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차차차 Cha Cha Cha
요새 갯마을 차차차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TV화제성 드라마 부문 1위에도 오르고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 다음으로 9위라고 한다. 나도 이 드라마 때문에 오래간만에 주말이 기다려진다.
처음에 이 드라마가 방영하기 전부터 기다렸다. 신민아 팬이기도 하고 공백을 깨고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로 첫회부터 챙겨봤다. 신민아는 어떻게 매 드라마마다 미모가 리즈일까 하며 미모에 넋 놓고 보다가 첫회를 보면서 음.. 소소하네 이 드라마가 과연 흥할까? 싶었는데 2회, 3회 차로 갈수록 과감하고 자극적이고 쿨한 게 덕목인 지금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주고 볼수록 따뜻한 볼매 드라마이다.
드라마 내용은 현실주의 치과의사 34살 윤혜진(신민아)과 만능 백수 35살 홍반장(김선호)이 공진이라는 가상 마을에서 벌이는 티키타카 힐링 로맨스인데 원작은 엄정화와 고 김주혁이 나온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고 김주혁이 나온 홍반장 영화를 다시 봤다. 원작 영화는 2004년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라 그런지 지금의 감성과는 사뭇 달랐다. 거의 20년 전 영화이다 보니 현재에서 보면 불편한 장면과 대사들이 나오는데 그런 부분들은 각색하고 고 김주혁이 표현한 묵직한 홍반장을 김선호는 좀 더 친근하고 가벼운 능글능글 매력남으로 나온다.
서울에서 올라온 새침데기 윤혜진과 홍반장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감은 아니었다. 홍반장이 윤혜진에게 한 말이 있는데 공감이 되는 대사이다.
"그쪽은 본인이 잘났다고 생각하지? 머리 좋아 공부도 잘했을 테고 의사도 됐고 인생이 아주 탄탄대로였겠어. 아 물론 시련도 있었겠지. 어쩌다가 덜컹하는 방지턱 같은 거? 고작 그거 하나 넘으면서 '역시 의지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어' 그랬을 테고. 남의 인생은 함부로 떠들어 놓고 본인이 평가받는 건 불쾌해?
인생이라는 거 그렇게 공평하지가 않아. 평생이 울퉁불퉁 비포장도로인 사람도 있고 죽어라 달렸는데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도 있어."
시간이 지나며 서로 다투던 둘은 어느새 정이 들어 홍반장은 윤혜진에게 서슴없이 다가오며 어려운 상황일 때마다 도와준다. 남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아 선을 지키는 윤혜진에게 홍반장은 인간적으로 선도 좀 넘고 선 넘어오라고 말하는 사람... 드라마니까 있는 거겠쥬?
드라마 보면서 내게도 먼 미래까지는 아니지만 계획하는 걸 좋아하는 윤혜진 성격과 닮은 부분이 많이 있다. (성격만.... 워 워...) 윤혜진은 마냥 어리지 않은 30대 중반의 사람으로 상대를 볼 때 현실적으로 학벌도 보고 직업도 보고 외모도 안 보지도 않고 본인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또한 갖고 있다. 노후도 생각해야 하고 90살까지 계획을 이미 짜고 있는 성격이다. 홍반장은 이와는 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는데도 서로 다른 둘은 이미 마음으로 끌리고 있다. 30대 중반에 자기 병원을 가지고 있고 나름 누릴 거 다 누리고 있는 사람이 고작 사랑 때문에 고민 할리가? 하지만 사랑의 콩깍지 힘은 위대해서일까?
윤혜진은 자기의 고민을 넘어서 홍반장에게 좋아한다고 직진 고백을 했다. 이성보다 가슴을 따른 윤혜진은 고백과 동시에 아마도 먼 미래까지 설계했을 것이다. 라이프스타일부터 극과 극으로 달랐던 둘이 친구처럼 티격태격했던 으르렁 케미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는 모습에 윤혜진의 직진 고백으로 둘의 사이는 마음을 숨기고 친구로만 선을 긋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옛날에 윤혜진이 대학 때 좋아했던 선배도 나오는데 회상신을 보니 선배도 그 당시 윤혜진을 좋아한 걸로 나온다. 공진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선배는 윤혜진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한다. 하지만 윤혜진은 스펙이 좋은 선배보다 백수 홍반장에게 마음이 이미 기운 상태이다.
안달해봐도 안 되는 게 인연, 의도하지 않아도 만나는 게 인연이다. 마을에서 선배를 다시 만난 건 인연 같지만 결국 사랑은 타이밍이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내가 상대를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보다는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게 운명이고 인연인 거다. 그리고 노력만으론 닿을 수 없는 것이 진심이고 노력만으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인연이다. 그러니 윤혜진처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해야 한다. 선배도 참, 대학시절 윤혜진에게 적극적으로 했으면 성공했을 텐데 왜 망설이고 주저해서 사람을 놓치는 건지. 모든지 마음 가는 대로 직진해야 답인 것이다. 인연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만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이어지지 않을 사람이었다면 서로를 바로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이어질 사람이었다면 서로 모르고 살 법한 곳에서부터 어떻게든 만나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인연이 아닌 사람이라면 서로에게 기대가 충만하고 같은 모형의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알아갈 시기를 만나지 못할 것이고, 인연이라면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겹치는 부분이 없더라도 서로를 알아줄 시기를 어떻게 해서든 맞이하여 이어지게 되어 있다.
(책 <나를 사랑하는 연습>에서 인용)
중간에 윤혜진 부모님이 공진에 오면서 둘은 애인 역할극을 하는데 홍반장은 윤혜진 아버지에게 사귀는 사이가 아닌 친구라며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윤혜진이 자기보다 더 좋은 사람,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윤혜진의 아버지는 그게 자네일 수도 있지 않냐며 말을 한다. 이 말에 홍반장은 용기를 얻었을까?
드라마에 로맨스만 있다면 그저 그런 멜로물이 되었을 텐데 공진의 마을 사람들 모두 주인공으로 다양하게 각자의 사정과 희로애락이 있었다. 푸근한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그 안의 상처들까지 품어주고 도우며 살고 있다. 이렇게 복작복작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까지 더해져 따뜻함이 느껴진다. 나 또한 여전히 현실에서 조건 따지는 것을 버리지 못해 많은 부분들을 놓치고 살았지만 직업, 스펙, 명성만이 인생의 다가 아니며 먼저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마음이 동요하여 움직이는 것. 그리고 나부터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해 준 드라마.
오래간만에 마음이 힐링되는 드라마가 나와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