 요의를 느낀 당신. 그때 당신에게 닥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변을 보는 일이었지. 그건 눈앞에서 작은 불씨가 옆으로 번져갈 때 커지기전에 빠르게 꺼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야. 달리던 차를 세우고, 좋아하던 남자에게 보초를 서라고 하고, 하얀 눈밭 위에 엉덩이를 까고 길고 긴 시간 오줌을 싸야했던 당신. 그날 밤 연준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나는 그걸 똑같이 경험해서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라는 책을 읽고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지. 나온다는 오줌을 참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오줌 이야기를 글로 가장 잘 쓰는, 나처럼 플라타너스 나무 송충이를 싫어하다 못해 무서워하는 몸집이 작은 시인에게 말이야.


유튜브에서 본 당신은 종알종알 말도 잘했고, 패션감각이 뛰어나고 손톱 가꾸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어.

다른 사람이 말할 때 가만히 기다려주고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 파주에 살며 하얀 고양이 당주를 기르고, 꾸준히 발레를 하는 사람. 책방을 열며 1번으로 보고 싶은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는데 어쩌다 1년 6개월 만에 북 토크 초청 메일을 썼지 뭐야. 너무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였기에 회신을 별로 기대하지 않은 메일을. 그런데 답장은 이틀도 지나지 않아 도착했어. 거기엔 이런 문장과 다정한 말들이 연달아 적혀 있었어.

"다 괜찮습니다."


북 토크 모집 공지 2시간 만에 마감. 잡아놓은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왔고 드디어 그날이 왔어. 행사 30분 전, 설레는 기운을 가진 처음 본 손님들과 글방 친구들과 책상 배치를 막 끝냈을 때 당신이 들어왔어. 체크무늬 재킷에 보드라워 보이는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서. 다람쥐처럼 총총 걸어와 내가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지. 나는 그때만 해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부웅 떠있었던 것 같아. 손님들은 시인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당신은 또 손님들을 바라보고. 종알종알 이야기를 시작했어. 당신이 시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시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용기가 피어올랐어.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시를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연준이 막 성인이 되었을 무렵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한 것, 그것이 시였다는 것, 그를 아끼던 스승이 있었다는 것, 그는 누군가의 끊임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았음이 분명하다는 것. 연준은 재능을 타고나 빛을 본 시인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 끝에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어. 듣는 내내 노력 없이 무언가를 탐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든 사람이 이른 경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지. 여러 좋은 말들을 메모장에 적었는데, 또렷이 기억에 남던 말이 있었어.

"괜찮아요. 우리한텐 퇴고라는 무기가 있잖아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힘이 들어갈 때 이 말을 기억해야지,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연준을 떠올려야지.


우기쌤은 시를 낭독했고, 저마다 궁금한 것들을 물었고,  연준은 최선을 다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어. 글방친구 현정님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북 토크가 끝나고 사인을 해야 할 타이밍,

"화장실  다녀올게요."라고 말해서  사랑스럽던 연준. 동네책방에 오면 사야한다며 책을 고르는 시인을 뒤로하고 손님들은 아쉬움이 남는 표정으로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어. 백지, 콩님과 남아 연준을 향해 요즘 무얼 먹고 지내냐, 가장  고민은 뭐냐, 파주에서 사는  어떠냐 시답지 않은 질문을   있어 좋았어. 택시에 오를 때까지 방글방글 웃으며 다정했던 시인. 낮에 꽃집에서   눈사람이 들어있는 오르골을 보며 연신 귀엽다고 말했는데, 돌아가는  그걸 가방에 넣어주지 못해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이 났어. 그것만 빼면 모든게 완벽했던 !


북토크가 끝난 후 먼저 메세지를 보내주고, 인친이 되어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연준. 왜 당신은 이름마저 하필이면 연준일까. 당신은 나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왜 당신과 친구가 되어버린 느낌일까. 연준을 친구라고 부르면 사람들이 날 보며 허풍쟁이라고 놀릴까. 나는 그래도 당신과 잊을만하면 만나 안부를 물어보고 싶어. 그런 날이 오면 또다시 물어봐야지.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고. 무얼 먹고 사냐고 말이야.




덧.) 글방에 올라오는 저마다의 후기도 다 달라서 또 좋았습니다! 이때부터 같은 걸보고 다른 게 말하는 글방 식구들에게도 더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던것 같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연천에 자리한 책방 오늘과 내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