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에서 똥 맞을 확률은

포르투(Porto), 포르투갈

by 고라니

포르투, 낭만의 도시이자 노을의 도시. 포트와인과 에그타르트가 시작된 곳. 대항해시대를 연 엔히크 왕자의 탄생지,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를 집필할 때 영감을 준 그 곳.


낭만부터 해리포터까지, 이 도시를 장식하는 미사여구 중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언젠가 가보고 싶어하며 실제로 눈 앞에 마주했을 때 감탄을 내뱉는 곳이다 포르투는.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빽빽하게 겹쳐있는 붉은 지붕 위로 노을이 드리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포트 와인 한 잔에 알딸딸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포르투로 향했다.


tempImagepa9W8d.heic 걷다가 마주친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주의! 포르투 낭만 치사량 초과


기차를 타고 포르투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곳에서 보고 먹고 느끼는 모든 순간을 낭만적이라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첫 식사를 위해 찾은 볼량시장에선 그린 와인 한 잔과 간단히 집어 먹을 수 있는 타파스 몇 조각을 구입했다. 음식은 일회용 종이접시에 담아 주면서 와인만큼은 반드시 유리 와인잔에 한가득 따라 주는 것부터 낭만적이다.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시면서 이 음식을 사자 아니야 저걸 사자 한참동안 토론하는 옆 커플의 진지함도 낭만적이다.


이번에는 트램을 타보기로 했다. 적갈색 목재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전차를 타고 도루강변을 달렸다. 햇볕에 반사돼 반짝거리는 물빛과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포르투 트램 1번 노선을 타고 도루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대서양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를 수 있다. 옛날 포르투갈 사람들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바다 넘어 있을 알 수 없는 세계로 항해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겠지. 혹은 이미 멀리 떠난 소중한 이가 언제 돌아올지 하염없이 바라봤을 수도 있겠다. 트램을 타고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에 내렸을 뿐인데 온갖 상상이 부풀어올랐다.


tempImageLULylu.heic 렐루서점은 뒤구르기 하면서 봐도 해리포터가 떠오르는 곳이다.

해리포터는 포르투라는 도시를 다른 어떤 곳보다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호그와트 ‘움직이는 계단’의 모티브가 됐다고 알려진 렐루서점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황홀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황금빛 벽책장이 양옆을 가득 채우고 그 가운데 휘몰아치듯 꿈틀거리는 나선형 계단이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해리포터 소설 속에서 꿈꿨던 호그와트가 딱 이런 느낌이었다. 어쩌면 영화에서 본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막상 조앤 K 롤링은 렐루서점에 방문해본 적이 없으며 심지어 이런 곳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아쉽지만 괜찮다. 이미 이 곳은 해리포터 팬에겐 영감의 원천이고 호그와트의 한 공간이니까. 집필 당시 해리포터가 조앤 K 롤링 혼자만의 것일지 몰라도, 세상에 나온 후에는 이 소설을 사랑하는 모두의 것이다. 작가라고 해도 내 상상의 원천을 막을 순 없다.


tempImageyEkBrR.heic 술꾼들이 가장 사랑하는 순간. 맛있는 술이 눈 앞에 있을 때.

해리포터 팬들이 렐루서점을 사랑한다면 술꾼들은 포르투에서 맛볼 수 있는 와인을 사랑한다. 포르투 도착 첫 날부터 매일 그린 와인을 물처럼 마셨다. 그린 와인은 투명한 풋사과 느낌으로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싱그러움이 입 안을 감싸고 돈다. 기분을 두둥실 떠올리고 싶다면 그린와인을 추천한다.


반대로 포트 와인은 그린 와인보다 더 무겁고 진중한 느낌이랄까. 발효 중간에 브랜드를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였으며 달콤한 풍미가 인상적이다. 도루강 인근 와이너리 정원에 앉아 포트 와인을 마셨다. 남편과 이 여행의 인상에 대해 대화하며 한 모금씩 조심스레 마신 것 같다. 그린 와인은 밝고 통통 튀는 행복. 포트 와인은 묵직하고 오래 가는 행복. 행복의 느낌은 이렇게나 다채롭다.


누가 내 낭만에 똥 뿌렸어


가장 기대했던 일정은 역시 노을을 보러 간 순간이었다. 포르투의 노을은 이 도시만의 지형과 결합해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매일 반복되는 이 해넘이를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까. 노을이 질 때 즈음에 맞춰 숙소에서 동루이스다리쪽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발견한 예쁜 골목길에선 한껏 신이 나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핸드폰 카메라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가 빙그르르 돌았다가 이제 다시 노을을 보러 이동하려던 그 순간,


후두두둑~

뒤쪽에 있던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일제히 내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냥 날아가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분비물을 하늘 위로 흩뿌렸다. 그리고 이 분비물은 고스란히 내 머리와 어깨 위에 안착했다.


“으악 어떡해!”

남편이 내뱉은 한국말을 포함해 사방에서 여러 나라 언어의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관광객에서 구경거리로 신분이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지구를 뚫고 나갈 듯 커져 있던 내 낭만에 감히 똥을 뿌리다니.


그때였다. 한 노부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충분히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일로 내 여행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위로를 건넸다. 그래 이깟 비둘기똥이 포르투에서 보낸 기억들을 망쳐버리게 둘 순 없지.

“이 일을 겪었으니 분명히 앞으로 여행에서 좋은 일이 생길 거에요”

친절하고 사려 깊은 한 마디 덕분에 다시 포르투 낭만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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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를 보러 온 관객들처럼 매일 수많은 인원이 노을 쇼를 기다린다. 나도 렐루서점에서 산 포르투 그림책을 펼쳐들고 이 순간을 기다렸다.

비둘기 똥을 닦아낸 뒤 드디어 마주한 노을은 역시 기대만큼 멋졌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잠길수록 도루강 수면에 붉은 빛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번져나갔다. 포르투 구시가지를 메운 붉은 지붕들에 노을빛이 닿으면 금색으로 반짝거렸다. 이 모습을 보러 가는 길에 겪은 비둘기 에피소드까지 더해지니 여행이 시각, 촉각, 후각까지 합해 더 풍성해졌다.

비둘기 똥은 닦아내고 낭만은 가득 채웠다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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