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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Nov 04. 2021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설령 그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라도


'당신의 기억, 행복한가요?'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이 외에 몇 개 더 있지만 항상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말한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고 뒤통수 맞은 것 같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처음 볼 때 첫눈에 뿅! 하고 반하듯이 봤고 이후에 반복하며 볼수록 참 좋은 영화다. 난 영화를 인상 깊게 봐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는 하는데 대다수는 지루해서 졸리다는 평이 많고 어떤 사람은 있어 보이려고 이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어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어쩌다 간혹 이영화를 좋아하고 감명 깊게 봤다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기억과 관련된 영화로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손에 잡히기도 한다'라고 말한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영화이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인공은 어릴 때의 안 좋은 기억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지만 알고 보니 기억이 왜곡되었던 것이다. 프루스트 부인이 주는 따뜻한 차와 마들렌을 먹으며 기억을 천천히 떠올리며 어릴 적 주인공을 만나 그 속에 남겨진 상처들을 치유해가는 내용이다. 나 역시 영화를 보고서 항상 내 기억이 다 맞고 내 말이 다 사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억이 완전하지 않고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나의 사건으로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좋은 추억, 행복한 추억, 나쁜 추억 모두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물건을 오래 갖고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쓰레기 더미처럼 쌓아두는 건 아니다. 버릴 건 버리는 미니멀리스트에 가까운데 물건이 망가진 곳이 없어 아직 쓸만하고, 아직 깨끗하고, 버리지 못하는 소중한 것은 오래 간직하는 편이다.

작년에 한 친구가 내가 미술 쪽 분야라 나에게 어떤 사람을 아는지 물어보려 몇 년 만에 카톡으로 연락이 온 적 있었다. 내겐 소중하고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고 싶었던 친구였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거라 그 친구 생일에 생일 축하와 함께 기프티콘을 보냈다. 다정하지만 짧게 고맙다는 말로 카톡도 짧게 끝났다. 나는 그제야 그 친구와 관련된 이 물건을 떠나보내도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만나보고 싶은데 보자는 말도 못 한 채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버리지 못해서 버리지 않은 건데, 그 물건을 버린 일을 후회하면서도 아직 갖고 있어서 뭘 하나 생각했다.

저마다 겉으로 봐선 평범하지만 특별한 것이 되어 우리 곁을 지키는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물건은 당시의 추억과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인상 깊게 만든 기억은 지금의 나를 만든다. 모든 기억 - 행복한 기억이든 트라우마든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고 이로 인해 내가 하는 모든 건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내겐 의미 있게 마음속에 들어온 일이 상대는 그저 심심해서 관심 없게 한 행동일 수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도 서로 다르고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기억으로 오해하며 산다. 기억과 후회의 공통점은 과거의 일을 생각하는 거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다. 기억은 사실을 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왜곡해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 아놔. 내가 오해하고 단단히 착각을 했구먼.. - 하며 이불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친구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편지를 받고 어린 나는 우리가 드디어 데이트를 하겠구나 싶어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만나게 될 때 하고 싶었던 얘기를 쫘르륵하고 싶었다. 나 그때 힘들었고, 서운한 것도 있었고, 내가 그때 그런 건 그게 아니었고, 저 때 저랬던 건 그게 아니었고, 내가 한 말은 빈말이 아니라 진짜였고 난 아직 이 물건을 갖고 있으니 그 친구에게 다시 주며 끼워달라 해야지 하며 대사까지 생각했다. 그 후 우린 보지 못했다. 하지만 몇 년 후 알게 된 사실은 그 친구는 그저 심심해서 여러 명 중에 한 명인 나를 찾아왔던 것이고 편지 준 것도 기억 못 하고 있었다. 나도 편지를 받고 나 대로 잘못 이해하고 오해를 했나 보다. 아놔-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못 한 채 그 친구의 마지막을 오래도록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도 매년 내 생일에 연락했다고 생각하니(정작 한적 없음) 서로 착각을 한 것 같다. 서로가 지레짐작만 하며 말도 못 하고 착각을 한 게 재미있으면서 웃기고 귀여웠다.   


다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 당시엔 서운했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고 한 편의 추억으로 남겨둔다. 당시엔 극히 평범했던 일들도 떠올리다 보면 즐거운 추억이 된다. 내가 기억하는 게 진짜일까 허상일까 싶을 때도 있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그럴걸', '그때 공부를 할걸', '통장을 보며 사지 말걸' 

'자책해봤자 소용이 없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앞으로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올바른 선택을 위한 연습이다.' 와 같은 이런 말은 개인적으로 쓸모없는 말이라 생각한다. 현재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 또한 중요하다. 내 브런치 작가 소개에 나오는 것처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지 아무렴 어때~


사람은 기억을 잃지 않는다. 기억은 머릿속에 모두 모여 있다. 마치 물아래 가라앉은 것처럼 숨어 있지만, 어느 순간 발화 지점을 건드려주면 수면 위로 솟아오르듯 기억나게 된다. 그리고 추억은 음악을 좋아한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 정말 대사처럼 잊고 있었던 기억을 발화지점을 건드리니 확 떠오른 그 당시 기억 때문에 눈물이 났다.


다시 한번 '당신의 기억, 행복한가요?'

네. 기억의 바다를 헤엄치다 보니 단편적인 기억일지라도 나에게도 예쁘고 아름다운 기억도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볼 땐 따뜻한 블랙티 홍차와 마들렌을 필수로 같이 곁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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