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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15. 2024

안경이 부러진 날

흐릿함과 선명함의 간극

불과 며칠 전 오랜만에 동기들과 만나 술 한잔을 걸치게 됐다. 처음엔 몇 잔만 마시다 집으로 돌아가 다음날 출근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사람 맘은 바람 부는 갈대밭과 같아서 한 잔 두 잔 기울이다 보니 몇 병째 마시게 되었다. 


3차 때였나, 안주로 시킨 어묵탕을 숟가락으로 퍼먹다 그만 안경에 튀고 말았다. 욕 짓거리를 하며 안경을 벗어 습관처럼 옷을 당겨 안경알을 닦아대기 시작했다. 그때, 뽀각 거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나의 부품처럼 연결되어 있던 안경다리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술에 취한 상태로 힘 조절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동기들의 비웃음과 동시에 창피함이 몰려왔다. 두 동강 난 안경을 쥐어들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냥 웃어넘겨 버렸다. 


부러진 안경을 에라 모르겠다 하며 주머니 속에 쑤셔 박았다. 

술자리가 끝난 후 집까지 걸어가겠노라 선언한 뒤 터벅터벅 골목길을 걸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긴 하지만 엄청 흐려서 눈가에 힘을 있는 껏 주어야만 보일 듯 말 듯했다. 마치 내 인생 같았다. 평상시엔 흐리거나 뿌옇거나 무엇인가 묻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가도 가끔 정신 차려야 한다며 온몸에 긴장을 주고,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나의 모습 같았다. 


하지만 눈가에 힘을 계속 주다 보면 눈이 뻑뻑해지고 금방 피로해지듯이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아서 항상 긴장하고 있으면 심신은 너덜너덜해진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안경을 새로 맞추러 무작정 길가에 있는 안경점으로 들어갔다. 사장님의 친절한 미소와 서비스를 받으며 내가 원하는 안경테가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종류의 안경테가 있는지 분명 다 같은 안경 같으면서도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다른 점이 많았다. 


요즘엔 어떤 안경테가 유행하는지, 투명한 안경테는 어떤 느낌인지, 사각형 또는 원형 프레임은 어떤 느낌인지, 뿔테 혹은 얇은 테는 어떠한지 하나하나 따져보며 사장님의 추천을 듣고 있자니 이것 또한 우리네 인생 같았다. 사람들마다의 다른 인생은 어찌 보면 다 같아 보이지만 자신이 보내온 시간의 깊이나 넓이는 하나하나 모두 다를 것이기에 본인들만의 안경테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안경테를 고르고, 렌즈도 골랐다.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사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나는 안경점 소파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이켰다. 흐릿하기만 한 내 시야엔 마치 커피원두가 볶아지고 있는 듯한 장면이 겹쳐 보이고 그와 동시에 향긋한 커피내음이 내 몸을 따스하게 데워줬다. 


잠시 후 사장님께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 마신 종이컵을 휴지통에 던져놓고 사장님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제 내 콧잔등에 안착될 안경을 처음으로 만져본다. 가볍고 튼튼한 느낌의 안경테다. 거기다가 방금 세공된 렌즈는 그야말로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조립된 안경을 써본다. 눈을 천천히 떠보자 흐릿하기만 했던 아까와는 정반대로 선명하고 뚜렷한 세상이 내 동공을 뚫고 들어와 시신경에 각인된다. 흐릿해서 대충 분간만 되었던 사장님의 얼굴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보았고, 사장님 뒤 벽에 걸려있던 홍보물의 깨알 같은 글씨도 그제서야 볼 수 있었다. 


아, 역시 이 또한 우리네 인생 같아서

정신 차리고 스스로에게 힘을 있는 껏 주면 흐릿하고 해이해져 버린 인생이 잠시나마 선명해지듯이 

불안하고 불명확한 미래도 잠깐이나마는 또렷해진다. 


그러나 안경을 쓰고 안경점을 나오며 생각했다. 

무조건 선명한 인생만이 올바른 방법인지를. 

흐릿하면 어떠나, 안 보이고 뿌옇고 답답하면 어떠나.

가끔은 흐릿하고 안 보이고 뿌옇고 답답한 상태를 찾아 기어들어갈 수도 있음을 우린 알아야 한다. 


항상 선명하기만을 바래서 힘을 주다 보면 다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린 가끔은 힘을 풀어버리고 안경을 벗어두고 다녀야 함을 알아야 한다. 흐릿해져도 불안해지지 말자.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이고 적응하면 그마저도 편해질 것이다. 


적재적시에 눈가에 힘을 줄 때를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란 것은 모두 다 안다. 그러나 그 시기를 파악하는 것은 본인 이어야 한다. 남이 힘을 주어야 한다고 말해도 본인이 힘을 주지 않는다면 소용없으리라. 반대의 상황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안경을 끼고 운전을 하다 무심코 손가락으로 안경알을 만져버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선명하기 그지없었던 내 시야 왼쪽 아래가 뿌옇게 됐다. 그래, 방금도 말한 것처럼 아무리 내가 눈가에 힘을 주고 선명한 미래를 그리려고 노력해도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고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그게 바로 깨끗한 안경알에 묻은 내 지문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사은품으로 받은 안경닦이를 꺼냈다. 안경알을 빡빡 닦고 다시 껴본다. 선명한 시야가 다시 한번 날 맞이해 준다. 역시, 우리네 인생에 묻은 오염을 닦아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그건 사람일 수도, 반려동물일 수도, 혼자만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건 본인만이 잘 알 것이다.




안경 하나에 인생을 돌아봤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도 고민해 봤다. 

뭐가 됐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안경이 아닌 내 눈알이니까. 

내 눈알이 보는 대로 가는 대로 어떻게든 길은 연결될 것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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