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Feb 25. 2024

낭만을 잃어버린 이들이여

 낭만, 요즘 시대에 이 단어가 통용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 때 낭만의 시대에 살았다. 물론 그 의미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일종의 밈(meme)으로 치부되긴 한다만 그럴 때가 있었더랬다. 


낭만이라고 하면 거창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순 있지만, 사실 엄청 사소한 의미라도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조용히 방 안에서 좋아하는 재즈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걷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허공만을 바라보며 등등...


우리 삶에 낭만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고 우린 그 낭만과 인생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샌가 낭만은 오글거리는 단어로 치부되고 말았다. 낭만에 대한 나의 사견은 "지루하기 그지없는 삶에 감성적인 양념을 버무리는 일종의 조미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밋밋하고 재미없는 삶을 견뎌낼 깜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릴 적부터 낭만을 향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오글거린다느니, 중2병에 걸렸다느니 비웃음의 대상으로 판단하고 무차별적인 공격하기에 정신이 없다. 왜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이 회색빛 현대사회에서 알록달록한 낭만을 향유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크나큰 이유는 본인을 돌아볼 시간이 없어서인 것 같다. 본인을 성찰하고 본인의 삶에 낭만이란 조미료를 첨가해야 하는 순간이 있어야 하지만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그마저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취미생활을 하거나 문화생활을 즐기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낭만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단순히 취미생활, 문화생활, 운동을 한다며 낭만이란 단어 대신 갖가지 다른 단어를 말하곤 한다. 




 낭만 있는 삶.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낭만을 즐기냐고 물어본다면 못하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시간적 여유, 인간적 여유, 사회적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현대인들에게는 낭만은 사치라고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린 그 여유를 강제적이라도 가져야 함에 확실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살면서 많은 고통과 지옥 같은 경험이 우리 앞뒤에 존재하고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 경험에 대하여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된다면 단면적인 인생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그와 비교하여 행복한 일도 있고 설레는 일도 있고 기쁜 순간도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양날의 검처럼 우린 그런 인생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순간 속의 낭만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고, 낭만을 추구하며 아름다운 삶을 향유해야 한다. 산책하다 길 가에 삐죽 피어있는 조그마한 꽃에서 느끼는 낭만, 비 오고 난 뒤 습기 가득한 공기내음을 맡으며 뿌듯함을 느끼는 낭만, 오랜만에 친구와 연락이 닿아 추억을 함께 공유하며 느끼는 낭만. 


이렇게나 낭만은 우리 곁에서 인생을 더욱 황홀하게 해 주려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남들은 오글거리는 행동에 질겁하고, 내 인생에 낭만은 없어진 지 오래라며 학을 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만의 낭만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할 순 있지만 하루 24시간 내에서 낭만을 느끼는 순간은 무조건 한 번쯤은 있다. 다만 본인이 본인 입으로 낭만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아서 문제이지만, 쨌든 낭만은 항상 무조건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낭만을 잃어버린 이들이라 스스로 단정 짓고 남들을 깎아내리기 바쁘지만, 아니. 우리도 낭만을 향유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시를 읊는 이들에게, 글을 쓰는 이들에게, 친구들과 하하 호호 떠들고 있는 이들에게, 연인과 포옹하고 있는 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길가를 걷는 이들에게...
혼자 울고 있는 이들에게,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가족과 연을 끊고 홀로가 되어버린 이들에게, 친구에게 배신당해 세상에 버려진 이들에게...


아, 당신들은 낭만의 품 안에서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낭만이 무조건 좋은 의미로만 다가온다면 오산이다. 어떻게든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양날의 검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낭만을 잃어버린 이들이여, 아니. 낭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여. 

한 번쯤은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행동마저 낭만이라고 여겨보자. 


양날의 검이라는 낭만에서도 좋은 의미의 비중이 점차 커져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살아가면 남들에게도 낭만의 특성을 설명하기엔 더 쉬워지니까.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낭만은 당신의 주머니 속에 숨겨져 있을 뿐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공간(空間)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