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의 변천사

당뇨환자들의 한줄기 희망이자 고민거리

by 윤슬

앞서 말한 것처럼 당뇨환자들 중에서도 1형 당뇨환자들은 췌장의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거나 아주 약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마다 혹은 본인의 혈당상태에 따라 인슐린을 외부에서 주입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사기의 올바른 사용방법을 숙지해야 하고, 환자의 발육상태에 맞는 담당 주치의와의 진단이 병행되어야 한다.

나는 당시만 하더라도 마치 마약사범들처럼 주황색 뚜껑이 달린 주사기와 약병을 따로 들고 다니며 인슐린 약을 그 자리에서 조제하여 주사기로 뽑아낸 후 직접 내 팔이나 허벅지 혹은 복부에 주사했다. 이는 한번 할 때마다 많은 시간제약이 따랐는데, 투명한 약과 불투명한 약을 일정비율로 뽑은 뒤 한 주사기 내에 섞어 몸에 투약하는 일이었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이 약병은 유리로 만들어져 보관하는 데에도 상당한 신경이 쓰이고 외부로 들고 다니는 데에도 섬세한 관리가 동반되어야 했다.

속효성 인슐린 : 휴물린 R
피하주사 30분 후에 작용이 시작되므로 식사 시작 30분 전에 주사해야 함.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도가 높고 특별한 첨가물이 없으며 중간형 인슐린과 섞어 사용 가능

중간형 인슐린 : 휴물린 N
피하주사 2~4시간 이후에 작용이 시작되며 초속효성 인슐린보다 작용시간이 길고 아연과 어류단백질 성분으로 인해 침전물이 가라앉아 뿌옇게 보임

출처 <나무위키>

실제로 내가 들고 다닌 약은 휴물린 R, 휴물린 N이란 약물이었는데 속효성과 중간형 인슐린의 이름이었다. 5살부터 주사를 맞을 땐 중간형 인슐린만 맞아도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점점 발육함에 따라 용량도 늘어가고, 학교 급식 혹은 군것질 거리의 양이 늘어나며 이에 맞춘 속효성 인슐린도 함께 병행하게 되었다.


속효성 인슐린은 말 그대로 몸에 작용되는 속도가 기존 중간형 인슐린보다 빠르므로 식사 시작 30분 전에 맞아야 한다. 30분 만에 효과가 발현되기에 만약 주사를 맞고 나서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식사가 지연된다면 이는 엄청난 위험을 동반하게 된다. 실제로 식당가기 전에 주사를 맞고 나서 갑자기 저혈당 쇼크가 와서 의식을 잃어버렸다는 사례도 많이 접했는데 그중 몇 번은 나도 경험해 보았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중간형 인슐린은 속효성 인슐린보다는 작용시간이 늦지만 그만큼 유지시간이 길다고 할 수 있다. 한번 맞으면 적어도 10시간 넘게는 약효가 얕게나마 몸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의 기본적인 혈당관리를 위해선 중간형 인슐린이 기저에 작용하고 있어야 혈당 스파이크의 발생률을 낮춰줄 수 있는데, 이 약은 다른 건 둘째치고 냄새가 고약했다. 심지어 단백질 성분으로 인해 항상 약병 바닥에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뽑았다간 중요한 성분이 빠진 상태로 몸에 주사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나는 이 약들을 섞어서 주사하라는 선생님의 진단을 받게 되었고, 실제로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이 방법을 고수했다. 그러나 약병은 유리병에 들어가 있으므로 온도에 상당히 취약했고 파손될 가능성도 높았기에 언젠가 대학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담당 선생님께 나의 고충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더욱 몸관리하기가 버거워질 테니 이참에 새로운 주사기를 써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난 주사기가 똑같이 생겼지라며 의구심을 품었지만 실제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주사기는 상당히 낯선 모습이었다.

펜형 인슐린은 당뇨병 환자가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되는 인슐린을 투여하는 데 사용되는 의료 기기임. 주사기처럼 생겼지만 펜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어 사용자가 쉽게 조작 가능함.

출처 <Chat GPT>

마치 굵은 만년필 같이 생긴 물건이 주사기라니? 상당히 신기했다. 직접 약물을 뽑아 쓰는 불편함을 덜고자 이미 펜 안에 약물이 충전되어 있고 다이얼을 돌려 본인에게 맞는 적정량을 주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 주사기를 사용하던 당뇨환자들에겐 획기적인 발명품처럼 느껴졌다. 다만, 앞의 주삿바늘(펜니들)은 일회용이므로 부가적인 소모품은 구입을 따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일단 약을 별도로 뽑아내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나는 부모님께도 그렇고 선생님께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내 몸에 맞는 주사기를 담당 선생님께서 골라주셨고 이제부턴 휴물린 계열의 약이 아닌 휴마로그와 란투스라는 주사약을 주입해야 한다고 하셨다.

속효성 인슐린 : 휴마로그퀵펜
피하주사 15분 후에 작용이 시작되므로 식사 시작 15분 전에 주사해야 함.
지속시간이 2~5시간이며 빠른 효과로 인해 저혈당 쇼크를 주의해야 함

지속성 인슐린 : 란투스주 솔로스타
작용 후 지속시간이 24시간이며 1일 1회 주사로도 가능함. 최대 1회 80의 용량까지 주사가능함.

출처 <나무위키>

실제로 첫 사용후기는 만족 대만족이었다. 거추장스러운 색 뚜껑의 일회용 주사기를 별도 처리할 필요도 없고 약병을 이리저리 굴린 후 주사기로 뽑아내는 과정도 필요 없었다. 그저 펜니들만 교체한 후 다이얼을 돌려 몸에 주사하면 끝이라니.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듯한 개운함이 나에게 다가왔다.


다만 기기자체가 가격이 좀 있고 또한 온도에 취약해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기기를 사용도중 잃어버리거나한다면 주사기에 남아있는 잔여 약물 전체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점이 단점이었다. 그래도 어떤가. 나의 생활을 바꾸어주기엔 충분한 기기인 것을!


현재 성인이 된 시점에까지도 나는 펜형 인슐린을 주사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생이 된 후 잦은 술자리로 인해 주사기를 잃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정말 바닥에 돈을 뿌리고 다닌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 변수를 제외하고 나면 펜형 인슐린은 이제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만큼 사용함에 편리하기 때문이겠지.


마지막으로는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추천했지만 내가 듣자마자 거절했던 기기이다. 바로 인슐린 펌프.

인슐린 펌프 치료는 인슐린을 지속적으로 주입해 주는 인슐린 펌프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생리적인 인슐린 분비 패턴과 유사하게 몸속에 인슐린을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매번 인슐린을 투약하는 것이 아니라 다량의 인슐린을 기계에 보관하고 기계에 연결된 바늘을 복부 피하에 꽂아 두면 일정 주기로 적정량의 인슐린이 자동으로 몸속에 주입되는 원리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인슐린 펌프란 위의 설명처럼 말 그대로 기계를 몸에 장착하고 피부에 바늘을 꽂아두면 일정주기로 인슐린이 자동주입되는 원리의 기기이다. 내가 이제껏 했던, 주사기를 이용해 약을 뽑고 몸에 직접 주사하거나 또 펜형 인슐린을 꺼내 다이얼을 돌리고 주사하던 방식이 아닌 연속혈당측정을 통해 기기에 장착된 적정한 양의 인슐린이 자동으로 몸에 주입되는 방식인 것이다.


사실 설명만 들었을 땐 이 방식이 가장 당뇨환자로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지만, 어린 나이의 내가 이 기기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 그것도 역시 소아당뇨캠프에서의 일이었다.


나보다 3살 많은 형이 캠프에 온 일이 있었는데 이 형은 주사기를 들고 다니지 않아 항상 궁금했었다. 그래서 형 자리로 다가가 형은 어떤 주사 맞아? 라며 물어본 순간 형은 자신의 티셔츠를 걷어올렸고 웬 파란 기계가 몸에 붙어 있었다.

순간 사이보그를 마주한 인류처럼 난 그대로 굳어버렸고, 형은 싱긋 웃으며 이런 주사기도 있다고 설명해 줬다.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인슐린 펌프였던 것이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형의 설명을 들어보니 본인은 다른 아이들처럼 주사량을 매시간마다 고민할 필요도 없고 단지 주치의의 진단에 따라 적정량을 입력하면 기기가 시간에 맞추어 알아서 인슐린을 주입시켜 준다고 했다. 그래서 솔직히 힘들거나 불편한 점은 없다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펌프를 하는 게 좋다고 추천하기도 했다.


난 그 자리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런 기계를 내 몸에 붙이고 다니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해버리고 말았다. 일단 기기를 차게 되면 인체의 활동에 큰 제약을 주게 되고, 더운 여름이 되면 땀이나 습기 때문에 기기가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고장 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거기다가 만약 계곡이나 바다에 놀러 가게 된다면 물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밖에서 낙동강 오리알처럼 구경만 해야 한다는 끔찍한 상상이 날 덮쳐서 더욱이 큰 반감만 가지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단점은 실제로 이 기기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단점이었고, 펌프를 사용하는 혹은 사용하려는 환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그러나 결국 이 기기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인슐린 주입과 그에 따른 건강관리였기에 부가적인 단점은 단지 뒤따라오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했다.




향후 내가 나이를 더 먹어서 운동능력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나이대가 된다면, 그땐 펌프 장착도 고려해 보고는 있다. 그 정도 되면 이제 땀 흘리는 일은 안 하겠지 하면서도 뭔가 내 몸에 굴복한 느낌이 나서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현재는 그런 고민은 접어두고 단지 맞고 있는 주사기에 집중해야겠다. 펌프는 적어도 20년 30년 후를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지금은 펜형 인슐린인 것이다.


그리고 또 모르지 않는가 10년 안에는 더 획기적인 기기가 발명되어 당뇨환자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줄지도! 그때까지 모든 환우들에게 잘 지내고 계시라는 행운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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