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숲 May 24. 2020

서로의 인생이 안녕하길 바라다보면

비록 지금은 소모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멀어져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갈등을 겪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로가 좋든 싫든 학교 안에서 매일매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애초에 성향이 다른 친구들과 일 년 동안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지 같은 반이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 생활해야 했고 미워도 싫어도 한 공간에 꼭 붙어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그때는 성숙하지 못했고, 배려에 익숙하지 못했고, 의연하게 사람을 대하지도 못했다.

몇몇 친구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살아온 환경과 처지에 따라 같은 일도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마음과 성향은 모두 같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어렸을 때 누군가와 사이가 멀어지고 나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착하고 베풀기도 잘해서 인기가 많은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수록 친구들 관계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순탄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아주 길고  학교라는 터널을 지나 사회에 나왔고 이제는 나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주된 인간관계를 맺을  있는 자유가 생겼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꼭 약속을 잡아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고, 카페나 식당에서 만나기에 반드시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 전보다 훨씬 좋았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는 오랜 시간 인간관계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에 친했던 친구와 멀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그 친구와 나는 서로 연락이 뜸해졌고 다른 친구에게는 연락을 하는 나에게 서운함을 느낀 것이다. 그런 사소한 오해로 인해 과거의 다툼으로 남았던 싸움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제법 성숙해졌다고 믿었는데, 역시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어른이 되어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혼자 끌어안고 있다가 마침 만나기로 약속했던 동네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근데 이제 괜찮아."

괜찮을 거라는 말을 시작으로 친구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해줬다. 소중한 친구들과 의도하지 않게 멀어지게 되었고 이미 힘들어진 관계를 돌이킬 방법도 그럴 용기도 나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내 마음을 고스란히 읽어주는 그 친구가 참 고마웠다. 친구는 더 이상 애쓰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내가 그 친구를 위로해주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슬펐던 내 마음도 점점 괜찮아졌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사람들과 '자로  듯이 똑같은 길이의 마음' 주고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른이 되고 나면 모든 것이 능숙한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행복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멀어진 친구가 얼마나 고운 사람인지 잘 알기에 속상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삶의 시선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 쪽으로 돌려보려고 한다.


저만큼 멀어진 인연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이처럼 세상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소모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멀어져 있지만 서로의 인생이 안녕하길 바라다 보면, 언젠가 그 친구와 다시 만나 웃을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 날까지 꼭 평온하고 안녕하길.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재밌는 보물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