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아케인
라이엇 게임즈는 현시점에서 최고의 게임사 중 하나입니다. 내로라할 게임이 리그오브레전드 하나뿐이라고는 하지만, 2021년 현재 리그오브레전드가 게임 시장에서 갖는 지위를 고려한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죠. 그렇지만 이에 대한 이견 역시 존재합니다. 그 근거 중 하나는 리그오브레전드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너무나도 빈약하고, 이야기 역시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리그오브레전드가 게임 시장의 왕좌를 차지한 이후 줄곧 있어왔던 견해입니다.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많은 대중에게 소구 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소는 많으나, 그중 내러티브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 내러티브가 흥미롭지 않다면, 게임이라는 콘텐츠 역시 영화나 웹툰과 같은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사랑받기 어렵습니다. 라이엇 게임즈도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어떤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랜 시간 세계관 재편에 많은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오브레전드의 세계관이나 각 챔피언이 가진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갖는 이는 리그오브레전드 유저 중 소수에 불과합니다. 블리자드와는 대조적이죠. 게임 내 세계관과 그 세계관 속 이야기를 통해 등장인물에 힘을 불어넣는 것은 블리자드가 잘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스타크래프트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오버워치와 같은 게임들이 좋은 예입니다. 오버워치의 경우,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통해 해당 등장인물이 가진 배경이나 이야기 구조 흥미롭게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오버워치는 안 해도 시네마틱 트레일러는 한번쯤 보시니까요.
자주는 아니지만 리그오브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유저로서, 블리자드만큼의 몰입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리그오브레전드의 챔피언들의 이야기를 담은, 별도의 영상 콘텐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그런 바람이 이루어진 것인지,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리그오브레전드의 TV 시리즈인 아케인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시즌1 9화까지 모두 시청하였고, 명작이라 불릴 수준입니다. 이것이 아주 주관적인 생각은 아니었는지, 11월 20일 현재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100%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케인은 징크스와 바이, 두 챔피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시대 영국을 떠올리게 하는 스팀펑크 국가 필트오버와 그 지하도시인 자운을 배경으로 합니다. 징크스와 바이는 모두 지하도시 자운 태생의 캐릭터입니다. 뒷골목(빈민가) 태생의 캐릭터가 인접한 부촌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창작물이 그리 낯선 설정은 아닙니다만, 실사화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설정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죠.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한 스토리 구조를 담기는 그렇고, 아케인에서 흥미로웠던 요소들을 몇 가지 꼽아보겠습니다.
1. 우선 사운드 트랙이 좋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의 연례행사 중 하나인 Worlds의 시즌이 되면 해마다 새로운 테마곡들을 공개하고, 이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좋은 편입니다. KDA 같은 경우 큰 흥행을 이루기도 했었고요. 그런 이력 덕분인지 아케인에 삽입된 사운드 트랙 모두 좋습니다. 특히 Enemy 가 참 좋습니다. 그 외에도 포크풍의 곡도 있고,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존재합니다. 이들 모두 극 중 적재적소에 잘 녹아들어 극의 분위기를 한껏 극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 낯설지만 흥미로운 그림체
시네마틱 애니메이션 들의 경우 대개 디즈니에서 만든 작품들이 널리 알려져서인지 그들의 그림체에 익숙해져 있던 저에겐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화면 구성 역시 곳곳에 등장하는데 이 역시 흥미롭습니다.
3. 잔인한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의 머리가 통째로 잘려나간다던지, 극 중 등장하는 약물인 쉬머를 주입하는 장면에서 다소 잔인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 역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또한 빈번하진 않지만 15금 정도 수위의 장면 역시 꽤나 흥미롭습니다.
4. 게임 같은 연출
극 중 게임 장면과 같은 연출이 종종 등장하는 데 이것도 굉장히 신선합니다.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을 플레이했던 유저라면 더더욱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IP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연출이라 생각합니다.
5. 경계가 없는 선과 악
감상을 마치고 나서 한국의 영화 '신세계'가 떠올랐습니다. 극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선악의 경계가 점점 옅어지고,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그 경계가 아예 사라집니다. 선이라 생각했던 인물은 어느 순간 선이 아니었으며, 악이라 생각했던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각자의 나름의 당위성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기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권선징악의 스토리보다는 이러한 스토리가 훨씬 더 매력적이죠. 징크스, 바이, 제이스, 케이틀린, 벤더, 하이머딩거, 빅토르 심지어 실코까지 모든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애착이 가는 그런 내용입니다.
당장 떠오르는 요소는 이 정도입니다. 시청하면서 캐릭터가 울부짖을 때마다 함께 슬퍼하며 보았네요. 리그오브레전드를 굳이 플레이해보지 않으셨더라도, 한번 시청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후 시즌 2, 3, 4가 어떤 챔피언을 기반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구성될지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