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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0. 2024

내가 나를 잠시 접어두기

3인칭으로 바라본 내 주위의 변화

첫 직장에 발을 내디딘 시점은 지금부터 약 5년 전, 내가 25살이었을 때였다. 20대 중반을 막 지나고 있을 시기라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하고,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기 바빴다.


나는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공무원을 하고 있었기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그 흔한 친척이나 학교 선후배도 이곳엔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면접 스터디를 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발판 삼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기에 사실상 모두 형님 혹은 누나들뿐이었다. 대학교에선 고학번에다가 화석 그 자체였던 내가 한순간에 다시 막내로 돌아간 것만 같아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금방 익숙해져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 그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뒷담도 까고 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술 한잔 하며 털어내기 바빴다. 


그때만 하더라도 모두 어렸었던 것 같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신 분들도 계셨고 아직까지 솔로이신 분들도 계셨고(물론 나도 솔로부대의 한 축을 맡고 있었다.), 오랫동안 연애하시다가 헤어진 분들도 계셨고 다사다난한 모임 그 자체였으니까. 그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한 데모여 술 한잔 하며 웃고 떠들고 했을 때 나는 정말이지 즐거웠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20대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었고, 인사이동을 이유로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해 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눈으로만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었고, 굳이 내 주위의 사람들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선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난 모임에서 솔로생활을 이제 끝내고 연애를 시작하시는 분도 봤고, 분명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는데 벌써 4~5년째라고 하시는 분도 봤고, 연애를 마무리하고 결혼을 준비하시는 분들도 봤다. 


아, 정말 나만 변한 게 없구나. 

순간 이 한 문장이 내 머리를 세게 후려친 것만 같았다. 웃고 떠들던 회식공간에서 갑자기 나는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 시점으로 변해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내 뒤통수 뒷 공간에 섰다. 나라는 존재만 시간의 흐름 속에 동 떨어져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이었다. 


그러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들의 표정을 세심하게 볼 수 있었다. 결혼 준비를 앞두고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앉아계시던 형님. 임신 사실을 밝히며 여러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시던 누님. 소개팅은 번번이 시도하지만 그다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한숨만을 쉬던 형님 등. 


다들 열심히 달려왔고, 달리고 있구나. 

목적지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다들 어른이란 목적지에는 가까이 다가가고 있구나.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3인칭으로 바라보고 있던 내 뒤통수에 흡수되듯이 순식간에 1인칭으로 돌아오면서 뭔지 모를 위시감이 날 휘감았다. 난 뭐 하고 있지? 난 왜 5년 전이랑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지?라는 생각이 술김에 더욱 빠르게 몸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건 더더욱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 진짜 어른으로 느껴진달까. 


서른이란 나이대가 되면 어엿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니, 현실은 녹록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건 게 아닐까 싶다. 만약 현실이 녹록지만 했더라면 내 주위의 사람들도 함께 똑같은 현상을 겪었겠지.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에게 덮여있던 세계라는 껍질을 깨고 항상 나아가고 있던 거였다. 


그들의 발목을 잡고 내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막연히 그들이 나아가는 모습만을 바라보면서 허망에 젖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향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가 되고 싶다는 나의 소망은 생각해 보면 잘못된 생각은 아닌 것 같기에 위로를 해보는 거다. 


누군가는 나이 앞에 단위가 바뀔 때마다 세상이 변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근데 24년 새해가 밝은 순간 나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똑같은 해가 떴고 똑같은 바람이 불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감흥이 없는 새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윽고 나는 술자리에 앉아있던 우리 모임 사람들을 광각렌즈를 낀 것처럼 넓게 바라보았다. 개개인의 모습이 아닌, 우리 모임 전체를 초점으로 잡고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바라보기 좋았다. 항상 인생이 행복할 순 없지만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옛날 모습도 생각나고, 그때보다 구체적인 어른의 모습을 한 채로 서로 간의 새로운 고민들에 대해서 공유하고 해답을 찾는 모습을 보며 뭔가 모를 뿌듯함도 들었다. 




그러자 코에서 음음거리며 음악 멜로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은 기쁜가 보다. 그래, 이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살지라며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저, 다들 아프지 말고 행복해하자. 거창할 필요도 없고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도 서로 굳건하게 갖고 지내보자. 조만간 형님, 누님들의 조카들이 세상에 나올 텐데 무슨 선물을 준비해야 할까.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동시에 신기하다. 다른 형님의 결혼식엔 축의금은 얼마를 챙겨드려야 할까. 얼마나 멋진 결혼식을 하실까. 얼마나 행복하실까 지금...(중략)


그냥, 이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내가 할 도리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잠시 접어두고 이 사람들의 미래를 기도해 보자. 


언젠가 또다시 3인칭이 되어 나를 바라볼 때가 올 순 있지만

그때마다 형님 누님들, 또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기억할 것이기에. 

.

.

.

나는 잠시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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