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주사가 싫었다.

당뇨 발병 이후 송두리째 바뀐 일상

by 윤슬

5살, 당뇨가 찾아온 이후부터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항상 먹어댔던 과자도, 항상 마시던 음료수도, 항상 입에 물고 있던 사탕도 이젠 내 수중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부모님이 항상 해주시던 달달한 간식도, 돈가스, 오므라이스 등등은 기대도 할 수 없었다. 맛없는 보리밥, 잡곡밥이 내 식단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항상 식탁은 푸릇푸릇한 야채들과 나물들로 꽉꽉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집에 속속히 도착하던 당뇨와 관련된 서적들은 동화책이나 만화책인 줄 알았던 나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였을까. 당뇨 박사로 변모하셨고 관련 서적을, 관련 뉴스를, 관련 라디오를 곁에 두고 사셨다.


그래, 5살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아들내미가 소아당뇨라니!

아직 어리니까,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분명 내 아들은 쉽게 이겨낼 거야. 감기 같이 금방 지나갈 병이라며 완치해서 보란 듯이 세상에 소리칠 거라는 자신만만한 태도가 활활 타오르셨다.


사실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당뇨와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하신 계기는 내가 응급실로 실려갔을 당시 간호사와 의사가 말하던 '당뇨'라던 병명에 대해 무지했었기에, 이 사람들이 갑자기 왜 포도당 수액을 놓는지, 손가락 끝에 핏방울을 내서 혈당 체크를 하는지에 대해서 도통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며칠 후 대학병원의 전화는 희망적이지 못했다. 입원하여 검사하고 추적관찰을 해야 한다는 것이란 소식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어머니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푹 쉬시며 나를 조용히 쳐다보셨다. 어린 나이에도 그 모습이 기억에 또렷한 이유는 정말 강해 보였던, 단단해 보였던 어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지구의 중력에 몇백 배에 달할 만큼 지면으로 내려와 있던 모습이 적어도 나에게는 가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때부터 대학병원에서 근 한 달가량을 추적관찰 당했다.(?)

얼핏 들으면 임상실험 당하는 동물 같이 느껴질 수 있으나 말 그대로 사실인걸.


난 아침, 점심, 저녁마다 새하얀 옷을 입은 간호사가 무시무시한 혈당체크기를 들고 손가락을 훔쳐간 후 따끔한 찰나를 지나 빨간 핏방울을 채취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혈당 수치는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가 다름없었고 간혹 한 번씩 회진을 도시던 의사 선생님은 5살 아이가 이 정도로 수치가 안 좋은 건 이미 진행이 많이 되었으며, 성인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철저한 식이요법과 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1형 당뇨는 인슐린이 몸에서 생산 및 분비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직접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주사를 맞아야 한다니? 주사라는 것은 본래 독감예방주사나 몸살기운이 왔을 때나 맞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걸 하루에 3번 평생 맞아야 한다니? 어린 나는 그저 주사라는 사실에 얼굴이 창백해져 어머니 등 뒤로 숨는 방법 밖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간호사는 인슐린 주사약과 주사기를 들고 와 시범을 보여주신다고 했고, 부모님은 간호사의 옆에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동공으로 임상실험체가 된 내 모습을 바라보셨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슐린 주사약은 보험관련 테두리 밖에 있었기에 상당히 비싼 약에 속했고 이는 재정적인 부담 그자체였었다.


투명한 주사약 한 병과 불투명한 약이 들어가 있는 한 병이 있었고, 뉴스에서나 볼 법한 마약사범들이 만지던 주황색 뚜껑 달린 얇은 주사기로 투명한 액체와 불투명한 액체를 순서대로 뽑아 내면 인슐린 주사가 준비되는 것이다.

이 주사기와 똑같이 생겼다.


생각해 보라. 5살짜리 아이가 주사 맞자고 하면 웃으면서 "네, 좋아요!"라고 하겠는가. 이 세상 어딜 가더라도 그런 아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난 울며불며 맞기 싫어서 복도를 뛰어다니고 계단을 타고내리고, 바짓가랑이에도 매달려보고 온갖 난리를 피워댔다. 하지만 결국 어른들은 아이를 제압했고, 가장 만만한 엉덩이에 주사를 놓아댔다. 그때마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병원 방에 가득 찼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이가 없었다. 본인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이제 걸음마 수준인 아이가 하루에 3번, 그것도 매일매일 주사를 맞아야 했으니까.


부모님은 그 모습을 눈물을 참으시며 묵묵히 공부하셨다. 이 방법으로 약을 제조해야 하고, 이 자세로 놓아야만 아이가 아프지 않을 것이며, 잘못 놓았을 땐 슬프지만 반대 부위에 다시 놓아야 한다는 그 괴로움이 부모님의 속을 사정없이 뒤흔들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선 나를 아프게 했어야 하니까.

정말로 아이러니 한 문장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혈당이란 게 항상 높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에 반대급부로 혈당이 현저하게 낮아져 버리는 저혈당 쇼크도 있다. 내가 응급실로 실려온 이유도 바로 저혈당 쇼크 때문이었는데,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입에서 쉽게 녹아 몸으로 흡수될 수 있는 초콜릿, 이보다 더 효과가 좋은 달달한 음료수가 하나의 해결책이었으며 어머니께서는 나 몰래 침대 옆 캐비닛에 이를 숨겨놓고 계셨다.


어느 날 나른한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은 하루종일 나에게 책을 읽어주시고 레고를 같이 조립해 주시다가 나른한 공기에 그만 침대에 기대셔서 눈을 붙이시고 말았다. 아직 쌩쌩한 기운이 휘감겨있던 나는 이 주체 못 할 에너지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레고도 다 만들었고, 책도 다 읽은 거고, 밖으로 나가자니 나말고는 모두 어른이라 친한 친구들도 없었기에 나는 그만 침대 옆 캐비닛을 열어버리고 만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속엔 판도라의 상자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갖가지 달달하기 그지없는 초콜릿 박스들과 사탕, 거기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환타 오렌지 1.25리터 페트병이 캐비닛 안에 꽉꽉 차 있었으니까.


다음 일은 여러분이 상상하던 그대로일 것이다. 눈이 돌아간 아이는 우적우적 초콜릿을 꺼내 입에 쑤셔박기 시작했고, 너무나 단 초콜릿이 혀에 닿자 목이 얼마나 마르던지 곁에 있던 환타도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었다. 강탈당한 자유를 다시 손아귀에 넣은 느낌이었으며 마치 세상을 날아갈 듯한 기쁨이 내 엔도르핀을 자극했고 나는 얼마나 좋았는지 어깨춤을 추면서 먹었다.


아뿔싸, 그때 어머니의 눈이 서서히 떠지는 것을 내 눈앞에서 보았고 어머니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시다 갑자기 눈동자가 천지개벽하듯이 떠지시더니 벽이 무너질 듯한 고함을 지르시며 나에게 달려드셨다.


수없이 내리쳐지는 맘스터치. 어머니의 등짝 세례에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억울했다.

난 내 병명이 뭔지도 모르고, 먹고싶은 것도 못 먹게 하고, 밖에도 나가면 안 된다고 하고, 맛없기 그지없는 푸르딩딩한 채소와 식감은 정말 골판지를 씹는 것 같은 잡곡밥 밖에 없는 식단만 강요하는 잔인한 어른들이 싫었다.


그리곤 어머니는 간호사를 긴급 콜하셨고 3명 정도 되는 간호사들이 내가 있던 침대로 우르르 몰려왔으며, 곧바로 범죄현장을 조사하는 형사들마냥 내가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시간은 언제 그랬는지 꼬치꼬치 캐물었고, 곧바로 손가락을 훔쳐 가 핏방울을 채취하는 형벌을 내렸다.

따-끔이라고 하셨지만 나에겐 절-망 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후에 1번만 맞아도 되는 주사를 그때 추가로 한 대 더 맞아야 했으며, 간식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는 영영히 미궁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는 간호사라는 수문장들이 지키게 되었다.


아, 나의 짧았지만 행복했던 한순간의 추억이여.

이제 안녕.




가끔 부모님과 함께 모여있을 때 이 얘기를 하면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시며 그런 때도 있었다라며 맞장구치신다. 내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었다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가뜩이나 집중 추적관찰 당하고 있는 애가 어떻게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는지.


내가 생각해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그 어린애가 얼마나 그것이 먹고 싶어서 그랬을까 얼마나 자신을 속박하고 구박한다고 생각했기에 5살밖에 안되던 애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라며 눈시울을 붉히신다.


그래, 그럴 때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진정한 사건은 병원에서 퇴원 후 나이가 들어가면서,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다음 이야기에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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