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보다 작은 지중해 섬나라 '몰타'를 아시나요

몰타 (Malta)

by 고라니

몰타라는 나라를 알게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대학시절 몇년간 열심히 모은 알바비를 쏟아부을 해외 어학연수지를 검색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미국을, 그리고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를 검색했다. 모니터엔 장엄한 자연 경관, 활짝 웃고 있는 백인과 흑인들이 가득 찼지만 내가 모은 돈으로는 택도 없었다.


그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필리핀 차례였다. 저렴한 금액은 확실한 장점이었지만 치안이 위험할 수 있다는 단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수많은 웹페이지를 넘기고 넘기다 우연히 한 인터넷 카페명이 눈에 들어왔다. 몰타 유학 어쩌고였나 몰타 여행 저쩌고였나. 몰타? 여기는 나라야 도시야 이도 저도 아니면 가상의 지역명인가?


홀린듯 검색해본 결과, 몰타는 유럽의 아주 작은 섬나라였다. 얼마나 작냐면 나라 전체가 제주도의 6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이탈리아 아래, 아프리카 대륙 위 그 사이 공간에 이 곳이 위치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몰타는 들어본 적 없지만 그 유명한 십자군 전쟁의 '몰타 기사단'은 익숙하고 '몰타의 매' 소설도 자주 들어봤다.(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작품 속 ‘몰타의 매’라는 보물은 몰타 기사단이 왕에게 바친 가상의 유물이라고 한다.)


이 정도 되니 꽤 몰타가 친숙해진 것만 같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한 방이 더 있었다. 강아지 말티즈(몰티즈)가 바로 몰타에서 유래된 견종이라는 사실. 이미 마음 속에서 몰타를 향한 호기심이 한껏 피어 올랐다.


그런데 몰타와 어학연수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부분은 몰타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몰타는 19세기부터 1960년대까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몰타어와 영어를 둘 다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이 지중해 바다를 즐기러 몰타에 몇 주간 여름휴가를 오는 김에 영어학원을 등록해 친구도 사귀고 영어도 배운다고 한다.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유럽에 위치하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심지어 물가까지 저렴한 곳. 찾았다 내 어학연수 나라! 그렇게 나는 생애 첫 번째 비행기를 타고 몰타로 향했다.


tempImageLVwbef.heic 몰타 수도 발레타 어딘가에서 서로를 찍어주던 친구와 나

첫 번째 방문 - 나른하고 평화로운 몰타일상


몰타를 처음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작은 공항, 베이지색 외벽의 건물들, 2월 한겨울이었는데도 선선하게 느껴진 바람까지. 태어나서 경험한 첫 해외여서 내 눈앞에 있는 풍경을 머릿 속으로 비교해 볼 데이터가 없는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초기 정착을 돕는 중개 업체가 안내하는대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골목길 끝에 아파트가 아니라 지중해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엄청난 바가지 요금을 썼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한 달 만에 숙소를 옮기긴 했다.)


6개월간 몰타의 하루 하루는 이랬다.

(1) 아침에 일어나서 시리얼이나 토스트를 먹은 뒤 어학원에 간다.

(2) 12시까지 영어 수업을 들은 뒤 해변을 따라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3) 친구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거나 해변에 가서 수영을 하거나 영어공부를 한다.

(4) 저녁을 먹은 뒤엔 밤 산책을 하거나 가끔 어학원 친구들이 여는 홈파티에 간다.

(5)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농장에서 장을 보고 그 날은 고기를 구워 실컷 먹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몰타에서 반년간 살기엔 부족한데다 복학 후 등록금도 남겨두어야 했기 때문에 실은 빠듯한 생활이었다. 제주도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섬나라를 제대로 여행해본 적도 없고 식당에서 밥을 사먹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따뜻한 섬나라였기 때문일까. 서울에서 열몇시간 거리인 만큼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이 곳에서의 하루 하루는 나른하고 평화로웠다. 햇볕 듬뿍 들어오는 발코니에 앉아서 꾸벅 꾸벅 졸던 일도, 친구와 해변을 따라 산책하며 의미 없는 말들을 조잘거리던 일도, 돈을 아끼겠다며 걸어서 20분 거리 농장에 가서 장을 보던 일도 전부 소중하다.


tempImageWE0QKZ.heic 어학연수 때 자주 걷던 산책길을 남편과 함께 걷는 기분이란.

두 번째 방문 - 사실상 첫 몰타여행


몰타 어학연수를 마친 뒤 졸업과 취업을 하며 시간이 흘렀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혹시 몰타라는 섬나라를 아니?’ 라며 자랑은 했지만 다시 가볼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러다 몰타에 가보고 싶다고 답한 사람과 결혼을 해 이번엔 신혼여행으로 몰타에 갔다.


다시 만난 몰타는 익숙하고 또 새로웠다. 어학연수 때 머물던 집과 오가던 길을 방문하며 이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일들을 했는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늘 궁금했지만 돈을 아끼느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이번엔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먹었다.


tempImage7gsiOB.heic 몰타의 대표 로컬맥주 시스크. 바람이 많이 불어 보트는 못탔지만 대신 맥주를 건졌다.

무엇보다 드디어 몰타를 제대로 여행했다.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에 가서 거리를 둘러보고 고대 도시 임디나에선 구불 구불한 골목을 걸어다녔다. 바다색이 코발트빛이라는 코미노섬 블루라군으로 보트를 타고 들어가 하루 종일 느긋하게 수영도 즐겼다.

몰타를 처음 가본 남편도, 나름 살아봤던 나도 모두가 만족했던 신혼여행. 이 여행의 끝은 다음에 또 오자는 약속으로 이어졌다.



세 번째 방문 - 몰타여행 심화편


이 먼 나라에 세 번이나 오게 되다니. 약 한 시간 거리 일본 여행도 딱 세 번 가봤는데 열 몇 시간 거리 몰타를 세 번째 왔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과 함께 미국 1년 연수를 하게 됐고 여기 있는 동안 준비한 남미 여행이 좌초되면서 대안으로 유럽이 떠올랐고 유럽 하면 나에겐 몰타가 1순위였다.


지난 신혼여행이 내 어학연수 추억을 좇는 여행이었다면, 이번엔 이전에 가보지 못한 새로운 지역들을 가보자 의기투합했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여행을 결심하니 거짓말처럼 처음 겪는 상황들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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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마을 축제들. 저절로 신이 난다 신이 나.

몰타 중심지 중 한 곳인 그지라 지역으로 밤 산책을 하던 중 신나는 음악과 폭죽 터지는 소리가 점차 가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이 악기 연주를 하며 거대한 성모마리아 상을 들고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몰타는 독실한 가톨릭 국가답게 마을마다 각기 다른 수호성인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이 수호성인을 기념하는 마을 축제를 화려하게 개최한다. 마을 곳곳은 화려한 휘장으로 장식돼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한껏 신이 나 퍼레이드를 즐겼다. 그 옆에서 나도 슬쩍 몸을 흔들며 분위기에 함께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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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놀랍도록 별로였지만...어떻게 마을 전체가 동화 한 편 뚝딱일 수가 있죠?

작은 마을인 멜리에하에선 꿈같은 저녁식사를 경험했다.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다 즉흥적으로 앉게 된 성당 앞 레스토랑에서 토끼 고기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몰타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토끼 고기는 솔직히 입맛에 맞지 않았고 파스타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이를 어쩌지 난감한 상황에 그저 웃음만 나오던 순간, 마을 전체에 노오란 불빛이 갑자기 탁! 켜졌다. 성당을 중심으로 온 마을이 노랗게 물드니 마치 동화 속으로 배경이 이동한 것만 같았다. 한껏 들떠서 남편과 손을 맞잡고 빙글 돌아보기도 하고 깡총 뛰기도 했다. 유럽 중세 동화에 초대받았는데 음식 좀 아쉬운 것 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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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로 아름다운 몰타

늘 가보고 싶었던 고조 섬에 들어가서 비슷한듯 다른 몰타의 또 다른 얼굴을 탐방했고 수도 발레타 옆 쓰리 시티즈에선 몰타의 전통 집들을 충분히 감상했다. 신혼여행에 갔던 코미노섬에도 다시 한 번 방문해 코발트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다. 약 일주일간 몰타에만 머무른 만큼 천천히 돌아다니고 많은 곳들을 둘러봤다.


들어본 적도 없는 몰타라는 나라에 세 번 갔다고 말하면 다들 놀라지만 세 번이나 여행했기 때문에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몰타를 아시나요? 여기는 꼭 가보셔야 하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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