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선스(Athens), 조지아주
에선스는 미국의 작은 도시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1시간 30분 가량 가면 도착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미국 최초의 주립대이자 명문인 조지아대(UGA, University of Georgia)다. 특히 조지아대 풋볼팀 ‘불독스’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대학 풋볼팀으로 꼽힌다. 시민 상당수가 자신의 집과 차를 조지아대, 그리고 불독스 상징 마크로 꾸밀 정도다.
에선스 전체 인구는 약 13만명 가량으로 한국으로 치면 경북 김천이나 충북 제천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에선스는 굳이 여행지로 찾는 도시는 아니라는 의미다.
그리스 아테네와 동일한 영어 철자 Athens를 쓰는 곳이 미국에 있을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한 적 없다.(그런데 왜 같은 Athens인데 아테네는 아테네고 에선스는 에선스인거지?) 그리고 여행지로 유명한 아테네도 아직 못 가봤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 작은 도시에 1년간 살게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어느 날 미국 연수를 결정한 뒤 드넓은 미국 영토 안에서 생활비가 너무 비싸지 않은 지역, 방문 연구자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마련돼있는 학교를 찾다보니 에선스에 있는 조지아대를 알게됐다. 그리고 학교 등록, 비자 발급, 이사 등 몇 가지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뒤 에선스에 살고 있는 13만명 중 한 명으로 잠시 머무르는 중이다.
이제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의 입장에서 에선스에 대해 다시 정의내려야겠다. 에선스는 굳이 여행지로 찾을 만한 도시는 아니지만 거주지로서는 꽤 매력적인 곳이다. 에선스만의 독특함이 묻어나오는 축제가 시시때때로 열리면 시민들은 있는 힘껏 이 도시를 즐긴다.
풋볼팀 불독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 주변은 물론 도시 곳곳에 바베큐와 맥주, 각종 음식이 깔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권하면서 함께 불독스를 응원한다.
10월 어느 주말엔 포치 페스트(Porch Fest)가 열리기도 했다. 포치 페스트는 말 그대로 현관 앞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다. 도심쪽 각 마을의 여러 가정집 앞 현관에서 다양한 뮤지션들이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시민들은 누군가는 멋지게, 누군가는 익살스럽게 차려 입고 이 집 저 집으로 이동하며 신나게 음악을 즐겼다.
나름 에선스 13만명 중 한 명으로서 나도 뭔가 이곳만의 친근한 축제의 일원이 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풋볼 경기를 뛸 수도 없고 남의 집 현관에서 기타를 칠 수도 없는데 그럼 뭐가 있을까?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매년 열리는 에선스 마라톤 대회, ‘AthHalf’.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대회 명칭이 마라톤일 뿐이지 내가 참가신청을 한건 5km였다. 마라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민망하고 5km 달리기랄까.
에선스 마라톤은 딱 두 가지로만 구성된다. 하프 마라톤과 5km 달리기. 하프는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어서 감히 신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남은 선택지가 5km뿐이었다.
“5km는 너무 쉬운데. 나는 7km는 편하게 뛰고 10km 정도는 뛰어야 달리는 기분이 날 것 같은데”
함께 참여하기로 한 남편에게 5km 달리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잘난척을 해댔다. 사실 잘난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5km는 너무 짧고 10km 정도가 돼야 나에게 딱 맞는 거리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으니까.
20대~30대 초반만 해도 마라톤 10km 코스에 종종 나갔고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무난하게 완주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아침에 폴댄스 수업을 받은 뒤 곧바로 마라톤 출발 장소로 이동해 10km를 달린 적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건 과거일 뿐, 현재가 아니었다.
연습 첫 날, 타운하우스 단지를 한 바퀴 돌자마자 대자로 뻗어버렸다. 겨우 1km 남짓 뛰었는데 이렇게 힘들다고? 그도 그럴 것이 몇 년간 달리기는 커녕 운동 자체를 전혀 하지 않았다. 운동 대신 늘 내 곁에 있었던건 술, 그 중에서도 소맥이었다.
원래 근육이 잘 안 붙는 몸인데 운동까지 하지 않으니 체지방은 늘고 근육량은 제로에 수렴해가고 있었다. 미국에 오기 직전 받은 건강검진 인바디 결과를 보고 남편은 나에게 이 근육량으로 어떻게 걸어다니냐며 내 이름 앞에 ‘순살’이라는 호를 붙였다.
연습 둘째 날도 타운하우스 한 바퀴에 내 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제 그만 뛰라는 신호를 마구 보내왔다. 셋째 날, 넷째 날 부끄러운 기록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몸을 적응시켜나갔다.
유산소 운동에 더해 나름 근력 운동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플랭크 동작을 예전에는 분명 2분 이상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1분만 해도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렸다.
시간이 지나고 타운하우스 3바퀴까지 돌 수 있게 되면서 이제 나이키 런닝 앱을 다운로드 받았다. 기록을 재면서 거리도 늘리고 시간도 단축시켜 보고 싶었다. 9월 말에는 3km를, 10월 초에는 4km를, 드디어 10월 13일에 5km를 쉬지 않고 달렸다.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달릴 때가 됐다.
집에서 차로 40~50분 정도 걸리는 스톤마운틴 주립공원으로 갔다. 스톤마운틴은 차가 적고 길이 잘 닦여 있어 인근 시민들이 자전거 하이킹과 런닝을 즐기는 곳이다. 적당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여 있어 그동안 평지 위주로만 뛰었던 나에겐 나름 새로운 도전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날에 오르막의 지옥을 경험하며 5km를 40분에 걸쳐 뛰었다. 그리고 어이 없게도 감기몸살에 팔다리 심한 근육통까지 겹쳐버렸다.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 뒤 시카고 여행을 가서 다시 아침 런닝을 했다. 새벽 찬공기를 맞으며 미시간호를 따라 달리니 왜 다들 런닝의 매력에 빠져 드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가는 듯도 싶었다.
그리고 또 다시 어이 없게도 시카고 여행 후 에선스 마라톤을 일주일 앞두고 두 번째 감기몸살에 걸려버렸다. 열과 기침, 콧물까지 종합 선물세트였다. 이런 몸뚱이로 나 정말 5km 달리기 할 수 있을까?
10월 중순 시카고 여행을 다녀온 뒤 심한 감기몸살에 걸리고 거의 열흘간 달리기는 커녕 집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못했다. 다행히 대회 당일 11월 2일 약간의 콧물 빼고는 몸 상태가 나아진 듯 싶어 아침에 동네를 빙글 빙글 3km 정도 뛰었다. 죽을 것 같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 위로 몸을 던져 서너 시간을 좀비처럼 드러누워 있었다.
점심을 먹은 뒤 남편과 마라톤 출발 장소로 이동하며 오늘 5km 러닝 목표를 세워봤다.
“다른 사람들한테 휩쓸려 오버 페이스하지 말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뛸 것”
간단한 목표인데 막상 다같이 뛰기 시작하면 그놈의 승부욕 때문에 지키기 쉽지 않다. 물론 이건 남편보다는 나한테 해당하는 얘기다.
출발 장소에선 이미 동네 잔치, 동네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라톤에 참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응원 나온 가족, 친구, 강아지들로 북새통이었다. 작은 무대에선 자원봉사자들로 이뤄진 밴드가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고 그 앞에선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아빠 옆에서 신이 나서 폴짝 거리는 분홍 치마 꼬마 아이(부끄럽지만 이날 우리 부부는 얘한테 처참히 졌다.),
발레리나 튀튀를 입고 이곳 저곳을 구경하는 20대 친구들(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이 친구들한테도 졌다.),
줄 이어폰과 핸드폰을 손에 꼭 들고 산책하듯 출전한 커플(이 커플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다가 중반 이후부터는 우리가 이겼다.)까지 에선스 시민들이 여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이제 출발! 하기 전 핸드폰을 허리에 두르는 러닝벨트에 넣다가 처참히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그와중에 내 자신이 기특한건 "엄마야!"가 아니라 “오 마이 가쉬”라며 영어로 감탄사를 내뱉었다는 것이고 영어든 한국어든 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였다.
어쨌든 무참히 깨진 핸드폰으로 정신공격을 당하자마자 출발 신호가 울렸고 사람들이 우르르 뛰쳐 나가기 시작했다.
5km는 에선스 다운타운 지역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짜여 있었다. 가을을 맞아 조금씩 단풍이 들어가는 거리는 운치 있었고 에선스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은 코스 중간 중간 각종 응원 도구와 팻말을 준비해 가족, 친구, 참가자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얼마 안 남았어” “너무 잘 하고 있어” “할 수 있어”
풀코스 마라톤을 뛰는 것도 아닌데 이런 소중한 응원을 들으면서 달릴 수 있다니. 뛰는 사람도 뛰지 않는 사람도 즐기는 이 순간이 바로 에선스 마라톤 대회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겠구나.
그나저나 처음에 약속한 달리기 목표와 달리, 출발할 때부터 오버페이스를 시작해버렸다. 반환점까지는 그나마 견딜만 했지만 후반부 오르막길에 들어서자 급격하게 숨이 가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오르막길 일부는 걸었고 그 사이에 분홍 치마 어린이는 가뿐하게 나를 제치고 폴짝 폴짝 앞으로 뛰어 나갔다.
아이보다 뒤쳐지는 순간 남편은 “안돼. 어린애한테까지 지면 안돼”를 외쳤지만 어쩌나. 아이는 쌩쌩했고 우리는 글러먹었다.
그래도 마지막 골인 순간엔 젖먹던 힘을 짜내 대여섯명을 제치고 빠르게 뛰쳐 나갔다. 막판에 나에게 역전당한 사람들의 “안돼애애애!" 소리를 들으니 더욱 신이 나서 속도가 올라갔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35분 18초, 461명 중 284등을 기록했다.
참가자들이 한 명 두 명 들어올 수록 밴드는 더욱 신이 나서 연주했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이제 보컬이 순위와 기록을 발표했다. 상품은 오렌지색 텀블러. 상위권이 호명될 때마다 모두가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텀블러를 받지 못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그대신 받은 오렌지색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를 축하했다.
서울에서 살 때는 몰랐는데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게 바로 소도시에 사는 매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