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란 거대한 벽

소아당뇨 환자가 학교라는 사회에 녹아드는 순간

by 윤슬

5살 당뇨라는 절망이 나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찾아오게 되면서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명확히 부모님의 케어 속에서 철저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나이대이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학병원에서의 관리 방법과 주사 방법을 모두 전수받아 부모님이 간호사, 의사로 변모하신 것도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하루종일 놀아도 집 바로 앞에서의 한정된 공간은 어찌 보면 큰 안도감을 유지하게 했다.


하지만 8살이 되면서, 이제 나는 초등학교라는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했고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왜냐하면 부모님도 직장을 갖고 계셨고 학교로 간 그 짧은 시간은 마치 영원히 멈춰버린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는 거리가 좀 되었다. 그러므로 긴급상황이 터지면 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리스크가 존재하고 있었다. 또한 부모님이 구축해놓은 안전가옥을 벗어났기 때문에 걱정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망의 입학식 날,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하하 호호 웃으며 설렘 반 기대 반, 그리고 약간의 긴장이 감도는 어수선한 입학식 날. 나는 이와 완전 반대의 상황이었다. 걱정이 90%, 설렘이 10% 정도였달까.

부모님은 어서 빨리 담임선생님이 누구신지, 담임선생님에게 누구보다 빠르게 면담을 요청하여 나의 상태를 설명하고 조치방법에 대해서 알려드리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다행히 내 인생의 첫 담임선생님은 인자하시고 아이들의 감성을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는 선생님이셨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상담을 최대한 열심히 들어주시고 만약의 긴급상황에 대한 조치법을 본인의 수첩에 일일이 적어 내려 가셨다.


그런 인자함 덕분에 나는 선생님의 관심을 독차지하였으며, 특히 활동량이 많은 수업시간에는 나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확인해 주셨다. 마치 내가 아무런 병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니,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은 나른 나른한 4월~5월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점심시간이 되자 급식실로 다 같이 내려가서 맛있는 밥만 먹으면 되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밖으로 나가 땀을 흘려가며 활동했기에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것처럼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느 순간 말이 어눌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혈당 쇼크의 가장 큰 특징은 방금까지만 해도 또렷한 어투로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고 반응속도가 느려지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인지능력, 판단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렇게 큰 징후가 아니기 때문에 철저한 관심이 아니라면 그냥 몸상태가 조금 이상하구나라는 것밖에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급격하게 혈당이 강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고 온몸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10초, 20초만 있으면 급식판에 밥을 받고 자리에 앉아 혈당을 올릴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급식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찾아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무엇인가 이성의 끈이 끊어지듯이 정말 기억이 뚝하고 사라져 버렸다. 엄청 시끄럽고 내 몸을 사람들이 이리저리 끄는 느낌만 생각난다. 그러곤 나는 저혈당 쇼크라는 미궁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

"예, 어머니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 뭔가요, 보건 선생님 빨리 불러와!"

"선생님, 교무실에 초콜릿이든 뭐든 단 거 다 가져와요, 음료수도 좋으니까 빨리!"

"정신 들어? 괜찮아 괜찮아 부모님 오고 계시대, 제발 정신 차려야 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직 꿈인지 현실인지 자각할 수도 없었지만 입에 뭔가 들어와서 본능적으로 삼켰다. 점점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내 눈앞엔 눈물을 흘리고 계신 담임 선생님과 어머니가 와 계셨다. 혈당체크기를 이용해서 핏방울을 내고, 점점 올라가는 혈당을 보며 모두 다 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보건실의 침대에 누워 어른들의 걱정 어린 시선 아래 보살핌을 받았고, 점차 의식이 돌아오자 어마어마한 부끄러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실 저혈당 쇼크는 지금 어른이 된 때에도 간혹 찾아오긴 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마주할 때면 그 창피함과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이후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도 퇴근 후 나에게 어떻게 된 건지, 이제 가방 안에도 달달한 비상식량을 넣어서 등교를 시켜야겠다고 하셨다.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어제 그렇게 소란을 피워댔지만 다음날 등교할 땐 또 말괄량이 같은 미소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오는 것은 그렇게 인자하시던 선생님의 고함이었다.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선생님은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리시더니 나와 함께 교무실로 가셨다. 그러곤 의자에 나를 앉히시고 천천히, 그리고 내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게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해 주셨다.


무슨 일이 있든 지금 당장 몸 상태가 이상하면 선생님들에게 알리기, 안된다면 친구들에게라도 알려서 선생님에게 전달이 되도록 조치하기, 수업시간이라도 상관없으니 또 저혈당이 올 것만 같으면 괜찮으니까 그 자리에서 초콜릿 등 비상식량을 먹기 등등...


선생님은 어린 내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를 선사해 주셨다.

그리고 기억나는 마지막 문장은

"무엇이 됐든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너 자신이야. 네가 이걸 숨긴다고 해서 아무도, 그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네가 상황을 대비할 수 있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해. 그러니, 아침에 고함지른 것은 미안하지만 이는 결국 널 위한 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의 따뜻한 품이 느껴졌다. 동시에 등을 토닥토닥거리시던 그 온기가 나에게로 느껴져 마치 어머니가 한 명 더 늘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당시엔 이젠 이런 일은 안 일어나겠구나라며 막연한 희망적인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소아당뇨환자의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굵직굵직한 사건이 발생하게 됐으니...

이는 다음 이야기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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