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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knock Mar 17. 2024

<스포트라이트> 톰 맥카시, 2015

고요하고 독실한 그 어두운 밤을 유지시키는 것도 우리, 밝은 조명을 비춰 썩은 뿌리를 끄집어내는 것도 우리.


아르메니아 출신 변호사 미첼은 물밑에서 성직자들의 성폭력에 고통받아온 보스턴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그는 마이크의 끈질긴 취재 열정에 마음을 열고, 이 일에는 외부인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보스턴이라는 끈끈한 연줄로 얽힌 사회에 등장한 완벽한 외부인 배론. 배론은 보스턴 추기경과의 만남에서 추기경의 환대에조차 언론은 독립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냉정하게 대꾸한다. 카메라는 보스턴의 가톨릭 자선행사 연회장에 들어서는 배론의 뒤통수를 따라간다. 보스턴 토박이들과 성직자들이 가득한 그곳에, 철저한 이방인이 들어서는 모습이 강조된다.

영화가 폐쇄적인 사회의 내재적인 한계를 꼬집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악한 일부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시스템과 관행, 권력작용을 짚어내는 그런 시선이 만족스럽다. 그런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문제라면 내부인으로서는 지적하고 바꿔내기 어려울 수 있다. 문제라고 느끼기를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일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문제는 더 깊고 만연하며 고통스럽다.


미첼은 문제가 마을 전체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기자들이 애써 찾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를 꺼린다. 심지어 가해자로 지목된 한 추기경은 그 스스로가 어린 시절 피해자였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짓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게 곪아 있다.

성직자들의 명부를 보관하는 오래된 도서관에서는 쥐의 시체가 썩어감에도 아무도 불을 켜고 이를 찾아서 치우지 않는다. 악취만 심해져 간다. 그런 어둠 속에 놓인 사람들은 자꾸만 넘어지고 구를 뿐이며, 불을 켰을 때 보이는 허물은 참 비난하기 쉬운 것일 터이다. 해야 할 일은 그 허물의 주인을 찾아 화를 내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허물을 치우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영화 내내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하다고 착각하기 쉽게 만들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피해자들의 변호사였던 맥클리시는 자꾸만 사건을 축소시키려 하고 기밀이라며 감추려 한다. 그러나 그는 사건을 처음 맡은 당시 20명의 가해 성직자 명단을 보스턴 글로브에 보내 알렸었다. 누군가가 사건이 터지는 걸 막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벤의 얼굴이 비춰진다. 그 숏의 전환 자체가 맥거핀이다. 벤이 20명의 명단을 받고서 은폐했을 것이고 취재를 막고 있으리라는 의심이 영화 내내 유지되지만 벤은 영문을 모른 채 권력을 향한 이 취재의 성패를 걱정했을 뿐이었다. 반면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야말로 어둠 속에서 굴러다녔던 장본인이다. 20명의 명단을 받고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묵혀두었던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성직자들의 변호사를 마냥 비난하지 않고 그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반성할 줄 아는 로비의 대사는 참 품격있게 들린다.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문서를 공개받아 복사해오고 보스턴 추기경의 은폐 의혹을 당장 보도해야 한다고 외치는 마이크의 감정적인 절규는 성공할 수 없다. 절대적인 악인도, 무조건적인 선인도 없는 보스턴에서 추기경 한 명을 고발하는 것은 침수차의 펑크난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마이크의 긴박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은 관객들을 이입시키고 감정을 고조시킨다. 로비와의 말다툼 끝에 문을 쾅 닫고 나서는 장면까지, 관객들은 그의 분노와 억울함을 공유하게 된다. 그런 분노는 열정적인 취재의 원동력이 된다. 그럼에도 이를 억눌러야 한다는 답답함, 또 개인을 공격하는 쉽고 속시원한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을 들춰내는 복잡하고 지지부진한 결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의 무게감까지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 6주의 취재를 남기고 다가온 크리스마스. 어린 성가대 아이들이 Silent night, Holy night을 합창하는 것이 마치 살려달라는 비명소리처럼 들린다. J컷으로, 취재가 이루어지고 기자들이 가족을 만나는 장면과 함께 노랫소리가 먼저 깔리므로 그런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윽고 어린 성가대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 아이들이 피해자가 될 수도, 심지어 어린 시절 독실했던 마이크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성가대를 바라보는 마이크의 표정에서 처참한 마음이 드러난다.

심각하게 곪아있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 자칫 자극적이게 보일 수 있는 플래시백 장면이 단 하나도 없는 점이, 이 영화가 단순히 화제성에 힘입어 성공하려는 시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 가해자가 수없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전화를 받을 때, 그리고 마이크가 법원에서 받아온 문서를 읽으며 추기경이 사건을 덮었다는 것이 드러날 때, 카메라가 말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점차 줌아웃되며 팀 전체를 비추고 팀이 위치한 사무실 전체를 비추는 연출이 매우 인상적이다. 새로운 정보가 주는 충격과 파급력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마음 속 뜨거움을 간직하면서도 차분한 판단으로 무겁게 나아가며, 외부의 압력이나 사적 이해관계를 신경쓰지 않고 투철한 직업정신을 십분 발휘하는 시간들이 쌓이면 어떤 성과로 이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 영화가 참 품격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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