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렇게 오늘을 산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

by 파워보이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4)


'안절부절'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이란 뜻이다. 이 말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마음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이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붕’ 뜨는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문제는 이런 감정을 가지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고,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사실 걱정해서 풀리는 문제였다면, 우리는 매일 걱정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걱정은 문제의 해결 방안을 마련해 주지 않고, 문제의 난이도만 높일 뿐,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라는 편견을 만들어 절망으로 인도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결국 내 안에 몰려 온 두려움으로 인해 나를 믿음 없는 사람으로 살게 한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흔들림 없이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선으로 문제를 보려고 하기 때문에, 그의 기준은 하나님을 닮게 돼 성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만일 당신이 불안에 시달려 하는 것마다 불안에 떨고 있다면, 그것은 연약한 믿음 때문이다. 결국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상황과 환경 때문에 물러서거나 뒷걸음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머리로는 믿음이란 단어를 떠올리지만, 실제 삶의 자리는 두려움으로 채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믿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차지했을까? 그것은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부터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이 분명한데, 내일의 염려까지 가지고 와서 해결하려고 덤볐던 순간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나. 끊임없는 영적 전쟁의 전장에서 살면서도 하나님께 지원 요청을 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싸움을 치르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의 결정체다.


나는 과거 모 회사의 채용담당자로 모교를 방문해 대학생들과 상담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가져 온 서류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 그 순간 내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들과 경쟁했다면 취업할 수 있었을까?'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돋보이게 하려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실 스펙(spec)을 준비하기 위해 인턴을 하고, 기업 경험을 쌓는 자리를 찾는 것은 나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요즘은 스펙 뿐 아니라 스토리(Story)를 만들기 위해 여행, 동호회 활동, 교환 학생 등 다양한 경험을 쌓는 친구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대학 졸업 후 바로 군복무를 이어갔기에 사실 준비한 스펙도 없었고, 취업을 위해 써 내려온 스토리도 없었다. 사실 면접의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대화는 각종 훈련 준비로 바빴던 나에게 좌절만을 안겨 줄 정도로 마음을 혼란하게 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한국 학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미국 서부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들은 이야기는 중국계. 인도계 학생들이 미국으로 많이 왔는데, 이들이 준비하는 스토리 만들기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아이비리그(IVY League)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각종 스포츠(Sports)를 배우고, 다양한 실기들을 준비하며,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고 했다.


그에 비해 나는 오늘을 살기만으로도 바빴기에, 삶의 스토리가 다이내믹(dynamic)하지 않았다. 조금은 포장하고 싶었으나,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런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아야한다는 마음을 주셨고, 그로부터 나는 주신 하루를 사는 일에 감사하며 오늘을 사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오늘을 집중해서 사는 것도 쉽지 않다. 항상 예상치 못한 삶의 무게를 느끼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군 생활 중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지뢰 사고로 우리로부터 떠났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25세 청년시절, GOP에서 울려 퍼진 굉음은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깊은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내게 주신 하루가 내 것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일을 염려할 자격이 없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을 선물로 여기며, 지금(只今)을 사는 데 집중하는 것이 사명이었다. 그러므로 내게 다가 온 염려와 근심은 내 몫이 아니었기에 오직 믿고 맡기는 전적위탁의 삶만이 삶을 가치 있게 보내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내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만든다. 이 말은 어제까지 나를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믿기에, 내일을 걱정하기 보다 내게 주신 오늘을 감사하며 믿음으로 산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내 일상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안다면, 믿음 안에서 주님 주신 시간을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내일에 대한 염려는 오늘을 감사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사치(奢侈)다.


혹시 내일의 염려에 갇혀 괴로움 속에 살고 있다면, 혼자 많은 것을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게 주신 오늘을 기쁨으로 감사하면서 산다면, 하나님께서 주실 내일도 분명 오늘처럼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이 가장 복되고 은혜로운 날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날을 아름답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오직 하나님께 받은 오늘을 감사함으로 살자. 은혜는 감사를 통해 흘려보내고, 염려는 기도를 통해 내 안에서 꺼내어 밖으로 보내자. 분명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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