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갑자기 왜 이사 가요
9살 당뇨환자, 새로운 환경
2003년 6월
여름의 문턱으로 넘어가고 있던 평화로운 동네. 갑작스럽게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한 데 불러 모아 가족회의를 하셨다. 어머니는 이미 내용을 다 알고 계셨는지 뾰루퉁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갈 준비를 하셨다.
이윽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이사를 가게 됐단다. 갑자기? 누나와 나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고 곧장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날 휘감기 시작했다. 모든 인간이 그렇지만 자신이 살고 있던 보금자리를 벗어나 그것도 가까운 곳이 아닌 타 지역으로의 갑작스러운 이사는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다.
울며불며 바닥에 뒹구르고 난동을 피워도, 아버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후였고 우리에게 그저 '통보'하셨다.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버지의 결심은 마무리된 후였는데, 사유는 할아버지의 건강악화였다. 할아버지는 대구에서 혼자 살고 계셨지만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본인 아프신 것도 참으시면서 지내셨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 힘이 드셨는지 자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셨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집 근처의 아파트를 알아보신 거였다.
나는 갑작스럽게 학교를 떠나, 아니 내 세상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뜻밖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나의 당뇨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떠나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는 점이 허망했다.
처음부터 선생님과의 면담을 다시 해야 하고, 내가 환자라는 것을 밝혀야 하고, 친구들을 처음부터 다시 사귀어야 하며 그 친구들에게도 나는 당뇨환자라 이러저러 관심을 주어야 한다는 등 온갖 얘기를 도돌이표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 싫었다.
실제로 아버지와 그일 이후로는 말도 하기 싫어서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도 않고 단식투쟁도 해보곤 했다.(하지만 저혈당은 되면 안 되니까 강제로 끌려 나오긴 했지만)
2023년 9월
그렇게 우리 가족은 새로운 아파트에 계약을 하고 커다란 익스프레스 차에 올라타 이삿짐을 싣고 대구로 떠났다. 그동안 내가 다니던 학교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나하나 드리고, 친구들에게 공식적으로 작별인사를 하며 사내아이 답지못하게 눈물도 펑펑 흘려댔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이사만큼은 받아들이기 싫었으니까..
새로운 보금자리인 동네에 도착해 보니 그 동네는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온 데 눈길이 닿는 곳마다 논밭만이 내 눈에 들어왔고, 그 중간에 외롭게 아파트 단지 하나가 서있는 모양새였다. 또 아파트 이름도 비둘기, 민들레 아파트 같은 이름이라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재는 온갖 영어이름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심플하면서 한글로 된 아파트가 대다수였으니까.
우리 집은 그나마 16층 고층이었다. 어머니는 애써 이곳에선 동네도 한눈에 보이고 서늘바람이 베란다를 통해 슝슝 들어와 환기시키기도 좋다며 자신을 위로하고 계셨다. 난 입이 대빨 튀어나온 채로 짐정리를 도와드렸다.
사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들이기에 아버지가 내리신 결정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지만 그냥 맘에 들지 않았었다. 그래서 난 아버지가 싫다고 밥 먹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나, 가만히 있다가도 외쳐댔다.(그러다 종아리 회초리를 맞은 건 안 비밀이다.)
자, 이제 학교에 등교해야 한다. 어머니는 이사 온 날로부터 바로 학교 측과 연락하여 전학생을 받아줄 수 있도록 조치하셨고 학교에서도 금방 연락이 와 모든 준비는 되었으니 월요일부터 등교하면 된다고 했다. 아, 지금까지 관계를 이루어놨던 나의 모래성은 이리 쉽게 무너지는구나. 잠이 오질 않았다. 주말에 맞추어 이사를 완료했고 내일이면 모든 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란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부터 구시렁구시렁 하며 어머니의 차를 타고 등교했다. 어머니도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하는 처지였기에 둘만의 한숨만이 차 안에 가득 찼다. 어머니는 학교 안 으슥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학교로 들어가기 싫어하는 나의 손을 꽉 잡으시고 교무실로 향했다. 하필 그때가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던 시간이라 그랬는지 처음 보는 나를 보며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대는 소리와 시시덕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쉴 틈 없이 들려왔다.
교무실로 들어가니, 전에 날 지도해 주신 담임 선생님보단 젊으신 여자 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계셨다. 정말 죄송하게도 성함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첫인상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전 담임 선생님은 한없이 인자하신 느낌이었다면 이 선생님은 무엇인가 날카로운, 곧은 모습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어머니 품 뒤에 숨어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했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여우셨는지 선생님은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이름이 이쁘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굳게 경직되어 있는 몸이 약간이나마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선생님의 손을 잡으시며 당뇨환자라는 것을 설명하시기 시작했다. 또한 이 아이는 언제 어디서든지 쇼크가 올 수 있기에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라는 점과 야외활동을 하게 된다면 최대한 후순위에 넣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거리시며 수첩에 관련 내용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셨다.
어머니와의 인사를 뒤로한 채, 난 선생님을 따라 차가운 복도를 향해 걸었다. 선생님이 가는 도중에도 반 아이들이 워낙 착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셨고, 이곳은 자연과 가까워서 야외활동을 하게 되더라도 멀리 안 가니까 무리하는 일은 거의 없을 거라 하셨다.
드르륵-
교실문이 열리자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이내 멎는다. 그리곤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나에게 꽂혀 이리저리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교탁 옆에 날 세워두시곤 우리 반에도 전학생이 왔고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말씀하셨다. 그리곤 나에게 자기소개를 하라셨다. 눈을 바닥에서 뗄 수가 없을 정도의 관심은 너무나 부담스러웠지만 어머니의 조언이 기억나 내 이름과 사는 곳, 좋아하는 것, 마지막으론 잘 지내보자는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아이들은 내가 말하는 도중에도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귀를 빌려가며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고, 앞 뒤 옆 할 것 없이 자신들과 다른 이방인에 대해 평가하기 시작했다. 마치 발가벗은 채 무대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었달까.
선생님께서는 내 자리를 지정해 주셨고 나는 쭈뼛쭈뼛 자리에 가서 앉았다. 옆에 짝꿍도 어색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 또한 눈앞의 책상만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선생님이 복도로 나가시자마자 반 아이들이 우르르 내 자리로 몰려와 청문회(?) 아닌 청문회를 개최했다.
"어디서 왔어?" "거기가 어디야?" "어디 살아? 어 나도 거기 사는데!" "축구 좋아해?" "왜 왔어?" 등등
온갖 질문 속에서 난 눈동자를 미친 듯이 굴리며 하나하나 대답해 줬다.
지금은 거의 기억나진 않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이 순수하고,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제일 중요한 사실만은 말하지 못했다. 나는 당뇨환자라고. 특히 초등학생들처럼 원초적인 직감이 중요한 시기에는 '나 혹은 우리'와 다르다는 인식은 곧 '쟤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쉽게 찍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그때부터 내가 아프단 사실에 대해 먼저 선뜻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담임선생님께서 종례시간이 다 되어서야 반아이들에게 나는 몸상태가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다며 친구들이 그만큼 잘 챙겨줘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해 주셨고,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노코멘트하셨다.
하교를 하면서도 친구들이 다가와서 내가 왜 아픈지에 대해서 대답을 요구했지만 나도 그냥 웃으면서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며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 후 나의 근심, 걱정은 기우였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첫 숙제인 매일매일 써야 하는 그림일기장에 끄적끄적 그날 있었던 일을 적어 내려갔다.
일기장엔 해맑게 웃고 있는 내 모습과 반아이들이 날 반겨주는 그림이 그려졌다.
앞으론 이런 모습만 그려지겠지라며 기쁜 마음으로 일기장을 마무리했지만
진짜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초등학생 당뇨환자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