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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na Sep 20. 2021

돈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넷플릭스오징어게임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


타인의 괴로움이 아무리 크더라도, 내 작은 괴로움만 못하다는 뜻을 담은 우리 속담 중 하나입니다. 수 백 년 전 조상들의 이 격언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기아로 고통받으며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이 내가 가진 주식의 주가 1%가 떨어진 것만큼 슬프진 않죠. 너무 인간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곱씹어보면 이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습니다. 훌륭한 인류애도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이건 어떠신가요?  


무고한 사람을 하루에 한 명씩 죽일 때마다, 통장에 십만 원씩 입금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으신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체 모를 사람이 어딘지 모를 장소에서 그냥 사람을 한 명씩 죽이는 겁니다. 죽는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며, 당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인종, 성별, 나이, 국적, 범죄경력 등의 인구통계학적 정보와는 무관하게, 여러분과 관계가 없는 사람만 하루에 한 명씩 죽이는 겁니다. 또한 그 어떤 누구도 이 제안과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수락하신다면 하루에 십만 원씩 잔고가 늘어나며,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금처럼 살아가시면 됩니다. 기대수명을 100살 정도로 잡고 여러분의 나이를 20살이라고 가정 한다면, 죽기 직전까지 이 제안을 통해 죽게 되는 사람은 29,200명입니다. 여러분과 무관한 사람 29,200명의 목숨과 29억 2천만 원을 교환하는 겁니다. 이 제안을 하는 사람은 딱히 큰 이유 없이 그냥 여러분께 재미삼아 이런 제안을 드린겁니다. 어떠신가요? 수락하시겠습니까?


고민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큰 고민 없이 뜻을 정하셨나요? 조금이라도 고민이 된다면,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을 한 번쯤 시청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꽤 진부한 주제인 '인간성의 말살', '황금만능주의'와 같은 것들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입니다. 


대리운전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며, 연로한 어머니의 통장 잔고를 가로채어 경마장에 가는 40대 대리운전기사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신과 타인의 돈을 선물 옵션에 투자했다가 60억 빚을 진 40대 금융업계 종사자

10살 배기 남동생과 탈북한 후, 북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탈북시키기 위한 돈이 필요한 20대 탈북자 

뇌종양을 앓고 있는 나이를 알 수 없는 할아버지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파키스탄 국적의 30대 불법 체류자

해외 카지노에서 조직의 돈을 탕진하여 쫓기고 있는 조직폭력배 간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징역을 살고 갓 출소한 청년


그 외 다양한 사연을 가진 449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게임을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게임도 아니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또는 '달고나 뽑기' 같은 누구나 소싯적에 한번쯤 해봤을 법한 놀이입니다. 대신 술래가 뒤를 돌아봤을 때 움직인다면 포로로 잡혀 새끼손가락을 걸고 술래 옆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것도 바로. 이렇게 게임을 하면서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상금은 1억씩 늘어납니다. 참가자 456명이 총 상금 456억의 목숨을 건 게임을 한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얼핏 보면 '메이즈러너', '헝거게임'과 같은 소재의 영화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그들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생존게임이 아닌, 순전히 '나'를 위한 게임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인생 갈 때까지 간 사람들이 하는. 또한 극 중 장면마다 갖가지 불편한 소재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욕설과 폭력은 기본이고, 성희롱, 성매매, 장기밀매, 시간(屍姦) 같은 소재들도 등장합니다. 극 전반에 걸쳐 인명경시 풍조가 노골적으로 깔려 있으며, 혈흔이 낭자합니다. 스너프 필름까진 아니지만, 잔인한 장면이 많으니 시청에 주의를 요합니다.


작중에 몇몇 도서와 영화가 등장하는 데 이 장면들 역시 꽤나 흥미롭습니다. 극초반 '매트릭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매트릭스를 유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매트릭스 영화 앞부분에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 등장합니다. 매트릭스의 영화 해석을 찾아보면 자주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이 책과 매트릭스의 내용을 고려해볼 때, 실제로 매트릭스라는 극 구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도서임에도 분명하고요. '오징어게임' 역시도 이와 유사하게 다분히 의도적으로 극 초반 책 두 권을 등장시킵니다. 하나는 이미지의 배반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로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관련된 도서이고, 또 하나는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입니다. 다소 기이하게 느껴지는 극 중 장면 구성은 르네 마그리트의 화풍과 닮아 있으며, 끝없는 물질적 탐욕을 근본으로 하는 이야기 구조는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을 떠올리기에 충분합니다.


시청을 마치고 나니 진부한 주제의 킬링타임용 드라마라기보다는, 보는 이에게 어떤 물음을 던지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CG나 연기, 스토리 구성이 다소 거슬리긴 하지만, 영끌이나 빚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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