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연작 2: Born to be blue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by 느루

휘황찬란한 불빛에 오늘도 눈이 멀었다. 떨리는 시선 끝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희미하게 일렁이는 잔상일 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환상은 또 다시 나를 불태우려한다. 이상은 그렇게 끊임없이 서슬 퍼런 미소를 건넨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 이상을 향해 손을 뻗어야하는가, 아니면 남아있는 미련을 정리해야 하는가. 끝끝내 잡고 싶은 꿈의 파편이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낼 때, 고대하던 선택의 시간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로 뜨겁게 타오른다. 그리고 시리도록 푸른 불꽃의 열기는 끝끝내 나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그 불꽃은 오직 나만을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내가 상처 입힐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뿐이므로.


영화에서 그려진 쳇 베이커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재즈의 푸른Blue 불꽃에 매료되었던 트럼펫의 탕아는 스스로를 푸른빛으로 불태우며 오직 자신만을 상처 입히려 했다. 그는 현실과 낭만의 어느 지점에 반쯤 걸친 채로 살았고 뒤틀린 채로 숨 쉬었지만, 그의 올곧은 시선이 향하고 있던 곳은 스스로의 공허한 내면이었다. 그리고 파괴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세상에서 그를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은 아마 음악을 향한 간절한 ‘소원’이지 않았을까.


감독은 영화의 극적인 연출을 위해 두 가지 가정을 했다. 먼저 쳇 베이커는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자전적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극중에서 쳇 베이커의 뮤즈이자 구원자였던 제인은 허구의 인물이다. 각색의 미학은 이렇게 극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어 파괴당한 천재의 현재와 과거를 영리하게 교차시킨다.


사람은 한 번 받은 충격을 쉽게 잊지 못한다. 쾌감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장면에서 쳇 베이커는 재즈계의 촉망받는 신인이었다. 그는 어딜 가던 주목 받던 시대의 스타였다. 그러나 대중의 박수갈채와 거성들의 비난 섞인 비판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여린 천재가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그는 꿈을 꿨지만 현실의 무게는 그 꿈을 잔인하게 짓눌렀다. 마음이 망가진 그는 더 이상 현실의 모진 풍파를 이겨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꿈꾸길 포기하진 않았다. 대신에 그는 꿈을 위한 꿈을 꾸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댔다. 허기진 꿈은 끝내 그를 잡아먹었다. 마약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삶을 철저하게 망가뜨렸다. 영화 속 ‘현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재기를 꿈꾸며 돌아온 미국의 어느 세트장에서 쳇 베이커는 제인과 만난다. 스쳐갈 줄 알았던 둘의 관계는 다양한 변곡점을 지나치면서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제인에게 구원받은 쳇 베이커는 다시 한 번 현실과 맞서려고 한다.


무지개 너머에 보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두 사람의 입술이 지는 석양 위로 포개어질 때, 제인이 베이커의 발렌타인이 되었을 때 현실과 꿈은 같은 지평선에서 서로를 바라보기에 이른다. 그러나 낭만의 시대를 사는 이에게 행복은 그리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일그러지는 현실은 과거의 고통을 불러왔다. 모든 것이 시작된 버드랜드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쳇 베이커는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현실과 이상, 그 잔인한 러시안 룰렛은 단 한 번도 사랑에 빠진 적 없다는 베이커의 고백으로 제인의 심장을 관통한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의 색깔은 푸르다고 한다. 작중의 쳇 베이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곡은 ‘Born to be blue’이다. 재즈에서 태어난 푸른 초신성은 이상을 추구하며 불안한 발걸음을 옮겼다. 약에 취해 꿈을 꾸던 그는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그 꿈에 잡아먹힌 채로 1988년의 어느 날, 암스테르담의 허공을 외롭게 부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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