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리듬 -카뮈의 정지와 리스펙토르의 진동 사이에서

당신의 불안은 고장이 아니라, 존재가 다시 진동하기 시작한 신호입니다.

by 김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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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외부에서 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은 몸과 생각의 불규칙한 진동입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생각이 지나치게 깊어지고 지나치게 먼 시간을 바라봅니다.

이 떨림을 바로잡아야 새로운 생리적 리듬이 만들어지고

자율신경의 불균형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심장이 두 번 뛰는 찰나에는 자아가 무의식과 맞닿는 작은 떨림이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모두 불안을 다루는 시선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카뮈는 냉정한 평면으로, 리스펙토르는 뜨거운 파동으로 분열된 자아를 다스리려 합니다.



I. 카뮈의 불안: 리듬이 멈춘 '동결(Freeze)'의 상태

카뮈의 불안은 침묵 속에 삽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세상을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햇빛은 명료하고 공기는 투명하지만, 존재의 진동은 멈춰 있습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는 자율신경계의 배측 미주신경(Dorsal Vagus) 반응,

즉 동결(Freeze) 상태와 닮아 있습니다.

너무나 거대한 불안 앞에 서면, 우리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차단하고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른다.”


이 차갑고 건조한 문장은 슬픔의 부재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이 몸과 자율신경의 리듬을 멈춰 세운 결과입니다.


융(Jung)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지 못한 채 무의식의 문 앞에서 얼어붙은 자입니다.

감각이 마비된 불안, 그것은 고요하지만 가장 위태로운 정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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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리스펙토르의 불안: 해체 속에서 태어나는 과각성의 리듬

반면 리스펙토르의 불안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동합니다.

별의 시간의 마카베아는 존재를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어긋난 파동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녀의 문장은 깨지고 쉼표는 지나치게 늘어납니다.


그것은 불안이 몸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입니다.

이는 '교감신경의 과각성' 상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듯합니다.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가빠지는 감각은, 사실 무의식이 의식의 벽을 뚫고 나오려는 '존재의 분만' 과정입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리스펙토르에게 불안은 파괴가 아니라 통로입니다.


언어가 무너질 때 비로소 몸의 리듬이 명료해집니다.

카뮈의 불안이 의미의 냉각이라면, 리스펙토르의 불안은 감각의 폭발입니다.



III. 불안은 존재가 자신을 다시 쓰는 신호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신체적 불안. 명치가 막히고 심장이 지나치게 두근거리는 현상은 결코 고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카뮈의 정적에서 벗어나고 리스펙토르의 어긋난 진동을 바로잡으려는

생명의 리듬을 회복하려는 몸의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체 심리학(Somatic Psychology)에서는 불안을 '에너지의 정체'로 봅니다.

카뮈처럼 너무 억눌러서 굳었거나, 리스펙토르처럼 너무 분출되어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카뮈의 밤을 지나고 있다면 멈춘 리듬을 깨워야 합니다.

가벼운 산책이나 따뜻한 목욕처럼 아주 작은 감각부터 다시 느껴보세요.

마비된 신경계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 우선입니다.


리스펙토르의 밤을 지나고 있다면 흩어진 진동을 모아야 합니다.

깊은 날숨을 통해 과잉된 에너지를 밖으로 흘려보내세요.

요동치는 파동을 호흡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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