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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림자

시 하나

by 흰여우

님이 집의 문을 넘어 오셨을 때, 모래사장처럼 펼쳐진 내 시간에는 이윽고 파도가 쳤습니다

휩쓸 듯 다가온 물은 나를 내리누른 채 그렇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런 기억조차도 들어올 때는 참으로 파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시간은 그렇게 님으로 채워졌습니다

이윽고 모래사장은 강이 되어 흘렀습니다 햇살의 난반사에 내 절반이 사라져도

밀려오는 파도에는 한정이 없어보였고 나는 그걸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지고 세상이 흘러흘러 공전을 계속하면

어느새 시간에는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난 세상에 다시 던져집니다

드러난 것은 새로이 결코 채워지는 법이 없고


할퀴듯 내보인 윤곽선은 넓어지고 또 황량해져서

어느 순간 떠나간 기억이 밀물 같다는 느낌도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또 바닥에 읊조려놓은 행복해 고마워 이제야 보고서도 차마 눈길을 두지 못합니다


보기만 해도 아리운 흔적은 삐뚤빼뚤거리며 선명하게 남아 몇 번의 밀물과 썰물에도 저게 쓸려나가려나 알 수가 없고

저걸 숨겨야하나 문대어보아야 하나 알 수조차 없는 채 또 언제 칠지도 모르는 밀물을 두려워하고

잔인한 시간은 참으로 신경없이 흘러흘러 공전만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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