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아유무'가 어디론가 이동하면서 등불이 흘러가는 풍경을 두 눈으로 포착하고 느낀 바를 담담하게 표현하는데 순간 내가 페이지를 잘못 보고 있는가? 혹시 출력물의 순서가 잘못된 건 아닐까라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되었다.
곧이어 프롤로그가 진행되고, 주인공인 아유무가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이사를 여러 번 하게 되면서 시골 농촌의 학교로 전학 오게 되는, 어떻게 보면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풍겨온다.
마치 연초의 쌀쌀한 겨울 내음이 날 것만 같은 표현이 마치 내가 그 공간에 함께 서있는 기분이었다. 서리가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보이는 밭과 들판이, 전학 첫날의 설렘과 기대감이 투영된 듯한 아유무의 기분이 책 너머로 전달되어 오는 듯했다.
아유무가 학교로 가니 그곳엔 학생도 얼마 없는 이제 폐교의 수순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설만이 존재했지만, 이제껏 전학을 밥 먹듯이 하던 아유무에겐 그런 것은 신기한 경험이면서도 신경 쓸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곳의 우두머리는 아키라라는 학생이었으나 무엇인가 불쾌함과 이질감이 드는 와중에도 학교를 전학생에게 알려주는 아키라에게 뭔지 모를 친근감이 드는 아유무였다.
이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아키라가 속해있는 집단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학교폭력의 단면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무언가 이게 폭력인지 혹은 그저 친구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계속 묘사된다.
특히 미노루라는 아이에게 너무 하리라만큼 장난을 치는 아이들, 그리고 미노루만 걸리는 아키라의 화패놀이 등을 보면서 과연 학교폭력을 가하는 인물들의 심리가 과연 어떤 것인가도 고민하게 되었지만 또 우습게도 다른 아이들이 미노루를 괴롭히거나 장난을 치게 되면 아키라가 정색하며 미노루를 보호하려는 모습도 겹치게 된다.
여기서 평상시에 자주 보아왔던 학교폭력과는 다른 전개로 넘어가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책을 놓지 못하게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한적한 시골의 공기와 풍경을 묘사하고 1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유무의 시점에서 들려주는 일본 시골의 느낌이 머릿속에서 상상되어 평온한 분위기마저 느껴져 왔다.
아유무가 아키라의 장난이 심하다고, 혹은 아키라가 일부러 화패놀이에서 속임수를 써서 미노루를 곤경에 처하게 하는 데에도 어느 순간 아유무는 본인은 저런 상황에 처하지 않음을 안심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바로 여기서부터가 작가가 말하고 싶은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아유무는 본인의 도덕성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것은 당연하다고, 괜찮을 거라고 마음속에 각인시키고 어느덧 이 무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렇게 책의 막바지로 달려가던 순간,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보며 기승전결의 구성이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빨리 책을 모두 읽어 다른 책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때 그들은 시내에 노래방으로 놀러 나가자는 아키라의 전화를 받아 어느 한 공간에 모이게 되는데 그곳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른 아이들과 당황한 아유무, 그리고 처음 보는 이 학교의 선배들이 모여있었다. 선배들은 본인들을 소개하며 이 학교 학생이라면 지켜야 하는 전통이 있고, 후배들인 너희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들을 한적한 공터로 이끈다. 이 장면이 바로 맨 위에 적어놓은 아유무가 묘사해 놓은 다리 풍경의 장면이었다.
공터로 끌려간 그들은 그곳에서 진정한 학교폭력과 마주한다. 아키라는 이미 얼빠진 상태로 우두커니 선배 앞에 서 있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손을 묶어 공 위에 올라가 재주를 부리라는 상당히 위험한 행동을 지시한다. 누가 할 것인가? 아유무는 본인이 걸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평소 이런 역할을 당해오던 미노루를 떠올리게 된다. 결국 미노루가 걸리게 되면서 정말 참혹하기 그지없는 폭력을 당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결국 폭력을 당하던 사람이 폭력을 당하는 것이 맞다는 사회에 팽배하던 질서가 드러나고 만 것이다.
미노루는 그렇게 엎어지고, 피가 나고, 이빨이 부러지고, 온몸이 흙범벅이 되어가며 선배들의 놀잇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학교폭력의 결과는 파국으로 치닿고 만다. 미노루는 선배들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말아 버린다. 한적한 공터 속에 울려 퍼지는 선배들의 비명과 핏빛 얼룩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아유무는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 미노루의 뒤집힌 눈동자를 보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장 엎어진다.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며 올라탄 이는 다름 아닌 미노루. 미노루가 칼을 아유무를 향해 내리꽂으려 하자 아유무는 극렬하게 저항하면서도 혹여나 미노루가 자신이 아닌 아키라를 착각한 것은 아닌가 싶어 미노루에게 본인은 아키라가 아니라며 소리친다.
아니, 미노루는 정확하게 아유무를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난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라며 칼을 휘두르는 미노루에게 아유무는 팔다리를 베이고 말지만, 이내 미노루를 밀쳐내고 곧장 산속으로 내달린다.
그렇게 내달리면서도 본인을 따라오고 있는 미노루가 정말 자신을 해할 것 같은 공포감이 온갖 묘사로 다가오는데, 이때의 절망감과 두려움이 곧장 나에게도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아유무는 반복해서 생각한다.
'나는 미노루에게 아무 해도 가하지 않았는데, 콜라도 나눠줬는데, 나는 아키라와 다른데'
아니, 동조하지 않았음이 곧 무죄는 아니다. 학교폭력이라는 것은 반드시 신체적인 폭력만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에, 정신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그 행동이, 이 분위기가, 피해자는 원래 당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당연하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폭력은 조용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아유무의 독백은 순수하게 보자면 본인은 동조하지 않았고, 그런 미노루에게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지만 나서지 않았으며, 본인에게는 그 피해가 오지 않았음에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린 이런 상황을 '방관'이라고 부른다. 방관자는 본인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게 되고, 남이 피해를 겪고 있는 와중에도 본인이 평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그저 이 상황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유무는 아키라와는 다른 존재라고 본인을 어필하였으나 이미 본인도 학교폭력의 굴레 속에 갇히고 만 것이다.
도망치던 아유무가 어딘가로 굴러 떨어져 흐릿한 의식 속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들로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책을 덮고 나서 무엇인지 모를 불쾌감과 이질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속이 미슥거렸다. 단지 평화로워 보였던 아유무의 표현에 어느샌가 나도 동화되어 시골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에피소드겠거니라며 학교폭력의 굴레에 스며들어버린 것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 줄 몰랐던 아유무는 끝까지 미노루의 고통은 헤아리지 못했다. 미노루는 그렇게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넣고 나서야 학교폭력을 멈출 수 있었다. 사실 학교 폭력을 넘은 더 좋지 않은 상황 속에 떨어지고 말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어디서든 자행되고 있다. 친한 친구 간의 짓궂은 장난, 단순한 일탈이라는 가면을 쓰고 학교폭력은 교묘하게 사회 속에 숨어있다. 이를 찾아내고 궤멸시키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라고는 하지만 그곳에서도 수많은 방관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비단 사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구조적인 방관자들도 즐비하다.
사태가 그저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바라고 내가 당한 것이 아니기에 별 피해 없을 것이라는 방관자들과 학교폭력을 행하고 있는 가해자들은 반드시 하나만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끝엔 반드시 파멸과 파국이 있을 것이란 것을.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의 공통점은 무조건 결론,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에 본인도 모르게 피해자들의 심신을 지옥으로 끌고 내려 간 학교폭력의 미래는 평온할 수 없을 것이다.
배웅불 : 저승으로 돌아갈 영혼을 배웅하기 위해 피우는 불.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의 굴레 속에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게 될 행복과 평온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