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흰나비

by 여름 풀꽃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게 되면 꼭 다루는 과정이 배추흰나비의 한살이다. 사실 나는 나비는 길가에서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만 봤지 한살이를 관찰하는 경험은 교사가 되고 처음이다. 3학년 담임은 올해로 두 번째니까 배추흰나비의 한살이 관찰도 인생에서 두 번째다.


나의 첫 번째 경험은 6년 전이었다. 그 신기하고 뭉클했던 기억이 가물거릴 때 즈음 다시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배추흰나비 알이 교실로 올라왔다. 방충망 안에 강낭콩으로 보이는 화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잎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비의 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잘못 올라온 건지, 알이 너무 작아 못 찾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섣불리 이것을 교실에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나비가 있는 줄 알고 잔뜩 기대하던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년 연구실에 며칠만 더 둬 보고 뭔가 변화가 보이면 바로 교실로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매일 매의 눈으로 알을 찾던 내 눈에 아기 눈썹만큼 아주 작은 초록색이 꿈틀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귀여운 녀석들! 거기 있었구나!

좋아할 반 아이들을 생각하며 화분이 든 사육 상자를 당장 교실로 옮겼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도록 교실 뒤편에 자리 잡았다.


다음 날 나비 애벌레를 본 아이들은 아침부터 열광의 도가니었다. 그 어떤 유명인사가 우리 반에 와도 애벌레만큼 환영받았을까 싶다.


'기다리는 친구를 위해 30초씩 관찰하고 자리를 비켜줘요.'


나비 관찰 규칙을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붙였다. 그 정도로 쉬는 시간 종이 치기 무섭게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 한 아이는 책에서 읽은 나비에 대한 지식을 나와 친구들에게 뽐냈다. 항상 반에는 곤충이나 공룡 박사가 한 두 명씩은 있다. 우리 반에도 곤충 박사가 있어서 매시간마다 훌륭한 조교 역할을 해 주었다.


그 사이 또 하나의 알이 부화했다. 이제 우리 반에 온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두 마리가 되었다.


매일, 매 쉬는 시간마다 애벌레는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화분의 잎을 거의 다 먹어치우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어느덧 제법 튼튼한 형님 애벌레의 모습으로 변했다. 처음 부화했을 때보다 두께도 길이도 서 너 배쯤 커져서 이제는 징그럽다고 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사육상자 바닥 쟁반에 늘어가는 애벌레의 똥만큼 남은 화분의 잎도 점점 사라져 갔다. 하루는 먹이가 부족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며 퇴근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잠겨있던 교실 문을 열었다. 바로 애벌레 사육상자로 다가갔다. ? 한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먹이가 부족해 죽었나? 그럼 실망하는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줘야 하지?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했다. 역시나 아이들은 책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사육상자로 달려갔다. 내 애벌레 한 마리는 어디로 갔냐고 물어왔다.


"그러게. 번데기가 보이든지 애벌레가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이네."

"탈출한 거 아니에요?"


그때, 한 아이가 화분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선생님! 번데기 있어요! 애벌레가 번데기가 됐어요!"

분명 내가 샅샅이 뒤져보았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보니 나뭇잎 아래에 초록색으로 무언가가 붙어있었다. 번데기는 보호색을 띠고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애벌레를 찾은 아이는 잎사귀 아래에 붙은 번데기를 알아볼 수 있었나 보다.


번데기 시기에는 아무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건드리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제대로 나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나비는 낯선 신체의 변화를 마주하며 몹시 예민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겪었던, 또 우리 아이들이 겪게 될 사춘기처럼 말이다.


다음 날 나머지 한 마리도 번데기가 되어 사육상자 안은 모든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그 상태로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5월의 어느 금요일, 우리 반 아이 하나가 점심시간이 시작될 즈음 사육 상자 벽 한 귀퉁이에 가만히 앉아있는 나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며 일제히 사육 상자로 몰려들었다. 드디어 나비가 되었구나! 어서 날아오르라고 사육 상자의 방충망을 손으로 툭툭 건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때 우리 반 곤충박사가 말했다.


"나비가 날개를 말릴 때 스트레스 주면 안 돼! 만지지 마."


첫째 배추흰나비의 날개돋이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아이들은 기다리다 하교 시간을 맞이했고 나비의 생명은 오로지 내 책임이 되었다. 퇴근 시간까지 업무를 하며 나비의 상태를 관찰했지만 나비는 끝까지 꼼짝하지 않았고, 나머지 한 마리는 아직 번데기 상태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사육 상자 안에는 나비의 먹이도 없고, 주말 동안 나머지 한 마리도 번데기를 탈피하고 나비가 될 것 같은데 어찌할 방법이 없어 찜찜한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다음 날, 비가 장마처럼 쏟아져내리는 토요일이었다. 요새는 주말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주말이라 편한 마음으로 쉴 수 있었는데 오늘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교실에 두고 온 나비가 행여나 주말 동안 먹이가 없어 죽으면 어떡하나, 그러면 슬퍼하고 실망할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비가 와서 날려줄 수도 없고, 또 아이들과 직접 날려줘야 의미가 있을 것 같고.


이런저런 생각에 고민을 하다가 집에서 꿀물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학교 좀 다녀올게. 나비 때문에 걱정돼서 안 되겠어."

"이렇게 비가 오는데 고작 나비 때문에?"

"아이들한테는 고작이 아니야. 그냥 다녀오는 게 내 마음이 편하겠어."

"같이 가?"

"아냐, 요새 학교에 외부인은 출입하기 어려워. 금방 다녀올게."


소중한 꿀물을 가방에 담아 5월에 어울리지 않는 폭우를 뚫고 무사히 교실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이는 사육상자 안에는 움직이는 무언가가 여기저기서 팔랑거리고 있었다.

하루 사이에 나비는 두 마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알아서 잘 자라주다니, 참으로 고마운 나비였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나비가 날아갈까 조심히 사육상자 지퍼를 열어 꿀물을 나비 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지퍼를 닫았다. 이제 빨리 월요일이 으면 좋겠다.

'답답하고 먹이가 마음에 안 들어도 월요일까지만 버텨주렴.'


기다리던 월요일이 되었다. 주말 내내 오던 비는 다행히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나비 녀석들이 주말 동안 답답한 사육장 안에서 잘 있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했다.


철컥. 자물쇠를 열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서 꽃잎처럼 팔랑거리는 배추흰나비가 보였다. 꿀물을 먹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있으니까.

이윽고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하며 배추흰나비에게로 몰려들었다. 신나서 흥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복도까지 퍼졌다. 빨리 풀어주자는 의견이 많았다. 1교시 종이치고 사육 상자를 챙겨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 한 구석의 꽃밭으로 내려갔다. 내가 사육 상자의 문을 열자 한 아이가 외쳤다.


"배추흰나비야! 맛있는 거 잘 찾아 먹고 짝짓기 하고 잘 살아!"


열린 자유의 문을 모르는 건지 아는데도 나가기 싫은 건지 한참 동안 나비들이 사육 상자 안에서만 날아다녔다.


"밖에 맛있는 거 많아, 더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녀!"

이 말을 들은 건 지 한 마리가 사육 상자 밖으로 나가고 잠시 후 다른 한 마리가 따라 나왔다. 운동장을 춤추며 날아다니는 나비 두 마리를 보고 환한 표정으로 작별인사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존재하는지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디작았던 배추흰나비의 알 하나가 우리에게 많은 추억과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누구나 태어나면 시간이 흐른 만큼 나이가 든다. 그건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다. 허나, 우리가 태어나 마주한 시간 동안 수많은 변화와 사건을 겪고 그것을 겪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배추흰나비처럼 알을 깨고, 자기 몸에 실을 감은 뒤 번데기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온 힘을 다해 다시 한번 스스로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하는 시련을 겪어야 비로소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다.

숨 막히는 고통의 틀 속에 갇혀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나비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을 지나고 있는 거라고. 그동안 애썼고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