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디자이너의 다이어리 #3
브랜드 디자이너의 다이어리 #3
오늘은 디자인 관련 내용보다는 회사생활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어차피 디자이너도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회사생활이라는 범주안에 귀속되어 있어서 회사생활에 혹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마인드셋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작하기에 앞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들어봤을 마법의 문장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당시 이해할 수도, 아니... 이해하기조차 싫은 말이었다. (즐기긴 뭘 즐겨?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회사생활도 어차피 내가 선택한 길.' 최대한 즐겨보려고 했다. 디자인 업무 자체는 어찌어찌 이겨내며 즐길 수 있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혼도 나고,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하여 프로젝트 하나를 완성한 그 기쁨이란! 다만, 디자이너도 회사의 직원이기 때문에 디자인 업무가 아닌 업무들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기억에 남는 거 몇 가지만 보자면, 비용 협의가 필요한가? 할 정도의 비용을 위해 재무팀을 설득해야 하던 거라던가, 원안 품의 하나를 작성하기 위해 몇 주간 고군분투했던 거라던가, 연말 평가나 목표 설정을 위해 PMDS/KPI를 제출해야 하는데 디자이너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했던 것들. 이것 말고도 입이 근질근질한데 일단 넘어가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사다난했던 거 같다.)
어쨌든, 디자인은 사실 내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답이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디자인이 아닌 경우에는 답이 없어서(몰라서) 정말 힘들었다. 막말로 군대야 무얼 하든 간에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마인드가 있으니 버틸 수 있었던 거 같은데 회사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시계가 딱 멈추는 느낌이었다. 해결이 안 되면 진행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내가 이해한 "즐겨라"에 함축된 의미는 어차피 할 거, 긍정적으로 봐라~ 였는데 시계가 멈추면 시계(視界)가 캄캄해졌고, 시계(視界)가 캄캄해지면 보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군대에서 시계가 멈췄다고 상상해 봐라. 아, 갑자기 현기증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당시 힘들었던 나를 구원해준 마법의 문장이 있었으니...
회사생활 어렵고 힘들기에 월급을 받는 것이다
아, 갑자기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즐기려고 한 나를 반성했다. 즐길 수 있는 회사생활'따위'는 없다. (제 기준입니다. 세상은 넓으니깐 있을 수도... 아니 있을 거예요.) 일은 항상 어렵고 힘들고 그래서 월급이라는 걸 받는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마인드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사실 회사생활은 피할 수 있거든요. 퇴ㅅ 읍읍)
즐길 수 있는 업무 따윈 없습니다. 만약 진짜 일이 너무 즐거우면 돈을 내고 다니세요.
직장인 모두가 공감하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난 지극히 현실적인 저 말이 오히려 나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월급이 쥐꼬리인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