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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널 G Dec 09. 2021

갑천에 눈이 오면 ...

눈 내린 갑천 걷던 날

처음인 듯 처음 아닌

갑천과 썸 타는 아침


눈도 왔고 그래서 길을 나섰다. 사계절 찾는 산책코스 갑천 습지길. 갑천 우안 임의마을 입구에서 시작해 갑천을 따라 걷다가 도솔산으로 간다. 임의마을 입구 → 도안대교 아래 → 징검다리 → 도솔봉 → 도솔정→ 도안대교 위 5.5㎞.  '대전 걷고 싶은 길 12선' 중 한 곳인 월평공원 습지길의 일부다. 월평공원 습지길 공식구간은 도솔체육관 → 내원사 → 갑천우안 → 임의마을 입구 4km 코스.


#1. 아, 춥다

임의마을 입구. 괜히 나왔나 후회가 찾아올 찰나 눈 쌓인 갑천길이 팔을 열어 유혹한다. 한결같은 곳이지만 날마다 새롭다. 시각도 청각도 촉각도, 오감이 처음인 양 설렌다. 아직 해가 산을 넘어오지 않은 시각, 산그늘에 숲은 조곤조곤 숨을 쉬고 있다. 바람도 조용하다. 나뭇가지가 영상이 아니라 사진이다. 소리없는 아우성, 찬 겨울입김 내뱉을 때마다 갑천변 생명의 숨결이 느껴진다.


#2. 그런 날에는

... 난 거기엘 가지 파란 하늘이 열린 곳, 태양이 기우는 저 언덕 너머로. 난 거기엘 가지 초록색 웃음을 찾아, 내 가슴 속까지 깨끗한 바람이 불게...  *링크 : 어떤날 노래 그런날에는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목소리는 마스크 뒤에 숨어 있지만 나름 발랄하다. 숨어 있지만, 나 살아있소 꿈틀대는 거 같다. 이 길의 숨결처럼. 문득 멈춰선다. 조용하다. 새소리도 없는 침묵. 누가 음소거 리모컨 버튼을 눌렀나. 정지된 프레임 속으로 새 한마리 날아든다. 그 뒤 도솔산 나무들 사이로 아침 해가 살짝살짝 비친다.


#3. AM 9:00

아침 해가 도솔산 머리 위까지 올라왔을 무렵 갑천 큰고니떼 놀이터에 다다른다. 고니들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에 있나 보다. 햇살 비치는 얼음 위에 아쉬움 남기고 돌아선다. 햇살이 고개를 들자 작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위에서 자고 있던 눈들이 날린다. 갑천으로 도솔산으로, 갈 길을 간다. 지금 막 내리듯 날리는 저 눈발은 어디로 가는 걸까. 사평역 찾아 떠나는 길일까. 


#4. 바람, 도안호수공원

도안대교 가까이에 왔다. 해가 다시 도솔산 뒤로 숨는다. 길은 산그늘이 품는다. AM 9:20. 슬쩍 뒤돌아본다. 걸어온 길 옆으로 갑천 물길이 길게 보인다. 그 물길 옆으론 나무들이 도열해있고 그 뒤로 사람사는 마을이 보인다. 갑천친수구역 도안호수공원 예정지 앞이다. 호수공원이란 쉼터가 들어서는 건 쌍수 환영할 일이지만, 아파트 지으려 만드는 호수공원은 반갑지 않다. 월평공원, 도솔산과 갑천 생태습지의 숨결을 잊어선 안 된다.


#5. 숲, 비타민詩
도안대교 아래를 통과하면 더 맑고 깨끗한 숲길로 접어든다. 평온하고 아늑한 길은 계속 이어진다. 걸으면 걸을수록 행복해지는 숲길, 마스크 벗고 크게 심호흡 한다. 가슴 속까지 깨끗한 바람이 들어온다. 한 어르신이 지나가신다. 양 손의 스틱도 힘차게, 걸음도 힘차게. 차가운 공기 헤치며 행복의 숲으로 입장하신다. 이 길을 숱하게 걸으셨으리라, 노련한 청춘의 에너지가 전해온다.


#6. 소리, 징검다리
도솔산으로 오르기 전 갑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소리 힘차다. 물소릴 듣다보면 오버랩/페이드인 되는 노래가 있다.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 *링크 깊은 물: 도종환 시/백창우 작곡/백창우 노래


#7. 도솔산 조망쉼터1

산책 같은 도솔산 산행을 시작한다. 초반 가파른 길을 지나 20여 분 정도 오르면 도착하는 첫 번째 조망쉼터. 정상(207m) 표지석이 있는 도솔봉보다 조금 아래 있는 곳이지만 조망은 더 좋은 곳.

갑천 물길이 시원스레 보인다. 예전 비닐하우스 단지들은 아파트단지로 바뀌어 있다. 최근에 지은 갑천3블록 트리풀시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도안과 유성의 아파트 건물들이 도열해 있다. 이곳에 서면 가장 눈여겨 보는 곳은 계룡산 줄기다. 우산봉부터 갑하산, 수통골 도덕봉과 빈계산, 그 뒤로 천황봉 철탑도 보인다. 산줄기를 쭉 훑어보다 보면, 두 해 전 걸음 내디뎠던  대전둘레산길 12개 구간 중 8구간(우산봉길), 9구간(수통골길), 10구간(성북동산성길) 길위의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동행한 동지들의 생생한 얼굴도.

ㄴ *링크 : 대전을 품에 안는 최상의 선택, 대전둘레산길


#8. 바람, 조망쉼터2

도솔봉을 반환점 삼아 찍고 내려간다. 올라온 방향이 아닌 도솔정 쪽으로 20여 분 가다보면 조망이 탁 트인 조망쉼터2를 만난다. 벤치도 있어서 많은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곳, 경사 비탈길이 있어서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하다. 좀더 안전한 조망터로 손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도안호수공원이 들어서면 최적의 조망터가 되지 않을까.    


도솔산에서 내려와 갑천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나는 메타세쿼이아 길목. 


#9. 다리 위에서

갑천으로 내려온다. 다시 출발점인 임의마을 입구로 가기도 하지만 오늘은 도안대교를 건넌다. 갑천 우안에서 서안으로 건너간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1시간 반 전에 지났던 길이 보인다. 그 옆으로 눈부신 갑천 물길이 흐른다. 다리 위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는다. AM 11:10.  


도안대교를 건너면서 갑천을 내려다 보시라, 산과 물과 길이 하나가 돼 한 폭 풍경이 된다.
도안대교를 건너며 갑천 둔치를 내려다 보면 유려하게 곡선을 이룬 눈길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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