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도 여행에도 쉼이 필요하다
경주하면 수학여행, 불국사, 석굴암 등의 단어가 생각나지만 영화 '경주'도 떠오른다.
박해일의 평범하면서 순수한 외모와 모호한 연기 그리고 신민아의 화려하고 러블리한 미모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영화다. 고즈넉하고 차분한 경주 배경에 비주얼이 안 어울리는 두 주인공이 뭘 얘기할까? 왠지 홍상수의 향기가 살짝 나는 듯한 영화 '경주'때문에 경주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기도 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박해일처럼 경주도 지난 세월의 추억과 역사가 깃든 곳.
영화 보고 가게 된 건 아니지만 어쩌다 경주를 향해 떠나는 2박 3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경주 가는 방법에 ktx도 있지만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김포공항에서 울산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한 렌트한 차를 타서 운전하면 경주까지 40-50분 정도 걸린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보는 구름 풍경은 언제나 설렌다. 폭신한 구름 침대 위로 언젠가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싶은데 정작 하진 않겠지. 얼른 국내 말고도 해외 구름 풍경도 보고 싶다.
첫째 날 1
경주에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하기 전에 시간이 많이 남아 로드 100이란 카페에 갔다. 핫하거나 유명한 카페는 아닌 듯했지만 이른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서 간단하게 브런치 할만한 곳을 찾다가, 이전에 친구가 경주에 살고 있어서 친구가 데리고 가 한번 방문했던 곳이고 나름 대형 베이커리여서 접근성이 좋아 방문했다. 카페에서 요기를 한 후 경주 힐튼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호텔 안에서 조금 쉬었다가 경주에서 유명한 최부자집 자손이 운영한다는 한정식집 요석궁을 방문했다. 당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던 최부자집은 보존이 잘 된 곳이었다. 음식은 코스요리로 나와 정갈하면서 평타 수준이었다. 직원분들이 한복 입고 음식상을 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고 깨끗하게 관리된 공간이 아니라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최부자집만이 전수하고 있다는 반찬(직원분이 그렇게 말하심)이 맛있었는데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안타깝다.
요석궁은 경주 교촌 한옥마을에 위치해 있어 근처에 동궁과 월지 그리고 월정교 등이 있는데 밤에 야경이 예쁘다고 하여 월정교 다리를 건넜다. 월정교는 현장에 배 모양의 교각만 전해지고 있었으나 오랜 고증을 통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살짝 인스턴트식의 복원 느낌이 났고 낮에도 월정교를 방문했는데 불빛 때문에 밤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둘째 날 2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기억나는데 왜 중학교 수학여행은 기억이 안 날까? 중학교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중학교 3년을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고등학교 입시에 목매서 기억을 삭제한 것 같다. 경주에 왔으니 경주의 대명사인 불국사에서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기로 했다. 난 전공이 동양화라서 그런가? 불교를 종교에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이 간다. 한때 혜민스님이 유명할 때 페이스북으로 혜민스님을 팔로우해 좋은 글귀를 올린 매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눌렀다. 그걸 본 선배 언니가 넌 기독교인데 혜민스님을 왜 좋아하는지 물었던 적이 있는데 내 종교와 뭔 상관이람?! 모든 종교든 좋은 말을 하면 내 마음에 새기고 존중하면 된다. 동양화는 작품을 창작할 때 불교 철학 내용이 많이 인용되는데 자연과 맞닿은 점도 비슷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절도 산속에 있어서 마음이 힘들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을 때 템플 스테이를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하고 싶다.. 건강에 좋은 사찰음식도 먹어보고 싶고요)
경주에 수학여행 온 것처럼 첨성대를 보러 갔는데 어릴 땐 이렇게까진 작지 않았는데.. 어른되어보니 이렇게 아담했었나 싶을 정도의 크기였다. 구경하러 간 사람들 모두 보고 나서 첨성대 왜 이렇게 작냐고 한마디 하고 갈 정도이다. 또 다른 관광코스인 천마총도 보러 대릉원을 걷는데 중간중간 대나무 숲 같이 사진 찍기 예쁜 곳들이 많았다.
오전부터 열심히 구경하고 걸었으니 쉬려고 호텔로 돌아갔다. 그래도 여행을 왔으니 오래 쉬기는 아까워서 호텔 뒤편에 보문호수가 있어 산책하고 호텔 안에 있는 카페 슈만과 클라라 보문점에 들러 저녁 먹기 전 간단히 디저트 배만 채우기 위해 쿠키를 샀는데 웬걸! 검색했을 땐 경주 3대 커피라고 나와서 그저 커피 맛집인가 보다 했는데 여긴 쿠키 맛집이었다! 내 입맛엔 코코넛 쿠키와 오트밀 쿠키, 크랜베리 쿠키가 너무 맛있었다. 그냥 여기 수제 쿠키는 다 맛있는 걸로...
저녁은 경주 힐튼호텔 내에 있는 중식당 실크로드에서 먹었다. 요리가 만족스럽다는 후기도 있지만 그냥 평범한 중식당.
셋째 날 3
오전에 호텔 체크아웃하기 전 힐튼 내에 있는 우양미술관을 방문해서 전시를 봤다. 우양미술관은 현재 1층에서 네거티브 스페이스와 2층 감각의 숲이란 전시를 나뉘어서 전시를 하고 있다. 몰랐는데 우양미술관은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으로 삼청동 아트선재센터의 본관으로 이름도 원래는 선재미술관이었다가 아트선재센터의 개관과 함께 아트선재미술관이었다가 현재 우양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선재는 미국 유학 중 사망한 대우 그룹 장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동안 이름 알만 한 그룹 재벌집 사모님들이 미술관과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미술교육사업이나 현대미술 전시에 활발했었는데 점점 사그라드는 분위기라 미술 전공자 입장에선 너무 아쉬운 현실이다. 삼성의 리움미술관은 4년여 만에 전시를 오픈한다고 하는데, 부디 이서현 이사장님께서 리움을 부활해주셔서 일반인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한국 내 미술계 발전에 이바지해주셨으면 한다.
우양미술관은 규모가 크고 층고도 높아 전시를 천천히 감상하기에 정말 좋은 장소이다. 이런 곳을 알게 되고 좋은 전시도 보니 금상첨화, 많은 홍보가 되었으면 하는 곳이다.
마지막 서울 가기 전 스케줄은 수학여행답게 국립경주박물관을 갔다. 그동안의 경주에서 들렀던 곳 중에서 그나마 제일 규모도 크고 볼거리도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경주여행에서의 필수코스로 추천한다. 신라시대 때의 화려한 장신구들은 지금 현대에 와서도 예쁜 디자인으로 팔기만 한다면 사고 싶지만 아쉽게 기념품점에서는 비슷한 모양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오전 스케줄을 끝내고 비행기 시간까지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문무대왕릉을 구경하기로 했는데 정작 도착해서 바다 저 멀리 아담하게 보이는 문무대왕릉을... 보기만 하고 핫한 카페 찾기엔 운전도 피곤하여 바로 앞에 있는 90년대 느낌이 나는 카페 왕릉에 가서 내 사랑 초코 시럽이 뿌려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당을 채웠다.
그리고 경주 명물 황남빵을 사러 황남빵 본관에 도착했더니 공장처럼 빵을 계속 찍어내고 사람들은 계속 들어와서 사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갓 나온 따뜻한 황남빵을 베어 무니 맛있긴 했다. 모든 빵은 갓 나온 빵이 진리이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안녕 경주.
언제 또 올는지 모르겠지만 정갈하면서 소박한 너, 잘 보고 가.
다음번엔 못 간 황리단길도 구경해야지.
벌써 서울 도착.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화려한 불빛들과 동그란 달.
흔히 삶이 꽃처럼 활짝 폈을 때만 화양연화라고 하는데, 인생을 소중히 여기면 모든 순간이 화양연화 아닐까?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 언제? 어떻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 아마도, 어쩌면, 글쎄....
언제까지 기다려야지 할지 모르고 답답하다. 끝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 끝엔 마음 놓고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을지 싶기도 싶다. 일상생활하다가 휴식이 필요해서 여행을 가고, 여행 가서도 몸이 피로하여 카페 가서 쉼이 필요하다. 내 일상 작은 곳 하나하나까지 사랑하면, 이렇게 작고 소소한 기억으로 또 살아가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