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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숲 Apr 18. 2020

온전히 '나'로 일어설 기회

소속된 곳이 없기에  온전히 나로 일어설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무소속 N일차.



아무런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해방감'보다 '불안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동안 나를 소개할 때는 소속된 곳을 먼저 말하곤 했다. 여섯 살 때부터 어느 유치원에 다니는 누구라고 말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어느 초등학교, 어느 중학교, 어느 고등학교, 어느 대학교에 소속된 나로 설명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사라진 그 소속감을 찾기 위해 하루빨리 직장에 들어갔고 어느 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가 되었다. 돌아보니 내 인생은 언제나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다.



몇 년 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처럼 든든한 울타리 같던 그 소속감 안에서 나 스스로 걸어 나오는 때가 왔다. 나는 나의 오랜 꿈을 찾아 두려움이라는 먼지를 털어 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이 우주만큼 주어졌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나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연구했다. 내가 어떤 생활패턴을 가졌는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가보고 싶은 장소는 어디인지, 글을 쓰기 편한 시간은 언제인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온전히 '내 안의 나'와 단 둘이 있는 어색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고 좋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경험으로 '이해'했다.



광활하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에서 문제는 항상 아침이었다. 늘 어딘가로 등교를 하고 출근을 하던 습관 때문에 집에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기에 기분전환도 하고 나들이도 할 겸 예쁜 카페를 찾아 나섰다. 나른한 오후에 그린티 라테를 마시며 글을 쓰는 시간이 참 좋았다. 운이 좋으면 카페 사장님과 하루만큼은 친해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새로운 공간에 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 한 장의 추억이 되기도 했다.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이 장소에서의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가도 어떤 아침은 집에 꼭 붙어 있고 싶었다. 우리 집은 산속에 있는 아파트다. 부동산 업계에서 녹지 공간과 인접한 집을 '숲세권'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집은 숲세권이라 아니라 그냥 숲이다. 창문을 열면 매연 대신 맑은 공기가 들어오고, 자동차 소리 대신 까치의 하모니가 들린다. 그런 날은 커다란 창문을 힘껏 열어 놓고 '우리 집이 지상낙원이지'하고 가려고 했던 카페 목록을 가뿐히 내일로 미룬다. 이른 봄에만 느낄 수 있는 아직은 찬 공기와 따뜻한 햇볕을 온전히 즐기며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집에서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는 나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누군가 정해준 패턴대로 반드시 아침에 어딘가로 나서야만 성공한 하루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든 내 꿈을 향해 최선의 노력했다면 그 하루가 가장 멋진 하루가 되는 것이다. 소속감이라는 것도 사실은 하루를 대하는 이 마음과 같지 않을까. 어디에 누군가와 함께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불안하고 힘들다면 그 마음을 바꾸어 생각하면 된다. '어디에 소속된 누구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속된 곳이 없기에 온전히 나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말을 경험으로 이해한 고마운 날이었다. 이 시간을 오롯이 나의 이야기로 소중하게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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