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 So High

혈당체크기 : High High

by 윤슬

혈당관리는 정말 힘든 일이다.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몸에서 자연스레 인슐린이 분비되기 때문에 공복 혈당과 식후 혈당 간의 간극을 스스로 조절하기 마련인데 당뇨환자들은 그런 부분이 쉽게 해결되지 않기에 철저한 식단관리와 운동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날 때부터 건강한 식단관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당연히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다만 우리는 살면서 주위에 온갖 자극적인 음식과 군것질거리의 유혹에 휩싸여 있다. 더군다나 나이가 어린아이일수록 달달한 음식에 눈이 번쩍 뜨이게 되고 주위 친구들이 너도나도 달달한 간식을 먹었다며 자랑하기 급급하기에 유혹의 덫에 쉽사리 걸려드는 것이다.


나도 당뇨발병 전에는 정말 입에 과자를 달고 살았다고 한다. 음료수는 덤이므로 둘을 합치면 사실상 어마어마한 혈당 상승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밖에 나가 기진맥진할 정도로 뛰어다니고 했지만 결국 먹는 거에 비해선 그다지 상쇄되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결국 당뇨에 걸리게 되었고 어머니의 철저한 노력에 의해 강제로 식단을 모두 바꾸고 내가 좋아했던 자극적인 음식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쯤은 치팅데이처럼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긴 했으나 그마저도 제한적으로나마 먹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치킨은 무조건 후라이드(심지어 어머니는 껍질을 다 벗기고 살코기만 주셨다.), 음료는 무조건 당분이 별로 없는 밍밍한 차 종류들이랄까.




그날도 여전히 밍밍하기 그지없는 식단에 취해 티비에서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난 침대에 뒹굴며 강철의 연금술사에 흠뻑 빠져 입을 벌린 채 초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혈당체크를 하신다며 내 손을 가져가셨다. 그리곤 잠깐의 따끔함을 넘어 기기가 혈당을 체크하고 있었고 잠시 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시며 이게 뭔지 당황스러워하셨고, 나도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기기가 나타내는 한 단어에 집중했다.


'HIGH'


어디서 많이 본 단어 같은데, 초등학생과 어머니는 이 뜻을 알리 없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영어사전을 뒤적거려 뜻을 알아냈지만 기기에서 왜 이런 영어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다시 내 손가락을 가져가 혈당체크를 하셨고 난 그럴 때마다 손가락 끝이 너덜너덜해졌다.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자꾸만 HIGH가 나오자 어머니는 기기가 잘못됐는지 의심하기 시작하셨고, 어쩔 수없이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지며 전화를 끊으시더니 바로 주사기를 찾으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급박한 어머니의 행동을 보곤 되레 겁을 먹고 침대 구석으로 뒷걸음쳤다.


어머니가 병원으로부터 들은 진단은, 'HIGH' 즉 기기가 측정할 수 있는 혈당의 범주를 넘어선 상태란 것이다. 혈당이 너무 상승해서 기기가 측정을 실패한 것이다! 그 말은 즉슨 지금 당장 인슐린을 주사하지 않으면 고혈당으로 인해 몸에 크나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주사기를 들고 무섭게 달려드시는 어머니를 피해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팔과 다리가 뻣뻣해지고 입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갔으며 목이 너무나도 말랐다. 엄청난 갈증이 찾아왔다. 반사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 갈증을 해소하려고 했지만 온몸이 뻣뻣해져 물병을 여닫는 단순한 행동조차도 쉽사리 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시고는 곧바로 의사 선생님이 지시하신 인슐린 양을 팔에 주사하셨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뻣뻣해진 몸이 점차 호흡까지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데에서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있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치 가위에 눌린 느낌이었고 그 잠시동안 지옥을 맛보고 왔다.


초속효성 인슐린의 작용시간은 피하주사 후 약 15분부터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주사를 맞히자마자 바로 내 팔과 다리를 마사지하시며 약이 빨리 몸에 돌기를 바라셨다. 놀랍게도 잠시 후 뻣뻣해진 몸이 풀리기 시작하며 그제야 큰 한숨과 함께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 처음으로 고혈당의 무서움을 느꼈다. 항상 저혈당만 경계하며 혈당은 내려가지만 않으면 괜찮다라던 내 오만함이 처음으로 깨지게 된 것이다.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 어머니도 저혈당뿐만 아닌 고혈당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하셨다. 물론 그로 인해 내 식단관리는 더더욱이 까다로워졌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까다로운 병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들은 중도(中道)의 삶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행실이나 관념에 속한 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뇨환자들에게는 중도의 삶은 행실과 관념에다가 건강에까지 영향을 뻗치고 있어야 한다. 고혈당과 저혈당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끝없는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도를 지키는 삶은 정말 어찌 보자면 재미없고, 식상할 수도 있고, 본인의 욕망을 묵묵히 탄압하고 억제해야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먹는 행위를 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강제로 억압해야 하니까.




서른 즈음이 돼서는 옛날처럼 부모님의 철저한 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철저한 식단관리와 운동을 병행해야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선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턴 정말 관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회식이란 이유로,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단 이유로, 이 정도 보상은 나에게 해줘도 된다는 핑계로 막무가내로 사는 인생은 확실하게 몸에 좋지 않다.


지금만 볼 게 아니라 향후 미래를 봐야 하는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정신 차려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당뇨환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라는 롤모델보단 "적어도 저렇게 살지만 않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겠다"라는 롤모델이 내가 되어보겠다고. 그러니까 나를 보고 이렇게만 행동하지 말아 달라고. 악랄한 지침이 되어 여러분들은 제대로 된 건강관리를 하기 바란 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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