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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숲 Apr 17. 2020

돈도 적당히 무시하고 막 대해야 붙지

돈을 따라 걸으면 힘겹지만 꿈을 따라 걸으면 산뜻하다




얼마 전에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종영했다. 우리나라와 북한을 배경으로 한 신선한 설정과 자신의 목숨보다 서로를 사랑한 그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충분했다. 좋았던 장면이 많이 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약혼남이 다른 여자와 있는 것을 본 '서단'과 사기꾼 신분으로 숨어있는 '구승준'이 호텔 옥상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다. 사랑에 서툰 서단에게 구승준은 남녀 관계는 초기 포지션이 중요하다며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말에 서단은 그렇게 잘난 분이 왜 옥상에 있냐고 묻자, 구승준은 올 듯 말 듯 오지 않는 돈이 답답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서단은 돈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초기 포지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돈도 적당히 무시해주고 막 대해줘야 붙지. 너무 목메고 쫓아다니고 아쉬워하면, 나 잡아 봐라 하고 평생을 도망만 다니지요."



일을 그만 두기로 마음을 먹을 때쯤이라 그런지 이 장면과 대사가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작가라는 직업을 오래 꿈꿔왔지만 쉽게 선택하지 못했던 이유 중에는 경제적인 문제도 분명 있었다. 작가라는 직업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출판하는 작가님들 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 일하는 작가님들도, 문예지나 잡지에 글을 연재하시는 작가님들도 마찬가지이다. 프리랜서이기에 멋진 기회와 가능성이 많지만, 월급이 일정하게 나오고 4대 보험도 적용되는 곳을 찾기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소박한 바람은 내가 번 돈으로 자유롭게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저 입고 싶은 취향의 옷을 사고, 계절에 맞는 신발을 사고, 맛있는 초밥을 먹고, 예쁜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는 그런 삶을 바랐다.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에게 하루빨리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드리는 든든한 딸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경제서를 많이 읽으며 인식을 바꾸어 보려고 해도 돈은 나에게 잠재적인 장애물 같은 존재다. 그 인식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망하더라도 좋아하는 글을 한 번 실컷 써보자!'라고 호기롭게 시작한 이 시간은, 머지않아 물질적인 걱정으로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상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책을 출간하면 계약금이 얼마가 주어질까. 1쇄를 할 때마다 인세가 얼마가 주어질까. 그렇다면 나는 이 노력을 해서 얼마는 벌게 되는 걸까. 시간으로 따진 다면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결국 확신 없는 꿈의 답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먹고사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지만, 대체 이런 계산을 하는 사람이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의 글을 누가 읽고 싶어 할까. 지금 돌아보면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부끄러운 일이다. '서단'이라는 캐릭터가 시크하고 차가운 얼굴로 저 대사를 읊어주어 어찌나 고마운지.



그렇다. 인생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똑같은 길을 걷더라도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걸으면 고단하고 답답한데, 돈을 저만치 멀리 두고 걸으면 가뿐하고 즐겁다.



지금은 그저 내 마음을 하루에 하나씩 털어내며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얼마나 천운인지 나를 응원해주시는 소중한 사람들도 한 분씩 한 분씩 생기고 있다.



각자의 삶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꿈에는 짜인 대본처럼 돈이라는 걸림돌이 찾아온다. 그래서 긴 무명시절이나 배고픈 시기를 버티고 오랜 꿈을 이뤄낸 공무원, 연예인, 사업가, 예술가들이 많은 박수를 받는 것 같다. 그러니 꿈을 쓰는 이 시간을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마음 편히 걷자. 그래도 이렇게 그 녀석을 적당히 무시하고 목메지 않으면, 알아서 내 뒤를 따라와 줄 것이라고 살짝 믿어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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