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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용 Nov 01. 2017

이름 없는 괴물 이야기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인간은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그 심연을 파헤쳐 장막을 들추고 진실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인간의 호기심, 탐험심, 지식욕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임이 틀림없다. 그중 한 가지를 떠오른 이야기 해 보자면 최근에 인공지능 알파고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홀연히 바둑계에 등장해서 인간계 최고수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홀연히 바둑판을 은퇴한 이후의 일을 다루고 있는 글이었다.


https://brunch.co.kr/@madlymissyou/18


체스, 장기 등에서 AI가 인간을 뛰어넘은 건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바둑만큼은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포석, 맥, 사활, 세력, 어깨 짚기 등을 이해하고 무수히 많은 상황에 대하여 AI가 가치 판단해서 수를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파고의 등장 이후로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AI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위 링크 글에서 언급되는 '알파고 Zero'는 인간의 기보를 전부 버리고 스스로 학습을 통해서 인간 이상의 경지에 올랐다. 

그것도 상당히 압도적인 차이로 말이다. 창조주인 인간을 실력으로 압도하는 것도 모자라서 인간의 방식을 모두 버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인간을 뛰어넘은 AI를 보고 있자면 놀라움과 함께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한다. 알파고를 통해서 모두가 AI의 눈부시게 빛나는 미래와 어두운 심연을 동시에 봤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서조 차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에서 우리와 비슷한 외형에 흉측한 외모를 가진 피조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마도 소설 속 다른 사람들처럼 기겁하고 소리치면서 도망갈 것이 분명하다.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창조할 수 있는 능력과 창조주의 자격은 별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괴물'의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은 갖췄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피조물을 받아들이고 이에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지 못한 인물로 표현된다.
프랑켄슈타인은 단지 자신만이 깨달은 생명을 불어넣는 진실을 실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고 매달려서 끝내 생명을 부여하는 신의 영역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는 괴물로 태어난 피조물에겐 크나큰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이 한 일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거대한 육체에 생명을 부여했을 뿐인데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을 그 거대한 괴물의 형상에 깃든 영혼은 이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괴물의 형상에 깃든 영혼이 이 세상 누구보다 고결하고 순수하다면...'


영혼과 육체의 엄청난 괴리감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들었던 미묘한 느낌 중의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 가장 순수한  등장인물은 다름 아닌 이름 없는 괴물이다. 일관되게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전형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극적인 대비 효과가 이름 없는 괴물을 괴물 그 이상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누구도 괴물의 외형에 현혹되어서 이를 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읽는 독자들은 단순 묘사만으로 괴물의 외형을 상상할 뿐 시각적으로 괴물을 볼 수는 없다. 독자들은 이름 없는 괴물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은 뒤에 우리는 그동안 잘못 알았던 이름 없는 괴물과 다시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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