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당근마켓 스터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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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교 입시를 위해 미술학원을 다녔다. 애기때부터 어딜 가든지 종이에 그림그리는걸 좋아했어서 부모님은 예체능으로 유명한 중학교에 보내려고 하셨다. 동네 우정빌딩 꼭대기에 있는 미술학원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수업했다. 어린나이에 배가 고프니 1층에 있는 냉동삼겹살집에서 거하게 삼겹살을 먹고 올라가거나 수업 중간 편의점에서 냉동떡볶이와 냉동피자를 사먹고 부대찌개같은 배달음식도 그때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도 먹었다. 그때의 힘듦을 위로해줬던건 천진난만하게 친구들과 계단 손잡이를 서서 타고 내려가고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여자 강사선생님을 놀리는 거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위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만으로도 반했던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 학교와 학원에서의 에이스는 인생 처음 시험쳐서 보는 학교에 떨어지고 인생 첫 실패를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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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원을 다니느라 부족한 학과 공부를 과외와 공부학원을 엄청 돌려서 중2까지는 전교에서 등수도 나름 괜찮았고 당시 지문을 찍어 출입했던 목동 학원의 선생님은 엄마에게 미술은 취미로만 하고 공부를 시키라고까지 하셨다. 시험이 끝나면 다른 친구들은 놀이공원을 가고 이대와 신촌을 놀러다녔다. 나도 엄청 가고싶었지만 중학교입시는 실패했으니 고등학교입시를 위해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항상 미술학원으로 가야만했다. 당시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김마키는 어차피 잘하니까 나머지 학생들과 그의 부모들은 선생님과 모종의 거래를 하여 수업이 끝나면 가는척하고 다시 돌아와 수업을 했다. 그때 어른들과 친구들의 배신을 처음 겪어 시험보기 바로직전 미술학원을 옮겼다. 시험 치기 직전에도 학과성적이 많이 떨어져 시험볼수 있는 자격에 턱걸이정도 되었다. 중학교 3년 내내 노력의 결과로 원하던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너무 기뻤다. 예쁜 교복을 입고 구두를 신을 생각에 들떴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예체능 고등학교였으니 실기 레슨은 당연히 학교에서만 하면 다일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행학습이 유명한 나라였으니.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내가 딩가딩가 놀 동안 다들 미술학원에서 미리 배워서 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선 미술하면 김마키가 유명했고 학교안에 내 그림도 걸렸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부족한 미술 실력으로 허덕였다. 한마디로 못그렸다. 그리고 학교 친구들과 잘 놀고 적응도 잘했지만 초등학생때부터 꿈꿨던 이상과 달라서 고1때 자퇴를 생각할만큼 불안했다. 중학생때 즐겨봤던 드라마 '반올림'의 자유로운 예술고등학교의 느낌이 아닌 새침한 여자아이들의 암투가 많은 곳이었다. 놀면서 불안한 이중적인 마음에 자퇴를 하고 동네에 있는 여고에 갈까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 동창들과 가까이 있을텐데 하며 생각했다. 그러나 시험쳐서 간 학교에서 다시 동네로 돌아오는건 실패를 한거나 마찬가지라 전화까지 들어 학과 사무실까지 다이얼을 눌렀지만 그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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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김성실이었으면 고등학교가선 김베짱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동창들은 나를 야무진 똑똑이로 기억하고 고등학교 동창들은 그닥 열심히 하지 않았던 친구로 기억할것이다. 당시 초딩 인생부터 이어진 몇년간의 입시 속박이 끝났으니 친구들과 노는게 좋고 쉬엄쉬엄하는게 편했다. 그러면서 대입에 대한 부담은 늘 있었다. 설마 재수를 하겠어? 그러면서 설렁설렁하며 학교 안에 작은 정자까지 있어 수업시간에 풍류를 즐기는 학생이었다. 그런 베짱이에게 가고싶은 학교가 있었는데 당연히 떨어졌다. 인생 두번째 실패를 겪었다. 나보다 성적 낮은 친구들도 좋은 대학가고 친하게 지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못갔다. 핸드폰 정지는 못하겠고 1년간 고이 서랍에 넣어놓고 컴퓨터도 중단하였다. 동네에서 과외를 받으며 지하철로 15-20분 거리의 독서실을 반복하는 수도승의 삶을 살았다. 밥도 졸릴까봐 적은양의 1일 1식하여 그때 살도 엄청 빠졌다. 모의시험에선 성적이 잘 나왔는데 하필 수능날 시험을 잘 못봤다. 바로 옆에서 고등학교 후배로 보이는 교복입은 여자아이는 1교시부터 끝날때까지 코를 훌쩍였다. 변명일수 있지만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부들부들) 운좋게 그림도 나쁘지 않게 그려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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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안 개구리처럼 입시미술만 해오던 내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 각 과마다 학창시절에 날고 긴다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나보다 한살 어린 친구들인데 유명한 작가이름을 읊어대고 전시도 많이 가고 좋은 작품도 많이 알았다. 나는 입시미술에만 매진해서 들어왔는데 이 친구들은 어떻게 작가들까지 아는거지? 예를 들어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 중에서 어떤걸 좋아해? 너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야?' '응? 호크니가 누구야?'이러면 그사람을 어떻게 모르냐는 식의 황당한 웃음이 섞인 얼굴로 쳐다봤다.
대학교 1학년때 독립영화라는걸 처음 보게 되었다. 과 사람들은 홍상수감독의 영화를 놓고 그동안의 영화와 이전 영화와의 차이를 말하면서 대화를 했다. 선배들은 내게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고 물어 힙합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어떤 가수를 좋아하고 어떤 힙합을 좋아하고 힙합 종류의 대해서 물었다. 저는 그저 다듀를 좋아하고...음... 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도 작가에 대해 잘 모르니 김마키는 얕게만 아는구나 하며 단정지어버렸다.
내가 들어간 학교는 단과대가 좋은 학교가 아닌 모든 학과가 좋은 대학이라 교양수업을 들으면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성적을 받기가 어려웠다.(핑계) 한번은 영어수업을 듣는데 타과생 남자와 2인1조가 되어 영어 발표가 있었는데 서로 전공을 말하면서 내가 미대라고 말하니 그 다음부터 영어 발음을 한글로 써서 줬다. 내가 더 영어 발음이 좋은데 쉬운영어를 한글로 적어서 주는건 뭐지 하며 황당하면서 기분 나빴던적이 있었다. 암튼 교양수업에서 단순하게 ppt로 발표한다면 다른 타과생들은 평면의 ppt가 아닌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동영상같이 무언가가 움직이는 발표형식을 해서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역시 똑똑한 애들은 뭘해도 달라.. 이외에도 나는 내게 주어지는 것만 하고 그외의 것은 안하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조차 우물안 개구리였다.
아마 대학교들어가고나서부터 느껴서일까 이후 대학원을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지적 허영심의 시작이 발단되었다. 허영심중에서도 다른 종류의 허영심보다 그나마 지적 허영심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름 중학생까진 야무지고 똑똑한 학생이었는데 책과 영화, 음악에 대해서 얕게만 아는 바보 취급을 받았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학생땐 그렇게도 보기 싫었던 영어와 문학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이제와서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 싶었는지 영어와 글에 꽂혀 영어 회화학원을 다니고 소설과 시집을 읽고 영화도 독립영화부터 여러 종류의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많은걸 보다 보니 사고의 틀이 확장되긴 했다. 하나의 작품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다른사람의 코멘트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당근마켓을 자주 이용하진 않는데 어느날 TV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이 당근마켓에서 연락한 사람과 고기먹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중고품 거래라고만 알았던 어플이 같은 동네 지역사람끼리 동네생활도 공유하고 글을 올리는 폼도 있다는걸 그때 알았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동네에서 영어와 스페인어, 일어를 같이 스터디하자는 글을 올렸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것도 무섭고 사람 일이라는게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니까 다른 글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는데 우리 동네에서 스터디?란 말에 호기심이 갔다. 영어 회화를 다니다 돈만 날린 1인으로 학원비도 안들고 영어를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 궁금한 마음에 댓글을 남겼다. 관심있습니다!
그러고 낯선사람과 생전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만나 스터디모임에 들어가니 1시간동안 영어책을 소리내서 읽고 그외의 시간은 자기 마음대로 공부할것을 가져와 토익을 공부해도 좋고 단어와 작문연습을 해도 되는 일정이었다. 나름 시간표도 있어 1시에 만나면 2시까지 영어하고 2시 10분부터 3시 10분까지 스페인어 하는 그런 시간표였다. 나는 영어에만 관심이 있으니 영어만 참여하기로 하고 책을 공유받았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이란 책으로 공부를 먼저들 하고 있었다. 어려운 책을 보고 하찮은 나의 수준으로 스터디에 민폐일것 같단 생각을 했다. 두근거린 마음에 처음 모임에 갔더니 내 또래의 여자들로 토익 또는 시험준비, 취미로 영어를 아주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인원수도 많지 않아 영어 2명, 스페인어 2-3명정도 일뿐이다. 대학교다닐때도 독서모임을 하는 선배들을 동경했는데 이제서야 나도 스터디모임이라는걸 해본다. 1시간동안 한문장씩 서로 핑퐁하여 영어를 소리내서 읽는다. 평소에 영어를 소리내서 말할 일도 없고 발음조차 점차 후퇴되어 가니 억지로 친목을 쌓아야할 필요도 없는 부담스럽지 않은 이런 공부모임은 개이득! 일요일 오후 2-3시쯤 스타벅스 동여의도점에 오면 영어를 소리내서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전에 간단한 요기를 바로 옆의 '서울커피'에서 하니 제가 궁금하다면 오세요)
낮은 자존심을 채우는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지적허영심을 위한 공부는 동기부여도 되고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