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당뇨가 나를 찾아왔다.

1형 당뇨가 확정되던 날

by 윤슬

내 나이 5살이었다. 장소는 외숙모 집이었고, 그날은 명절이었기에 친척들이 한 데 모여 웃고 떠들고 명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친척들의 이쁨을 받으면서 신나게 이리저리 뛰어놀고 있었다.

그리곤 작디작은 아이는 외숙모 집의 장판 한가운데서 잠시 새우잠을 잤었다.


시간이 좀 지났을까. 어린아이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고

이내 사색이 된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모두 깜짝 놀라 바닥에서 경기를 일으키고 있는 아이에게로 달려왔다. 하지만 해결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악몽을 꿔서 놀랐을 거라며 아이를 들쳐업고 진정을 시키려고 해도 아이는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새우처럼 휘어지면서 세상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며 질겁하고 있었으니까.


어머니는 처음 보는 내 아이의 비명에 정신이 나가신 채 나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난리를 치셨다. 허나 아이는 점점 기력을 잃어가는 도중에도 비명을 멈추지 않고 생명의 끈을 놓고 있었다.


다급히 119로 전화를 거신 아버지는 조금만 조금만 참으라며 내 손을 꽉 놓고 울음을 참지 못하셨고, 어른들은 골목으로 뛰어나가 앰뷸런스가 빨리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바라보고, 여기에 환자가 있다고 세상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셨다.


119가 도착했지만, 외상이 없었음에 응급구조사들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가장 큰 병원으로 당장 가야겠다는 말과 동시에 이리저리 내 몸을 확인했지만 전혀 방도가 없었다. 아이는 기력이 없어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의식도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그때 눈물범벅이시던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던 초콜릿을 입 안으로 넣어주셨다. 하지만 아이는 초콜릿을 삼킬 여유가 없었다. 입에서 떨어져 나오던 초콜릿을 본인의 입으로 가져가 잘근잘근 씹어 내 입속으로 밀어 넣으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음 섞인 초콜릿이 내 목을 타고 몸속으로 퍼져갔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울음은 멈추고 비명소리도 약해져 가기 시작했고, 그 짧지만 영겁 같던 시간을 뒤로한 채 응급실로 도착한 아이와 본인이 맨발인지도 모르셨던 어머니와 이모가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통곡하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담당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저혈당 쇼크'임을 확인했고, 곧바로 포도당 수액을 맞히기 시작했다.




자, 이제 그 아이였던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수액이 나의 얇디얇던 팔에 강제적으로 꽂히고 온몸에 약효가 돌기 시작한 그 시점. 나는 눈을 떴다. 분명 아까만 해도 외숙모 집의 장판에 졸린 눈을 비비며 누웠던 기억만 있는데, 지금은 온 통 새하얀 벽과 커튼이 즐비한 낯선 장소에 와있으니 더욱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그것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저혈당 쇼크가 가시지 않았는지 내 몸 상태를 확인하러 오는 간호사들의 얼굴이 모두 일그러져 보였다. 30대가 다 된 어른이 되어서도 그 기억은 생생히 또렷하다.

간호사들의 눈 코 입이 모두 거꾸로 보였고, 코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입이, 입이 있어야 할 곳은 뻥 뚫린 구멍이.


나는 눈물로 범벅된 어머니의 가슴팍에 얼굴을 처박고 비명을 질러댔다.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악몽 그 자체였으니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포도당이 몸에 돌며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정신을 차렸고. 여러 검사와 후에 진행된 정밀진단 후 나는 청천벽력 같은 병명을 확인하게 되었다.

'당뇨'라는 병명. 어른들은 그 병명을 중년 혹은 노인들만 겪는 질환이라 말씀하시며 이 어린애가 어떻게 당뇨가 있냐고 의사를 다그치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과학적인 그 진단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고 더욱 악몽 같은 구체적인 병명이 나왔다. '제1형 당뇨병, 즉 소아당뇨'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벽을 짚고 인상을 찌그리신 채 서계셨고, 어머니는 혼절 직전까지 가셨다. 5살 터울의 누나가 있던 나였지만 누나는 너무나도 멀쩡한 정상이었고 이제 5살이었던 나는 1형 당뇨라니.


무엇보다 의사 선생님은 1형 당뇨의 경우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기능이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어 평생 인슐린을 '직접' 주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난치병이라고...


그때부터였을까. 5년밖에 되지 않았던 내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어진 날이.

의사 선생님은 징후가 없었냐고, 갑자기 당뇨가 순식간에 발병하진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그제야 그전부터 나의 이상행동이 하나둘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1. 5살밖에 안되던 아이가 1.25리터 페트병의 물을 거의 비우다시피 마시던 점

2. 1번의 행동을 하면서 소변이 마렵다며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보면서도 동시에 물을 끊임없이 마시던 점

3. 다른 또래아이보다 더 쉽게 피곤해하고 심할 때는 하루 10시간 넘게 잠에서 깨지못하던 점

4. 밥을 안 먹고 신나게 놀던 아이가 어느순간 단 것을 눈이 뒤집어진 채로 먹어대기 시작하던 점


이 모든 것은 복선이었고, 하나의 징후였던 것이다. 그러나 5살 되던 남자아이를 금이야 옥이야 키우셨던 부모님은 아이가 배고프다 하면 과자와 사탕을 한없이 사주셨고 목이 마르다 하면 밍밍한 물보다는 단맛으로 점철된 음료수를 들이켜게 하셨다.


이들의 죄는 아닌데, 이들은 의사 선생님의 담담한 진단을 들으시며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자책하셨다. 본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며. 그러나 난 그들을 원망할 이유도 눈곱만큼도 없고 서운하지도 않다.


어찌 됐든 사건은 벌어진 것이니까.


이후 나는 병원에서 특별관심대상이 되어 철저한 관리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음 글부터 써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