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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18. 2024

공간(空間)

오직 나라는 자아가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은 누구에나 있다. 그곳은 매우 화려한 공간일 수도 있고, 단순히 방 한 켠 골방일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로서는 편안한 공간이자 아늑한 공간이라고 하자면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공간은 곧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오로지 나만의 공간으로 한정되고 그 공간 내에서는 누구도 나를 방해할 수도 없으며, 내가 굳이 손을 뻗지 않는다면 공간의 주체는 나라는 자아가 된다. 




나는 타향살이를 많이 했다. 본래 고향은 대구였지만 그것은 오직 고등학교 학창 시절 때까지 만의 이야기이고 대학교 때부터는 대전에서, 공무원 생활은 포항에서 하고 있다. 부모님은 그 사실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이건 어찌 보면 내가 가진 역마살의 일종이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셨다. 그땐 그 논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마치 알 속에 부화만을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살았었다. 하지만 그런 삶이 계속되다 보니 나는 나에 대한 정체성이 마치 부모님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고 여겼다. 철저히 내 생각일 수도 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사춘기 학생에게는 이 정도 의구심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대전에서 기숙사생활을 시작할 때 엄청난 두려움이 동반되었다. 왜냐하면 항상 학교 마치면 집, 집에서 학교, 학교 마치면 집인 쳇바퀴 인생을 적어도 성년 되기 직전까지 반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난 4년 넘는 기간 동안 성실히 대학교 생활을 마무리했고 이를 말미암아 취업을 하더라도 대구가 아닌 타 지역에 가보고 싶었다. 그 결과, 나는 포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면, 첫 포항에서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발령지가 결정 나자마자 급하게 근무지 주변의 원룸을 물색하고 새벽 내내 공인중개사들과 연락하며 방을 보지도 않은 채 계약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첫 번째 원룸은 바닥무늬가 희한한(마치 사무실 방바닥처럼 체크무늬의 맨들맨들한 재질이었다.) 방을 얻어 거기서 1년 동안 살았더랬다. 그렇지만 난생처음으로 기숙사를 제외한 나만의 방이란 설렘이 나를 벅차오르게 했다. 다행히도 근무지와 걸어서 5분 남짓이었기 때문에 아주 여유로운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그 넓은 거실 겸 주방 겸 안방 겸 원룸에다가 내 이부자리를 펼쳐놓고 있으니 가관이었다. 무슨 일용직 근로자도 아니고 마치 잠시 머무르다가 도망갈 듯한 집모양새였으니까. 하지만 난 행복했다. 퇴근 후 돌아와 넓은 방에 조그마한 접이식 식탁을 펼쳐놓고 티비를 보며 먹는 저녁은 일상의 힘듦을 위로해 주기엔 충분했고 금요일마다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맥주 한 캔으로 주말을 맞이하면 그 평화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 윗집에 천진난방한 아이들과 가족이 사는 것은 힘들었다. 특히 주말에 쿵쿵대며 뛰어다니는 소리는 공무원으로서 공익을 위해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지만 순간의 분노는 가라앉히기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리고 바로 밑집은 반려동물을 키우셨나 보다. 베란다 측 배수구를 통해 올라오는 동물들의 분뇨냄새는 어쩔 땐 집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선사했다. 


그래도, 나만의 HOME SWEET HOME이잖아. 생각하자마자 1년이 지나서 계약이 종료될 시기가 다가왔다. 나는 곧바로 다른 방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업무와 겹치면서 연차를 내고 방을 보러 다녔다. 이번엔 전세! 청년전세자금대출이란 좋은 제도가 있길래 무턱대고 은행과 상담해서 그 방을 계약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만 더 고려해보고 할걸. 그래도 들어온 지 이제 1년 된 공무원에게 며칠 연달아 연차를 쓰는 행동은 눈치 받기에 딱 좋은 모양새였다. 


두 번째 집은 전에 살던 집보다 더 적은 평수였다. 오히려 평수는 더 적어졌지만 나만의 공간이 철저히 압축된 느낌이랄까, 전에는 느낄 수 없던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매트리스도 하나 구입했기에 그 좁디좁은 방 안에 매트리스 펼치고 식탁을 펼치면 그야말로 그 공간은 꽉 차게 됐지만 그걸로도 행복했다. 다만, 집이 젊은 이들이 많이 찾는 술거리 근처라 그런지 새벽이면 밖에서 고성방가를 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땐 경찰을 불러야 하나 할 정도로 심각했지만 이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사무직이라면 견뎌야 하는 과제일 것이라. 


그렇게 또 2년이 지났다. 이제 다른 집을 또 찾아야 했다. 이제는 정말 나만의 방을 얻고 싶었다. 정투룸은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집이더라도 방 하나는 꼭 갖고 싶었다. 경력도 좀 쌓였겠다, 연차를 연달아 쓰고 본격적으로 방을 보러 다녔다. 


헐 그런데 가격이 어마무시했다. 더군다나 이 당시에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라 그런지 전세매물이 내가 원하는 곳엔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난 공인중개사와 머리를 싸매고 이리저리 발품 팔고 다녔다. 그렇게 포기하고 그냥 평상시에 지내던 원룸을 결정하려 할 찰나! 공인중개사가 밤 11시에 연락이 왔다. 지금 방 하나가 긴급하게 나왔는데 고객님이 찾으시는 방 하나 딸린 미니투룸이라고, 다만 전세는 없고 월세인데 괜찮으시냐고. 


거들떠볼 게 있나, 지금 뜨거운 밥이든 찬 밥이든 입에 일단 욱여넣어야 할 처지인데! 난 곧바로 방을 확인하곤 계약서에 서명했다. 부랴부랴 이사하고나니, 방이 너무나도 맘에 들었지 뭔가. 진정한 나만의 공간을 찾아낸 순간이었다. 벽지도 마음에 들고 평수도 마음에 들고 뭐니 뭐니 해도 방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정말이지 완벽한 아늑함이었다. 




지금은 세 번째 순서인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말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폰만 주야장천 봐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것도 알아서 해 먹고, 새벽 내내 티비로 영화를 봐도 이 공간은 나에게만 허락된 공간이다. 


물론 이 공간에 가끔씩은 누군가를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실제로 어느 누군가는 잠시 들렀고, 어느 누군가는 술자리 후 3차 4차를 하러 오고, 누군가는 곁에서 잠을 같이 잘 정도로 순간순간 행복한 장면이 필름처럼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도 얼마 가진 못했다. 결국 남는 것은 나 혼자이기에 홀로 남은 이 고독함과 공허함이 가끔씩은 날 옥죄어 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방의 조명을 모두 끄고 조용히 캔들워머를 켜본다. 잔잔한 조명이 내 방을 밝힌다. 난 책상에 앉아 읽고 싶던 책을 꺼내 들고 캔들워머의 조명아래 찬찬히 글을 읽어간다. 그 시간은 오롯이 나를 밝히는 시간이다. 사실 사람을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꺼내는 듯한 묘사는 할 수 없다. 곰곰이 고민하던 시간도, 머리를 쥐어싸고 신음을 흘리던 시간도 캔들워머 아래서 겪었기에.


하지만, 공간은 결국엔 나를 감싸준다. 방의 온기가 날 감싸주고 축 늘어져있는 내 어깨로 다가와 잠시만 쉬어가라며 토닥이곤 한다. 이제 나를 위로해 줄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 나에게 방이라는 공간은 자신의 등을 기대어 준다. 그 등에 기대어 소리 없는 울음을 내본다. 캔들워머가 볼에 흐른 눈물을 살며시 닦아준다. 혼자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은 누구에나 있다. 그곳은 매우 화려한 공간일 수도 있고, 단순히 방 한 켠 골방일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로서는 편안한 공간이자 아늑한 공간이라고 하자면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방 한 켠 골방. 나만의 공간이자 편안함과 아늑함을 선사받는 공간. 오늘도 나는 이곳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토닥이곤 한다. 읽지 않았던 책과, 간드러진 음색을 가진 여러 가수들의 목소리와 은은한 캔들워머와 포근한 이부자리는 그렇게 나와 함께한다.


자, 이제 출근할 준비를 해야겠지. 잠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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