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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knock Jun 30. 2024

<로봇 드림> 파블로 베르헤르, 2023

4.5
행복했던 그 시절, 더 늘어날 수 없어 잡아당기면 아프게 찢어져 버리기에 다른 결말은 꿈을 꾸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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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하나 없이 배경음악과 음향만으로 가장 풍부한 감성을 이끌어낸다. 영화를 본지 세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ost를 들으면 먹먹해진다. 또 중간중간 나오는 시네마가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 스포주의

개와 로봇의 관계에만 집중했다면 더 짧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개와 로봇이 서로를 재회하기를 기다리며 홀로 보내는 시간을 보여주어 더욱 좋았다.

로봇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토끼에게 다리를 뜯기기도 하고, 고물상에 팔려가 해체되었다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한편 개는 로봇을 되찾고자 온갖 방법을 알아보고, 오리를 만났다가 헤어져보기도 하고, 혼자 썰매를 타러 다니며 외로움을 달래고, 끝내 로봇을 찾지 못해 다른 로봇을 만나기에 이른다.
서로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고대하더라도 모든 순간 서로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가 없는 각자의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거친 끝에 새 인연을 만나는 모습이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워 좋다.

로봇의 꿈과 환상이 섬뜩하고 기발하다. 꿈에서는 끊임없이 개의 집으로, 몇 번이고 경쾌하게 휘파람을 불며 찾아간다. 그런 시퀀스마다 또 어떤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꿈에서 깰지 조마조마하고 마음이 무겁게 된다. 토끼들이 불시착하자 로봇은 그 토끼들이 자신에게 기름을 넣어주는 환각에 빠졌는데, 로봇이 개의 집을 찾아가 노크하는 소리는 이내 토끼들이 로봇의 다리를 잘라내는 소리로 이어진다. 겨울 내내 눈에 파묻혀 얼어버린 로봇은 심지어 스크린의 경계 바깥으로 빠져나와 스크린 자체를 돌려 뒤집어버리고는 스크린의 뒷면으로 들어간다. 여태 관객들이 보아온 스크린의 앞면은 정말 고통스럽기에, 뒷면으로 가 개를 만나고 싶기에. 그렇게나 큰 환상에 사로잡혀서, 그렇게나 강한 염원을 꿈꾼다. 뒤집힌 스크린에서 로봇은 개와 함께 즐겼던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컬러영화의 지평을 연 오즈의 마법사라는 점에서도, 캐릭터가 로봇이라는 점에서도 기발하다.
영화라는 '로봇이 처한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찾아가고 싶은 애절한 염원이 얼마나 큰지 드러내는 연출이 참신하다.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상상의 세계가 따로 있다.

로봇이 새 인연과 파티를 하던 중 케첩을 찾으러 갔다가 창밖으로 개를 보게 된 때부터 이어지는 시퀀스. 너무나도 애절해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 잔잔하고 빠르지 않은 전개로 이런 감동을 줄 수가 있구나 싶다. 로봇은 밖으로 뛰어나가 개를 붙잡고 싶지만, 이내 각자의 곁에 있는 다른 인연에게 부름을 당해 멈춰서야 함을 상상 속에서 깨닫는다. (그 상상조차 너무 자연스럽고 이입이 되어서 현실로 돌아오기가 고통스럽다.)
개와 로봇은 이제 서로가 아닌 새 인연의 곁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 시절은 어떤 이유에서든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다. 오히려 그 인연은 그 시절에 멈춰있기에, 그 필름에 적혀 박제되었기에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다. 이걸 아는 로봇은 September를 크게 틀고, 거리에까지 들리도록 크게 들고, 추억에 젖어 울어대다가, 또 웃어대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개 역시 그 노래를 듣고 추억에 젖어 울고 웃으며 로봇을 그리워하고 이리저리 찾아보지만, 로봇은 창틀 뒤로 숨어버려야만 한다. 개와 로봇의 시간은 이미 지난 날들에 못박혀 있기에 소중한 추억을 현재로 끌어당겼다가는 그 아련한 그리움마저 찢길 것이므로.
로봇이 September를 중지하고 재생시키는 Rascal's favorite songs는 새 인연인 Rascal이 로봇을 만난 후에야 공유하게 된 추억들이다. 그러므로 로봇은 Robot's favorite songs를 가끔, 혼자 있을 때만 불러볼 뿐이다. 개 역시 이제 옆에 있는 새 로봇이 추는, 이전 로봇과 다른 모양의 새로운 춤에 낯선 기쁨을 느끼며 장단을 맞춰나간다. 각자의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할 지나간 그 시절은 새 인연이 없는 곳, 꿈에서만, 상상에서만 추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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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에서 로봇은 개의 선택을 받아 구매의 대상으로서 관계를 시작하는 수동적 존재로 그려진다. 로봇을 구매해서 그 로봇과 인연을 맺는다는 어딘가 기이하고 부자연스러운 설정은, 다가와주는 사람을 기다리던 우리의 흔한 모습에 대한 조금은 과한 비유이겠다(영화가 참 좋아서 이 설정도 그렇게 잘 이해해보고 싶다). 인연을 맺는 데 있어 동시에 다가가는 일은 없기에, 우리는 개가 되어보기도 로봇이 되어보기도 한다. 로봇은 그렇게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찾아오기까지 첫 번째 기다림을 겪고서 다가와준 개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개와 로봇은 둘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원치 않는 모종의 이유로 헤어진다. 둘은 서로를 재회하기만을 기다린다. 두 번째 기다림은 끝내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로봇은 두 번째 기다림을 단념한 뒤에야 개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결정적인 순간 지난 관계를 추억으로 남기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로봇이다.
여기서 로봇은 개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 능동적인 행동에 나선다.

개와 눈이 마주칠 뻔하자 곧바로 숨어버리는 로봇의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성숙하다. 다가오곤 떠나버린 개에 대한 원망이나 불쑥 튀어나온 그리움을 표출할 수 있었음에도, 로봇은 터져나올 뻔한 욕심을 꿀꺽 삼킨다. 야속한 시간의 흐름 위에 개와 로봇이 각자의 위치에서 지금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함께한 추억이 지난 시간의 한 켠에서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도록. 또 다시 부둥켜 안았다가는 또 다시 헤어지고, 기다리고, 싸우거나 아프게 될 것이므로. 그 결심은 두 번의 기다림을 지나고, 기다림 끝에 몸이 찢기는 고통을 겪어낸 로봇만이 선택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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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쌍둥이 빌딩이 눈에 띄게 그려지는 걸 보면 아마 2000년 이전의 미국을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 9.11이라는 커다란 비극이 닥치기 이전을. 그러니까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후 새로운 사랑을 만나거나, 자연스레 상실의 감각에 무뎌져 일상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성숙하고 포근한 위로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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