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스스로 보호 매뉴얼

고백의 마무리

by 마음훈련소
9화를 발행하고 꼬박 1년이 걸렸다.


2024년 2월, 두려움 섞인 고백을 멈춘 뒤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까지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머리로 이해한 깨달음을 삶으로 살아내고, 내 안에 깊게 뿌리 박힌 '장녀 시절의 나'를 온전히 보내주는 긴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고되고 외로웠다. 나의 아픈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한다는 사실은 시시때때로 날카로운 불안이 되어 돌아왔다. 여전히 나를 공격하는 포지션에 서 있는 원가족과는 몇 차례나 더 격렬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변화를 선택한 나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 앞에서 나는 수시로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일어서야만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의 진심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평생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상황을 중재하는 데만 익숙했기에, 정작 내 마음을 '언어화'하여 가족에게 내보이는 것은 생소하고도 어려운 숙제였다. 서툴게 시작한 이 언어화의 과정이 가족 안에서 자연스러운 소통으로 자리 잡기까지, 나는 참 많은 시간을 인내하며 자신을 기다려주어야 했다.




비로소 장녀 시절의 나를 기쁘게 애도하며 보낸다. 그 긴 터널을 버티고 지나온 지금, 나는 내게 진심으로 '뿌듯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를 갉아먹던 관계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의 편'이 되어준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었음을 이제는 확신한다.


이 고통스러운 임상 실험을 통해 완성한, [나를 지키는 스스로 보호 매뉴얼]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나를 지키는 스스로 보호 매뉴얼


내 마음을 '언어화'하는 연습을 멈추지 말 것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내 감정을 말하는 것이 서툴 수 있다. 괜찮다. 처음이라 그런 것뿐이다. 내 마음을 소리 내어 말하는 연습이 반복될 때, 비로소 나를 지키는 울타리는 견고해진다.


불안을 '성장의 신호'로 받아들일 것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만큼 견고했던 틀을 깨고 나오고 있다는 증거다.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지금 나를 위해 용기 내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먼저 달래주자.


사과보다 '질문'을 먼저 던질 것

무례한 빌런들 앞에서 습관적으로 죄송하다 말하지 마라. 대신 고요하게 물어라. "당신이 말하는 무례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주도권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내 안의 '어린 나'를 돌보는 전담 중재자가 될 것

세상 모두가 나를 비난해도, 나만은 내 편이어야 한다. 갈등으로 지친 밤에 "우는 것도 참 힘든 일인데 애썼다. 이제 밥 먹고 푹 자자"라고 말해줄 수 있는 다정한 어른이 내 안에 상주해야 한다.


나의 복수는 끝났다.


가해자들이 더 이상 나를 투사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멀리 날아왔고, 그들이 준 상처는 이제 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흉터이자 훈장이 되었다. 1편에서 두려움에 떨며 짐을 싸던 나에게 이제는 말해줄 수 있다.

"마음훈련소야, 그 빈자리는 허무가 아니라, 너를 진심으로 아껴줄 진짜 인연들로 채워질 축복의 공간이었단다."


K장녀라는 이름 뒤에 숨겨졌던 나의 '중재자' 재능은 이제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지키는 단단한 기둥이 되었다. 나는 갈등조정을 전문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의 역할을 곧잘 해내며 역량과 활동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나의 고백은 여기서 끝나지만, 나를 지키는 평온한 일상은 끝나지 않을 평생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동안 저의 아픈 고백을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그대도 그대의 편이 되어 날아오르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