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와 나의 군생활
2014년, 지난 12년간 나를 괴롭혔던 입시제도의 억압에서 벗어났다. 지난했던 시절의 버팀목은 다름 아닌 대학에 대한 기대였다. 적어도 11월의 어느 하루에 매몰된 삶보단 나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입학식 날, 대학교의 정문을 바라보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 그 후 1년간은 내 바람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저기 많이 다녀보고, 술도 많이 마셨다. 그리고 학점에 신경 쓰지 않고 정말 하고 싶은 공부만 했다. 물론 체계에 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제약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 1년 동안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군대 대한 걱정이 있었다.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으리란 생각에 기왕이면 빨리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12월에 공군에 자원입대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나는 학생에서 군인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미명 아래 20대의 2년여를 군대에서 보낸다. 내게 군대는 폭력과 억압의 공간이었다. 입대와 동시에 20여 년을 큰 굴곡 없이 살아온 내게 전대미문의 폭력이 찾아왔다. 매스컴에서나 접하던 국가의 폭력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훈련소 조교는 당시 훈련병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그는 우리에게, 지금 너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낮은 존재라며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라고 호통쳤다. 그러면서 여기에 강제로 끌려온 사람은 없다면서, 다들 자원입대해서 온 것이니 불만을 느끼지 말라고 했다. 의무와 강제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던 그의 말을 통해 적어도 그날 나는 소설 1984에서 윈스턴이 했던 것과 같은 이중사고를 경험했다. 입대 직전까지도 두리뭉실했던 군대의 이미지는 훈련소를 지나 자대에 배치받으면서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하루가 다르게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이 느껴졌고, 그때부터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면 항상 도서관을 찾았다. 어느 날 서가를 둘러보다 소설 1984가 꽂혀있는 것을 봤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질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바로 그날 이 작품을 빌렸다.
조지 오웰은 작품에서 전체주의의 폭력이 온전하게 실현된 오세아니아의 살풍경을 그려낸다. 그곳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통제받고 사상을 검증받는다. 국가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한 그들은 그저 정해진 틀 속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춘다. 하지만 윈스턴은 조금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실체를 자각하고, 침묵 속에서 저항한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대담하게 세상의 모순에 정면으로 반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끝내 그의 일탈은 또다시 국가에 의해 제단 당한다. 거대한 국가의 폭력 앞에 그는 결국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을 부르짖는다.
폭력은 그것을 당하는 이의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목적 없는 폭력은 존재할 수 없다. 대부분의 폭력은 행하는 이가 당하는 이에게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행한 것이 그러했고, 군대가 내게 행한 것이 그러했다. 이렇듯 전체주의 사회는 여러 종류의 폭력이 개인에게 가해지는 사회다. 그리고 내가 속한 군대는 바로 그 전체주의로 점철된 공간이었다. 소설에서 보이는 윈스턴의 삶과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군인의 삶을 살고 있던 내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가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박탈당하고 조건 없는 봉사를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군대에서 전체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인간에게 욕망은 삶의 이유고, 삶은 욕망의 재현이다. 아무리 억압하고 폭력으로 무너뜨려도 그것은 언제고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욕망이 없는 삶은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윈스턴은 욕망했고, 파괴당했지만 여전히 이중사고 속에서 진정한 삶을 꿈꾼다. 그는 그저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 억압과 폭력의 공간에서 도서관을 찾고, 생각의 깊이를 더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육체적 고통을 참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한하게 쌓이는 욕망을 참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망과 그것을 억압하는 폭력은 서로를 상쇄시키기는커녕 서로를 더욱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그 끝에는 결국 욕망이 있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1984 말고도 많은 책들을 읽었다. 문학 작품 중에선 특히 '위대한 개츠비'가 기억에 남는다. 개츠비는 입대 직 후, 1년, 그리고 전역 직전까지 군생활의 변곡점마다 지친 마음에 위안을 줬다. 작품 속에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꿈꾸는 인간과 욕망하는 인간에 대한 작품 마지막 단락을 여기에 인용한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몰려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이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그리고 맑게 갠 날 아침에……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조지 오웰(김기혁 역), 1984, 문학동네, 2009.
F. 스콧 피츠제럴드(김욱동 역),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2003.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