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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숲 Apr 23. 2020

우리의 인생이 매일매일 축제는 아니지만

요즘 부쩍 가까워진 우리 동네와  설레는 연애를 하는 중이다




봄은 올 듯 말 듯 사람들 곁에서만 맴돌고, 오늘도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익숙하고 편안해진 혼자만의 시간, 이제 나에게 적당한 루틴이 생겼고 '나'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출근하는 생활에서 벗어나니 자연스럽게 집과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아졌다. 평일은 직장, 주말은 근교에 가는 것이 당연했기에 지금까지 집 근처 동네에서 만든 별다른 추억이 없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정이 든다는 말처럼 요즘  부쩍 가까워진 우리 동네와 설레는 연애를 하는 중이다.



먼저 자주 가는 단골 카페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서 최소한의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만 겨우 말린 채 카페로 향한다. 이제 내 공간인 것 같은 하얀 테이블에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는다. 녹차라테를 기다리며 책과 키보드를 꺼낸다. 그렇게 나의 일과가 시작된다.



카페에 자주 가서 사장님과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카페 사장님의 인사는 조금씩 바뀐다. 하루는 '안녕하세요', 또 하루는 '따듯한 녹차라테 드릴까요', 다른 하루는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그리고 음악은 유행하는 가요에서 잔잔한 재즈로 바뀐다. 노랫말이 없는 고운 선율에서 사장님의 과하지 않은 친절함이 들린다.



동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등산로와 산책로가 많다. 그동안 우리 동네에 이렇게 어여쁜 벚꽃들이 피어있는지 전혀 몰랐다. 봄바람을 타고 온 꽃향기를 만끽하고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때마침 회사 점심시간이면 항상 걸려오는 그 사람의 전화가 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동네 마트에서 오렌지를 샀다. 시장을 보는 것은 다른 가족의 역할이었는데, 요즘 과일을 사 오는 것은 내 몫이 되었다. 오렌지를 고르고 있는데 마트 아저씨께서 슬쩍 오시더니 원래는 11개에 9800원인데 시간이 늦었으니까 12개를 준다고 하셨다.



오렌지 판매와 늦은 시간의 상관관계를 여쭈어보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감사합니다'였다. 가끔은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보다 덤으로 생기는 오렌지 한 개가 더 소중하다. (웃음)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 오렌지를 가득 안고 집으로 오르는데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는 듯 아파트 단지에 줄 서 있는 가로등이 반짝 켜졌다. 우연히 마주한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에 왠지 모를 위로가 느껴졌다.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며 집에 조심히 가라는 누군가의 다정한 인사 같았다.



우리의 인생이 매일매일이 축제처럼 이벤트로 가득 차 있다면 항상 행복하기만 한 인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삶에는 가끔씩 이겨내기 어려운 시련도 찾아오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그래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힘들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곁에 있는 일상에 감사하고 만족하면, 내면에 삶에 대한 의지와 애정이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힘으로 우리는 또다시 일상을 힘차고 즐겁게 살 수 있다. 혹시 오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고 보낸 행복이 어딘가에 숨어있지 않을까.



오늘도 웃을 일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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