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이야기 4

캘리포니아 드리밍(2)

by 요아킴

오후에 방문할 두 번째 방문지는 CPUC라는 약자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공공사업규제위원회였는데, 6명의 위원이 운영하는 주 전체의 공공사업을 관장하는 최고의 행정기관이었다. 여기에는 최용석이 노조 국제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전미전력노조(UWUA) 출신의 칼 우드라는 사람이 노조 몫의 위원으로 있었다. 공동연구단의 해외기관 방문 계획을 짜면서 최용석은 제일 먼저 칼 우드에게 연락했고, 칼은 공동연구단의 방문 계획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다른 일행들은 도대체 누가 CPUC를 섭외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현장 엔지니어 출신의 칼 우드는 한 마디로 흙수저 출신이었다. 배전전공으로 전력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어느 정도 현장 경력을 쌓아나가다가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우연히 노조활동에 참여했다. 독서가 많았고 사려 깊던 그는 곧 현장 간부가 됐고 이후 전미전력노조의 지부장이 됐고 곧이어 노조 중앙의 정책 간부로 성장했다.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개편이 불어닥치자 활발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고 이어서 전미전력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됐고, 민주당 주지사에 의해 캘리포니아 공공사업규제위원회의 노동계 대표 커미셔너로 추천을 받았다.


미국의 각 주 정부에는 주 내부의 모든 공공사업을 규제하는 규제위원회가 있다. 보통 퍼블릭유킬러티커미션이(PUC)라고 부르는 이 위원회는 3명에서 7명 사이로 구성하는데, 직접 주민이 선출하는 주들도 있고 캘리포니아처럼 각 분야를 대표하는 위원을 주지사가 임명하는 주들도 있다. 선출 또는 임명된 커미셔너들은 소비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주 정부의 공공정책을 심의하는 꽤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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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중심부 밴네스 애비뉴에 있는 CPUC 본부는 정부 기관 건물처럼 보이지 않는 하얀색 건물이었다. 연구단 일행은 약속 시각에 맞춰 현관에 들어섰다. 현관을 지키던 경비가 간단한 금속탐지기로 간단한 검색을 마친 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일행이 4층으로 올라가니 지중해식 건물의 전형적인 목조건물 복도가 나타났다. 건물의 외벽이 그랬듯이 내부 역시 온통 흰색이었다. 바닥의 붉은 양탄자가 더 돋보였다.


비서의 안내로 칼 우드 커미셔너 방에 들어서자 아이언맨의 감독으로 유명한 존 파브로를 닮은 우드가 얼굴 가득 웃음을 안고 반갑게 최용석을 맞이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촌지간처럼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다른 일행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노조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이 이런 장관급과 이렇게 친하다고? 이런 표정이 다른 연구위원들과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남을 최용석은 느꼈다.


사실 이번 연구단의 전체 일행은 16명에 달했다. 핵심적인 공동연구단 연구위원 6명에 노사정위 공익위원 3명, 전기위원회 사무국장인 산업부 과장 1명, 역시 산업부 사무관 1명, 한전의 구조조정실장, 부장, 과장, 전력노조 국장 1명, 그리고 최용석. 6인 연구위원의 현지조사에 겸사겸사 따라나선 사람들이 10명이나 됐다. 물론 모든 비용은 한전이 부담했다.


“캘리포니아 전력자유화는 완전한 실패입니다. 거대한 사기극이지요.”

갈색 참나무 테이블을 두고 연구단과 마주 앉은 칼 우드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정부 측 위원인 신중진 교수가 우드 커미셔너의 너무나 단호한 주장에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시장 설계가 잘못됐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요?”


칼 우드는 신 교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배전회사의 전기 소매가격이 묶여있다는 점을 악용해서 발전회사들이 고의로 전기생산량을 줄였어요. 명백한 불법행위였지요. 이건 재난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자유화는 출발부터 실패가 예견됐습니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 사이의 정치적 대립도 있었다는데... 어떤 내용이었나요?”

역시 정부 측 김창석 교수가 말을 이었다.


“사실 전력회사를 부문별로 나누고 발전소를 시장에 내놓은 식의 구조개편에 대해 주 정부들은 대부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연방정부가 이런 자유화를 강요했습니다.”

우드는 커피잔을 잠시 내려다보다 한 모금 커피를 홀짝였다. 그리고 다시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유화를 이해하려면 1973년의 석유파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시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은 후 연방의회는 1978년에 공공산업규제법, 즉 PURPA를 만드는데, 이게 연방 차원의 에너지 기본법이며, 이 법에 따라 각종 공공산업에 자유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드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양손 깍지를 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후 미국의 항공, 은행 등 여러 산업에 자유화 바람이 불었습니다. 물론 거대 기업의 독점이나 과점이 옳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공공산업에서 자유화는 분명 긍정적 결과를 낳았지요. 하지만 전기는 좀 다릅니다.”

“전기가 다른 공공산업과 다르다는 것은 무슨 말이지요?”

안현필 교수가 물었다.


“기본적으로 전기는 수요탄력성이 없습니다. 즉, 가격이 올라도 다른 대체품으로 대체할 수도 없고 사용량을 줄이기도 곤란합니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며 저장이 안 되지요. 공급에서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그런 특수한 서비스라는 겁니다. 전기를 일반 상품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특성상 자유롭게 거래하기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그럼 전기는 특정 기업이나 기관이 지역을 독점하고 생산하고 공급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지금 세계적으로 전력을 자유롭게 국경을 넘고 지역을 넘어서 거래하는 새로운 시대로 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듣고 있기만 하던 전기위원회 문재송 과장이 우드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전력시장 자유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헤징이나 장기수급계약 등과 같은 안전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베스팅 컨트랙트도 하나의 방법이고요. 전기의 물리적 특성인 수요탄력성이 낮은 점을 보완하는 그런 제도 말입니다. 캘리포니아 시장에는 아예 그런 보완책이 없었습니다. 동부의 PJM 시장은 현물시장 중심이 아닌 장기계약 중심으로 시장을 운영했으니 그나마 성공적으로 운영이 됩니다.”

칼 우드의 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1992년, 연방 하원에서 전력산업을 자유화하자는 법이 통과되자마자 가장 신속하게 움직인 곳이 캘리포니아였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군수업체, 영화, 오락 등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산업이 집중한 곳으로 그만큼 임금 수준과 물가가 높았다. 또 주의 절반 가까이가 사막기후였기에 건조하고 연중 기온이 높아서 냉방에 필요한 전력 수요 역시 높았다. 건조한 기후 때문에 환경규제도 심했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면 미국에서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곳이 바로 여기였다.


당시까지 캘리포니아에서는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를 중심으로 거대한 3대 전력회사가 지역별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요금을 받는 배전/판매까지 독점하고 있었으며 시골 지역에는 주 정부 또는 지방자치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전력회사가 난립한 상태였다. 당시 주의회는 연방정부의 자유화 조치를 환영하며 주 내부의 모든 전력산업을 자유화하는 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그것이 1996년이었다.


이 자유화 법은 우선 3대 전력회사가 전력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발전소를 최소 절반 이상 발전전문기업들에게 매각하고, 배전과 판매 역시 독점을 풀어 누구나 새롭게 전력산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등 주요 지역을 독점하던 3대 전력회사들이 발전소를 시장에 내놓자마자 엔론, 에이이에스, 서던컴퍼니 등 발전소 운영에 특화된 기업들이 웃돈을 주고 전력회사들의 발전소를 싹쓸이하다시피 사들였다. 유지보수비용이 많이 들고 골치가 아팠던 발전소를 팔아치운 전력회사들은 즐거우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유는 4년 뒤에 모두 알게 됐다.


전력회사들이 발전소를 다 팔아치운 후 새로 생긴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은 처음에는 매우 잘 돌아갔다. 발전전문회사들은 전력 입찰을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추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전력회사들이 사들이는 전력 도매가격은 낮아졌고, 이들이 소비자들에게 부과하는 소매요금도 떨어지고 있었다. 주정부는 너무 빨리 전기요금이 떨어지면 전력회사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1998년부터 최소 3년간 전기소매가격을 일정 수준에 묶어두는 조치를 했다. 발전소끼리의 경쟁으로 전기요금은 낮아지고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2000년의 이상 한파가 몰려올 때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바보 같은 캘리포니아 공무원들은 시장이 급격하게 무너진다는 예상을 전혀 못 했습니다.”

칼 우드는 일행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기가 실시간 생산과 소비가 되고 저장할 수 없기에 수요와 공급 불균형 현상이 벌어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를 대비해서 현물 입찰이 아닌 선물시장, 발전소와 배전회사 사이의 직접거래 등과 같은 보완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우드 커미셔너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 이유가 뭔지 우리도 궁금합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었다는 게 이해 안 되네요.”

김창석 교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되물었다.


“너무 서두른 겁니다. 과거 통신과 항공산업 자유화, 구조개편 성공의 기억이 너무 좋았지요. 아시다시피 캘리포니아는 리버럴한 동네입니다. 민주당이 우위에 있지요, 정치적으로. 저 역시 민주당 주지사가 지명했고요. 문제는 리버럴한 사람들은 때로는 순진한 면이 있어요. 영악한 사업가들의 잔머리를 못 따라가지요. 허허.”

칼 우드 커미셔너는 씁쓸한 웃음을 뱉었다.


사실 그랬다. 모든 것이 정상일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하지만 한 군데에서 삐걱거리는 모순이 터지면 그때야 진실이 드러난다. 캘리포니아가 그랬다.


2000년 겨울의 이상 한파로 남부 캘리포니아 전력 수요는 급하게 늘어났다. 당연히 전력회사들이 전력시장을 통해서 사려는 전기의 양도 늘어났고 도매가격은 조금씩 올라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발전소 하나가 고장이 났다. 원래 하루 전에 발전소가 다음 날의 전력생산량을 입찰하고 전력회사의 구매량과 서로 부합하는 선에서 가격이 결정되며, 이에 따라 해당 날짜에 입찰로 팔린 양만큼의 전기를 만들어 보내야 하는 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급히 당일 전력생산을 하지 않고 대기 상태로 있던 발전소로 연락이 왔다. 전력수급에 문제가 있으니 급히 발전기를 가동하라고.


모든 상품이 그렇듯이 급하게 구하게 되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리고 쉬고 있는 발전소는 순식간에 가동되어 전기를 만들 수 없다. 종류에 따라서 몇십 분에서 몇 시간 시간이 필요하다. 특정 가격에 전기를 받기로 돼 있던 전력회사는 난감한 상태였지만 어쩔 수 없이 올라간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받아야 했다. 이런 예상 못 한 변동을 대비해서 고안된 거래제도가 베스팅 컨트랙트다. 마치 갑옷을 입듯이 전기를 사고파는 양측이 서로 약속을 못 지킬 때 약속을 어기는 쪽에 일종의 벌금을 물리는 제도이다.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에는 이런 제도가 없었다.


실시간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전력시장에는 이와 같은 현물시장의 위기를 막기 위해 발전소와 전력회사가 일정 기간 전기를 사고파는 장기계약을 맺기도 한다. 이를 쌍무계약이라고 하는데 캘리포니아 공무원들은 이 제도 역시 만들지 않았다. 발전회사와 전력회사가 이런 안정적인 쌍무계약에 만족하게 되면 실시간 현물시장에서의 진정한 경쟁이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기의 특성을 너무 몰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연한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도매시장가격이 출렁이는 것을 본 다른 발전회사들도 뭔가 문뜩 깨달음을 얻었다. 내일 우리 발전소가 갑자기 중단되면 또 도매가격은 뛰어오를 것이고 그러면 다른 발전회사가 예상보다 더 큰돈을 벌고, 그다음 날 그 발전회사가 발전기를 갑자기 세우면 우리 발전소가 보내는 전기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사람들은 영악하다. 일종의 묵시적 담합이 서서히 이루어졌다.


2000년 12월부터 시작된 이런 담합은 2001년 1월이 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도매가격은 두 배, 세배 뛰어올랐고 전력공급이 우선인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은 급한 대로 예비 발전소들을 깨우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문제는 배전을 담당한 전력회사들이었다.


애초 경쟁으로 도매가격이 너무 내려가고 전력회사들이 떼돈을 벌까 봐 묶어 놓은 전력 소매가격이 반대로 전력회사의 목을 죄는 방향으로 칼날을 거꾸로 돌렸다. 시장에서 사는 도매가격만큼 소매요금을 못 올린 전력회사들은 날이 갈수록 손해가 쌓이기 시작했다. 널뛰는 국제유가만큼 전기요금을 못 올려 파산으로 가고 있는 오늘날 한전의 경우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중부 캘리포니아를 담당했던 퍼시픽 가스 앤드 라이트, 남부 캘리포니아 대부분을 독점했든 서든 캘리포니아 에디슨이 파산상태로 내몰렸다. 물론 여기에서 예외였던 곳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와는 달리 샌디에이고에서는 지역의 소매요금을 완전히 자유화했다. 지역 전력회사인 샌디에이고 가스 앤드 라이트는 도매가격이 오른 만큼 소비자들의 소매요금을 올렸다. 자영업자들은 영업을 중단했고 가정에서도 급등한 전기요금에 비명이 나왔다. 총체적 혼란과 파국 속에서 주 정부는 전력시장에서의 전력거래를 일제히 중지시키고 주 정부 예산을 긴급히 투입해서 전기요금을 안정시키려 했다. 시장은 중단되고 정부가 개입하는 자유경쟁과는 정반대 사태가 벌어졌다.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사건은 많은 교훈을 줍니다. 작게는 시장 설계의 실패입니다만, 더 크게 보면 전기와 같은 필수공공서비스는 일반 상품처럼 자유시장에 맡기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캘리포니아 정부가 예산을 퍼부어서 발전소 운영권을 확보했고 파산해 버린 퍼시픽 가스 앤드 라이트는 사실상 주 정부가 인수했습니다. 채권을 발행해서 말입니다.”

우드 커미셔너는 캘리포니아 시장 실패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정부 측 위원들과 전기위원회 측 참석자들은 뭔가 반박해 보고 싶었지만, 막상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려던 것과 거의 유사한 시장이 눈앞에서 실패한 사례를 보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강산 실장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한국 정부의 계획에도 시장 불안을 방지하려는 다양한 시스템이 들어 있습니다. 쌍무계약은 장기적으로 허용될 계획이며 베스팅 컨트랙트도 구상 중입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배전을 나누고 도매시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입니다.”


이강산 실장의 말이 끝나자 우드 커미셔너가 되받았다.

“핵심은 그 어떤 보완 장치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전력산업에 치명적인 오류가 없다면 굳이 위험한 시장화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투자를 촉진하거나 다른 혁신이 필요하다면 발전부문 일부를 개방해서 민간발전소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굳이 캘리포니아와 같은 현물시장을 만들어서 산업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지 마시기 충고드립니다.”


1시간이 넘는 대화가 캘리포니아 시장의 실패 쪽으로 자꾸 나가자 정부 측 위원들은 불편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무리할 때가 된 것으로 최용석은 생각했다.


이근석 단장이 나섰다.

“그래요. 좋은 충고 잘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듣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멀리 왔습니다. 전력산업 개혁이 잘된 곳도 있을 것이고 잘못된 곳도 있겠지요. 그런 사례를 다 봐야 우리는 제대로 할 수 있겠지요.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캘리포니아 퍼블릭유틸리티 커미션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정부와 전기위원회 사람들은 우드 커미셔너의 일방적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전과 노조 측 사람들은 내심 듣고 싶던 말들을 들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표정관리를 열심히 했다. 그렇게 공동연구단의 하루 일정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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