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by 윤슬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새벽 병실에서 어머니와 나누었던 그 짧은 순간을.


당뇨판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런저런 검사를 하며 의사와 간호사들의 감시를 한눈에 받고 있었고 그런 나를 부모님은 회사도 나가지도 않은 채로 간호해 주셨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기진맥진한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어머니는 침대 옆 간이침대에 불편하게 몸을 뉘이신 채 잠들 준비를 했다.



어머니는 내가 잠에 들 때까지 옆에서 책을 읽어주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슨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책 속 주인공이 마지막엔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어머니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곧 따라 눈이 그렁그렁해지는 나를 보시고는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말없이 쓰다듬으시는 그 손길, 체온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그리곤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의 눈빛을 쳐다보며 그저 시간만이 흘렀다. 서로의 아픔과 고통이 전해지고 부단히 나를 위해 한 몸 희생하시는 어머니의 고충이 전해지는 그 시점에 나는 한낱 어린 5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본인 배로 낳으신 아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기에도 바쁜 이 시간에 어두컴컴한 병원 침대에서 갇혀있다는 사실이 그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그러므로 본인은 더욱 나에게 할 말이 없으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참으시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한마디 하셨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우리 이쁜 아들 내가 내가 하느님, 부처님한테 얘기해서 엄마가 병 가져갈게. 그러니까 아프지 말자. 이런 데서 빨리 벗어나서 우리 재밌는 곳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하고 싶은 거 다하자."


"... 응"


나는 어머니의 말뜻을 다 헤아릴 순 없었지만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마음속의 공허함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 놈의 당뇨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천륜의 관계를 이리 애절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 일 이후에는 보통처럼 병원에서 받는 검사도 꼬박꼬박 받고, 이제는 추적관찰만 하기로 의사 선생님과 합의를 한 후 퇴원했다. 집으로 돌아온 날 그리웠던 보금자리의 냄새와 온기가 느껴졌고 아버지와 누나의 축하 속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모였다.


어머니는 그 당시 일에 대해선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의 겪은 그 장면은 내 인생에서 영영 잊히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헤매고 있던 건 바로 당신이었다는 것을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어엿한 성년이 되어 타 지역에서 회사도 다니며 자기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가는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이 되기까지도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그 옛날 내가 느꼈던 감정에 비해선 무엇인가 가슴 저리는 감정으로 발현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웃기기 그지없다. 그때의 희생과 지금의 희생은 같은 맥락이지만, 성년이 되고 나서 느끼던 감정보다 5살의 동심이란 껍질을 더 빨리 깨어 나오게 된 감정은 천지차별인 것이다.


왜 나는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보다 더 빨리 눈치를 보게 되고, 상황 파악하는 능력이 늘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내가 절절히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나는 당뇨라는 병으로 인해 일찍 애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아이로서 당연히 택할 수 있는 행복보단 나로 인해 눈물 흘리던 이들의 고통을 먼저 느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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