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당뇨생활은 진행 중

by 윤슬

벌써 당뇨 발병 후 2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짧으면 짧지만 길면 상당히 긴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언젠가 대학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어머니가 의사 선생님에게 여쭤본 적이 있었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합병증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되는 거겠죠?"


선생님은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들고 계시던 달력을 앞으로 내밀며 설명하셨다.

"어머니, 대개 당뇨라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몸이 노화되면서 발병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5살 때부터 이 병을 앓았어요. 그렇다면 50대가 넘은 사람이 당뇨 발병 후 10년이 지났을 때와 이 친구가 5살 때부터 서른 즈음까지의 기간을 비교했을 땐, 당연히 이 친구의 발병기간이 더 깁니다. 합병증의 위험도를 봤을 때 이 친구가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어요. 언제든지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의 발병기간을 따져보았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긴 시간을 당뇨와 함께 보낸 것이다. 물론 젊은 나이라 그만큼 관리하기는 중년이나 노년보다는 조금 더 나은 형편이었지만, 발병기간만큼은 나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훨씬 길었던 것이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당뇨로 인해 불편함을 겪은 많은 일들, 또는 생명이 위협받는 중대한 상황도 많이 발생했었고, 이로 인해 나의 장래희망이 바뀐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크나큰 콤플렉스로 말미암아 자존감 낮은 연애도 해봤고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불안함과 우울감이 항상 내 곁에 존재한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형이다. 의학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하여 나의 죽은 췌장을 다시 되살릴 수 있기 전까지는 당뇨라는 놈은 나와 평생을 함께 가야 하는 동반자인 것이다.


한 번쯤은 꿈을 꾼다. 정말 내가 건강한 삶으로 살았더라면 어떤 삶을 사고 있었을까라는.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일들도 하고, 행복한 연애를 하고, 혹시 벌써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살고 있지 않을까. 마치 요즘 유행하는 멀티버스 속의 또 다른 날 상상하며 싱긋 웃어보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뇨는 날 놓아주지 않고 나도 이 녀석을 놓아줄 수 없다.


그러므로 항상 침잠하며 독백 속에 나를 버려둔 채 조용히 방에서 고뇌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SNS상에 나와 같은 당뇨환자들의 수많은 사례들과 그들만의 건강관리방법, 그리고 점차 발전해 가는 의료용 기기의 후기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런 기기들을 이용하면 좀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작가님들 혹은 나와 같은 처지인 당뇨환자들에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게 된다. 당신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삶에 대하여 철저하게 감사해하며 행복하신지.




나에게 행복하냐며 질문한다면 쉽사리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어떻게든 현재 진행형인 이 삶을 피할 수는 없기에 그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덤덤히 지내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자식을 낳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는데 내 자식마저 당뇨로 인해 힘든 삶을 살게 된다면 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그토록 걱정하던 1형 당뇨의 유전적인 특성은 오히려 2형 당뇨보다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제껏 나는 1형 당뇨는 100% 유전적이라 생각했기에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결혼은 해도 아이는 절대 낳지 않으리라는 선언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애는 낳을 생각 없다는 대못을 가슴팍에 수십 수백 번 꽂았다. 때문에 상기의 연구결과는 나에게 크나큰 후회를, 그리고 동시에 일말의 희망을 선물해 주었다.


이제야, 드디어 이제야 나의 죄책감을 내려놓을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한 나의 마음을 말하자면 미래에는 떡두꺼비 같은 자식을 낳아 아내와 한평생 소소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이제껏 육체적 콤플렉스로 인해 나의 소망은 그저 망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한낱 허상 같은 희망이, 어쩌면 그 작은 소망이 미래엔 더 단단해졌으면 아니 확고해졌으면 좋겠다 기도하고 기도해 본다.


앞으로도 진행형인 나의 당뇨생활, 어쩌면 나와 함께 인생을 평생 살면서 날 죽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행복도 희망도 공평하게 등가교환해 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았다 해도 그중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았을 땐 '그래, 너 때문에 특별하지만 행복한 인생을 살았었다.'라는 고백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절절히 외치고 싶기에.


출처 다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마지막으로 띄우며, 그대들도 주어진 삶을 즐거운 산책으로 생각하고 여행했으면 좋겠다. 온갖 힘든 일, 즐거운 일, 슬픈 일들이 그대들을 사정없이 괴롭히고 주위에 팽배해 있더라도,


언젠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날에는 스로에게 혹은 나 자신을 알고 있던 모두에게 넉넉하고 보람찬 인생을 살았노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나에게도 여러분들에게도 행복과 건강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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