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쯤

by 윤슬

부질없는 삶이다.

누군가에겐 섬뜩한 경고문이 될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위한 하나의 철없는 수단으로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쯤은 아마 인생살이가 그렇게 재미지지않아서, 그렇게 찬란하지않아서, 그렇게 마음 속에 여유가 없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동태같은 눈깔로 삶을 살아간다는 게 무슨 뜻인가.

옛날 푸릇푸릇하던 학창시절을 지나, 갓 사회인이 되었을 때의 총기있는 눈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루틴이며 하루하루 똑같은 사람들, 하루하루 똑같은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나오는 세상엔 내가 감탄할만한 동기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이 사회 속에 역할이 부여됐기에 그럭저럭 어거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SNS속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그렇게나 재미진가 보다. 내가 입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갖가지 다양한 삶의 재미를 어떻게나 그렇게 잘 찾아내고 그걸로 생활을 양위하는지 가끔 보다보면 거울 속의 나는 왜이리 평범하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내팽겨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는것이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선 나의 하루일과는 그저 바쁜 척하는 베짱이의 궁시렁소리와 같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베짱이의 속이 거멓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무도 모르리라. 한 마리의 베짱이로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명의 청년으로서 이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나의 노랫소리는 울려퍼지기가 상당히 고된 것이다.


작년 해외를 처음으로 가봤었다.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가 몸을 실어 저 유럽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곳에서의 낯선 공기와 사람들, 그리고 사회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확실히 '여유'가 보였다. 어딜가나 바쁜 사람들은 차고 넘치겠지만서도 그들의 표정 속에는 확실히 여유로움이 흘러넘쳤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잡상인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회사원들, 마지못해 길 구석에 앉아있는 노숙인들의 표정에서도 나한테는 느낄 수 없는 그 말할 수 없는 미묘한 여유로움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그럼 그들의 모습을 동경하고 그대로 따라가는게 맞는 것일까? 난 아니라고본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활상은 한국이라는 내 공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광활한 우주 속의 티끌만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말이다.


이제 올해도 벌써 3개월가량 남았다. 24년이 다가왔고, 25년이 어김없이 다가와도 나의 감정은 여전히 몽돌해변의 조약돌처럼 둥그스름하니 놓여있다. 이렇게 또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나는 변함없이 이 곳에 묵묵히 서서 우리네 삶을 바라보고 또 하염없이 한숨짓고 있을 것이다.


내년이 다가와도, 그 다음 년이 다가와도 막상 달라지지않을 것 같은 내 삶은 아무맛도 냄새도 나지않는 무색무취의 성분과 다를 바가 없어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다란 한숨길을 짓고있을 뿐이다.


내가 다음에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쯤에도

난 주저리주저리 읊조리고 있겠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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