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늦깎이 신입사원이 되어보고자 남들 다 한다는 토익이나 오픽 같은 것들도 응시해보고, 취업정보공유 카페를 들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봄의 어귀를 지나, 완연한 봄이 되었을 때 한 회사에서 합격통보를 받았습니다. 작다면 작지만, 또 크다면 큰 회사입니다. 그렇게 남들 다하는 취뽀라는 것을 하고 약 일 년이 지난 지금, 취업 준비부터 취업 이후 현재까지의 소회를 글로 옮겨봅니다.
1. 취업은 연애와 비슷하다.
취업의 과정은 연애의 그것과 참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한창 자소서를 작성하던 시절 방 한편에 늘 음악을 틀어놓곤 했습니다. 딱히 이유는 없었는데, 음악을 틀어놓고 자소서를 쓰면 그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치 전업작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랬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음악에 꽂혀서, 그 노래만 주야장천 틀어놓고 자소서를 썼습니다.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는 말처럼, 그 노래 가사가 취업 준비하는 취준생의 마음을 후벼 파고들었습니다. 선우정아 님의 '구애'라는 곡입니다. 그 노랫말이 이렇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 했잖아요
안 들려요? 왜 못 들은 척해요
당신을 바라보는 내 눈빛 알잖아요
안 보여요? 왜 못 본 척하냐고요
난 언제나 그랬어 당신만 쭉 바라봤어
넌 언제 그랬냐 역정을 내겠지만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당최 모르겠어서
이렇게 저렇게 꾸며보느라 우스운 꼴이지만
사랑받고 싶어요 더 많이 많이
I love you 루즈한 그 말도 너에게는
평생 듣고 싶어 자꾸 듣고 싶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언제까지
전혀 취업과는 관계없는 가사입니다. 어딜 봐도 사랑을 갈구하는 구애자의 애절함을 담은 곡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르게 들립니다. 취준생의 마음을 담은 곡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해당 기업의 자소서를 쓰고 있는 취준생들 모두가 그렇겠죠. 학창 시절부터 언제나 너희 회사 입사만을 바라봐왔고, 너희 회사에서 뭘 좋아할지 몰라서 토익도 오픽도 대외활동도 닥치는 대로 해왔고, 네가 보기에 참 부족한 것도 많고 우습겠지만, 나 좀 뽑아줘라.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런 심정이 아니였을까 생각합니다.
운 좋게 면접장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호감을 가진 이성 앞에서 괜히 말도 더듬고,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것 마냥 면접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여기에도 정말 딱 맞는 노랫말이 있어요. 뜨거운 감자의 '고백'이라는 곡입니다. 그 노랫말은 이렇습니다.
이게 아닌데
내 맘은 이게 아닌데
널 위해 준비한 오백 가지 멋진 말이 남았는데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이 아니야
그보다 더욱더 로맨틱하고 달콤한 말을 준비했단 말이야
첫 면접을 보고 나서 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면접장 안의 공기는 너무나도 차가웠고, 면접관의 질문에 준비한 멋진 대답을 꺼내놓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으레 하는 그런 보편적인 대답 말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거 같은, 나만 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대답을 준비했는데 말입니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에 와서 다른 자소서를 쓰면서 들었던 노래가 바로 저 곡입니다. 자기 전에도 들었습니다. 이불 킥은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면접은 붙었습니다.
실제로 연애를 하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마음을 전하고 상대방의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고백을 하는 순간조차 확신이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네가 나를 좋아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이렇다.' 대개 이런 식의 고백이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느껴집니다. 물론 확신이 있는 경우도 있겠죠. 합격했다는 확신이 드는 면접도 있는 것처럼.
2. 나랑 맞는 회사 찾기
연애에 있어서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나와 꼭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적이다.' 취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규모가 크다고 해서 혹은 내가 원하는 산업군, 직무라고 해서 그 회사가 나랑 맞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외모와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과 꼭 맞으리란 법은 없는 겁니다. 오히려 불협화음이 생길 확률이 훨씬 높죠. 연애에 있어서 상대방의 인격, 인성과 같은 요소가 바로 회사 내의 '문화'입니다. 근데 이 문화라는 것이 회사 홍보자료나 혹은 여러 기업 리뷰에서 나오는 것과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사람들이 '부바부', '팀바팀'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곤 합니다. 정말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더 깊게 들어가 봅시다.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이 내가 그토록 원하던 명랑 쾌활한 성격이어도, 음식에 대한 기호와 같은 사소한 것들로 다툼이 벌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런 건 알 수 없습니다. 만나보고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겁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습관이나 좋아하는 음식 따위를 써붙이고 다니지 않습니다. 아무리 조직 문화가 좋아도 나의 동기, 사수, 팀원이 나와 맞지 않으면 회사를 다니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고, 아무리 조직의 전체적인 문화가 나와 맞지 않아도 나의 동기, 사수, 팀원이 나와 잘 맞다면, 혹은 인격적으로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라면 비교적 잘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애당초 취업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버릇처럼 떠 들어대는 '그 회사는 이런 게 좋더라'라는 내용은 다 잊으세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무당이 와서 네가 만날 동기는 혹은 사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취업을 해서 정말 좋은 사람들, 그러니까 나랑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그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누구도 보장해줄 수 없는 것들을 보장받은 겁니다.
3. 합격통보는 또 다른 시작
대학시절 취업을 먼저 한 선배 한 명이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인생은 막내의 연속이야.' 정말 꼭 맞는 말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은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중학교 3학년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듯, 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업에 입사하는 순간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하게 됩니다.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부서 배치를 받은 첫날이 생생합니다. 정말 모두가 너무나도 바쁩니다. 이 전쟁통의 중심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하게 됩니다. 그냥 멀뚱멀뚱 앉아있다가 집에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엄청 바빠 보이는 사수님께 뭐라도 여쭤봐야 할지 하는 고민을 시간마다 하게 됩니다. 그렇게 또 새로운 막내가 된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서툰 신입사원 말입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적응기를 거치고 나면 하나 둘 업무가 주어지게 됩니다. 취업만 하면 이것도 저것도 척척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제가 부족한 탓인지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몇 번을 혼나기 일쑤였습니다. 가끔이지만 또 어떤 날엔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어느새 수습기간을 거쳐,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4. 포기하는 용기
취업을 하고 나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나는 과연 기업이라는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인가'입니다. 이 명제를 두고 수도 없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 내 아버지 세대에서는 너도나도 회사에 다니고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살았기에, 당연히 저도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이 힘들고, 어느 날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시절 버스정류장에서 서류가방을 메고 풀이 죽어있는 직장인들을 보며 좀비 같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좀비가 아닌 위대한 전사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쩜 그렇게 악착같이 사는 것인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 명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비겁하거나 나약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 각자의 길이 있는 겁니다. 많은 이들이 기업에 취업하고, 월급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해서 나 역시 그러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버티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와 동시에 포기하는 것 역시 대단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