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세이에는 진격의 거인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귀주칼(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체인소맨)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나요? 2025년 국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과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두 편이 포함될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저 또한 세 가지 애니메이션 모두 즐겨보고 있는데요.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했던 시작점이 언제였지?
제 경우엔 10여년 전 진격의 거인이 시작이었더라고요.
진격의 거인은 사실 마냥 열광하기보다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엄청난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인 파라디 섬이 배경입니다. 이 곳에 사는 인류는 거인을 피해 벽 안에서 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멈춘 채 나름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벽을 뚫고 등장한 거인들로 인해 주인공 어머니를 포함해 상당수의 인류가 목숨을 잃고 맙니다. 주인공 에렌 예거가 거인을 몰살시키겠다는 복수심에 불타올라 조사병단에 입대하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처음엔 거인이라는 압도적인 적을 향한 주인공의 분노와 복수를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신조오 사사게오(심장을 바쳐라)!”라 외치며 거인에게 돌진하는 모습, 그리고 이 세계의 비밀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전개에 깊이 몰입했답니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하며 등장인물들의 선택, 특히 주인공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의구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저 밑에서부터 불편한 감정이 비집고 솟아 올라오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감정을 느낀 사람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진격의 거인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그만큼 논란이 많은 작품이었으니까요.
일부에선 파라디 섬을 일본에 빗대 주변 국가들의 위협에 군사 대응을 선택하는 서사가 군국주의적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특히 시리즈 마지막 “우리를 위해 학살자가 되어 줘서 고마워”라는 대사는 이 작품이 설정하는 공감의 범위에 대해 고민해보게 만들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격의 거인이 오랜 기간 동안 신드롬을 일으킨 상황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진격의 거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니까요.
사람마다 진격의 거인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애니메이션이 무엇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인에 의해 위협받는 세계를 그렸는데 현실적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요.
저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비록 판타지지만 인간 사회의 모순과 현실을 피곤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 강인줄 알았던 거인이 사실은 인간(심지어 같은 민족)이었고 현 사회의 안녕을 위해 누군가는 고문을 받고 희생 당합니다. 또 인류의 미래를 위한다는 대의 아래 학살이 이뤄집니다.
뭔가 익숙하지 않나요? 과거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인간 사회의 모습이 이 작품 속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더 불편한 감정이 느껴졌나봐요.
개인적으로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돋았던 장면을 하나 꼽자면, 조사병단 일원인 한지 조에 관련 에피소드입니다.
쿠데타 과정에서 기존 집권세력의 비밀을 알아내려 한지가 헌병단을 고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헌병단은 벽 안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여러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인물이죠. 고문을 받던 헌병단은 한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역에는 순서가 있어. 누군가 이 역을 마치면 다음 사람이 그 자리를 이어받지. 힘내라, 한지”
자신이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했던 한지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는 달라지지만 또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고문하고 없애는 폭력은 이렇게 꾸준히 계승되고 질기도록 살아남습니다.
진격의 거인은 저에게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다 보고 난 뒤부터 오히려 고민을 시작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감정과 불편한 감정 그 사이 어딘가에서 끝없는 해석을 요구하는 작품. 이것이 진격의 거인이 가진 가장 큰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