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시간에 있었던 일
3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단원에 문현식 작가의 '비밀번호'라는 시가 나온다. 나는 이미 이 시를 알고 있었다. 몇 해 전 아이들에게도 이 시를 가르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재미있는 시, 특이한 시쯤으로 여겼었다.
그리고 며칠 전, 새로운 반 아이들과 다시 이 시를 읽게 되었다.
비밀번호를 빨리 누르지 못하시는 할머니가 우리 집 문을 열 때 들리는 느릿느릿한 번호 누르는 소리.
그리고 이제는 돌아가셔서 기억으로만 남은 그리운 할머니의 문 여는 소리.
보고 싶은 할머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재미는 있지만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반응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엄청 튼튼하세요."
"우리 할머니는 힘이 우리 집에서 가장 세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비밀번호 겁나 빨리 누르세요."
"저는 제가 제일 느린데요?"
어린 아이들에게 이 시가 깊게 공감이 된다면 그것 또한 마음이 아플 것이다. 이런 반응이 대다수인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별을 경험한 몇몇 아이들은 돌아가신 조부모님을 떠올리고 있었겠지만 아직 어린 나이인지라 영원한 이별의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혹시 모를 불안감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살아계실 거라는, 나에게는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 위로 차원에서 하는 대답이었다. 어쨌든 아이들의 대다수가 겪어보지 않은 않은 일이라 내용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시를 낭독하고 아이들에게 시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려는 그때, 별안간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그날 이후로 눈물이 많아졌다. 생각이 그에게 닿기만 하면 가슴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넘친다. 수업 중에 교사가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질문으로 이어갔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직 어려 담임의 작은 변화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나에게 아버지는 내가 유일하게 언제든지 찾아가 기대도 무조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완벽한 내 편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어머니는 내가 보살펴야 하는 화초라면 아버지는 나를 감싸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였다. 나에게도, 내 자식들에게도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그런 분이었다.
병원을 통해 그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은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세 살배기 손자의 생일과 겹쳐 둘이 함께 생일잔치를 한, 55세 생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 후로 그의 투병 생활은 6년 동안 이어졌다. 사람들은 뇌까지 전이된 폐암 3기 말에 6년을 버텨냈다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단 한순간도 그가 80세까지는 우리 곁에 숨 쉬고 있을 거라는 희망의 끄나풀을 놓은 적이 없다. 워낙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인 분이라 아빠를 비롯한 온 가족이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나의 육아 휴직도 그의 치병 생활을 함께하기 위함이 더 컸다. 매일 한 순간이 아쉬워 그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낸 분의 기사를 보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직접 만나시게 해 드린다든가, 항암으로 빠진 머리를 가리기 위한 가발을 맞추러 동행한다든가, 암에 좋다는 음식은 모조리 찾아 해 드리는. 하루라도 허투루 보내면 암세포가 그 틈에 온몸으로 무섭게 퍼질까 두려웠다. 이렇게 노력하면 하늘도 우리의 정성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그의 수명을 늘려주실 것만 같았다. 그 믿음은 어이없게도 마지막 호스피스 병동까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6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헤어짐의 순간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기 전에 당사자도, 남은 사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든 안 했든, 사랑하는 이를 잃은 기억과 상처는 의지로 쉽게 치유될 수 없다는 것. 아마도 나에게 슬픔을 담아놓는 새로운 장기가 생긴 듯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에 대한 기억과 안타까움이 조금이라도 건드려지면 그곳에서 터져 나오듯 폭풍 같은 슬픔으로 속절없이 표출된다.
시 속의 할머니처럼 나의 아버지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천천히 누르고 손주를 보러 우리 집에 오셨다. 뇌까지 번진 암세포와 독하디 독한 항암제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로 번진 처참한 몸 상태였기에 50대의 나이지만 80대의 신체 능력으로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우리 아이들을 보러 오셨다.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람들과 섞여서 일상을 살아가다 그날의 국어 시간처럼 아버지와의 추억이 되살아나 그리움이 휘몰아치는 날이면 슬픔이 온 몸을 감싸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당신을 잊지 않은 내 모습에 반가움과 안도감이 든다.
오늘도 문득 아버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