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대와 에너지 공급망
트럼프가 돌아온다.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인기가 바닥을 친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을 대표해 대선에 출마했지만, 경제 지표가 좋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해리스라는 개인이 보여 줄 카드가 마땅치 않기에 트럼프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트럼프라는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서 현실적으로 그렇다.
미국 인구의 70% 가까이가 백인이고, 이 중 다수가 대학 문턱에도 못 가본 저소득층이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많다는 점에서 트럼프가 유리하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 대통령이 될 때도 모두 힐러리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잘난 집안에서 태어났고 똑똑하고 영부인까지 지낸 힐러리에 대한 반감이 이 소외계층을 트럼프로 몰리게 했다. 트럼프는 백인 소외계층을 대신해 시원스럽게 마음대로 떠들었다. 그게 매력이었다.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을 이끈 제45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국내적으로는 경기침체, 경제위기, 불평등의 심화 등으로 미국국민들에게 누적되어 온 불만을 해소하는 돌파구로 내세운 반이민, 대규모 감세, 보호무역 등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대규모 관세인상, NAFTA, 한미 FTA 등과 같은 다자간 경제협력 재협상 또는 폐기, TPP철회 등과 같이 다자주의시대에서 국가 중상주의로의 회귀가 있었다. 이와 같은 미국의 돌발적인 정책 변경은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휩싸이게 했다. 그런 트럼프의 시즌 2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민의 다수가 트럼프의 이와 같은 노선 변경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고 미국 대외정책의 변경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현재까지 세계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소 양대 초강대국의 냉전, 그리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붕괴 이후의 다극화 시대로의 전환에 서 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곳곳의 동맹국에 지상군과 공군 기지를 설치하고 또 거의 모든 중요한 바다에 항공모함을 띄우고 세계 경찰 노릇을 하고 있다. 미국의 대적 불가한 군사력은 결국 정치적 영향력을 전 세계에 퍼뜨리는 역할을 하면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놓고 미국의 패권적 제국주의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수에즈운하와 파나마해협을 지키는 미 함대들 덕분에 세계의 해상수송망은 안정을 누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세계를 양분하던 냉전 구조가 허물어지면서 미국만 초강대국 구실을 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미국 패권의 관심은 소련이라는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미국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지역 내의 조그마한 저항세력들로 옮겨갔다. 소위 말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실체도 불분명했고 그 성과 역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알카에다, IS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북한과 쿠바와 같은 사회주의 유물세력 등과의 피곤한 다툼에 미국 시민들이 지치기 시작했다.
미국은 국내 문제로도 충분히 버겁다고, 왜 세계의 질서를 잡고 동맹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미국만 힘들게 뛰어다니느냐는 것이 미국시민들의 요구이다.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면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지난번 임기 중에서 우리는 트럼프의 철저한 자국중심주의를 목격했다. 트럼프는 동맹의 이익을 위해 미국이 피 흘릴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동맹은 미국의 시혜를 바라지 말고 그만큼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 트럼프의 요구이다. 트럼프는 세계 각지의 미군을 철수해서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항모의 숫자도 줄일 것이다. 미국의 보호를 받고 싶으면 그만큼 돈을 내야 할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것이 미국 유권자들의 요구이다.
미국은 태평양 서안과 인도양 방면의 안보에 일본의 역할을 증가시키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과 관계없이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중국을 봉쇄하는 것인데, 이 역할을 미국과 함께 또는 미국 대신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 역시 중동산 석유 의존도가 우리나라 못지않은 입장이므로, 해군력 강화를 통해 이 일대의 에너지 공급망 안정에 핵심 역할을 하고 싶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해상공급망은 수에즈 운하-호르무즈 해협-홍해-인도양-남중국해-동중국해의 순서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은 현재 미 해군 제5함대, 제7함대가 제해권을 확보하고 해상운송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이거나 또는 적대세력이거나 불문하고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해상운송의 질서 덕분에 세계의 공급망은 이어지고 있고 또 경제교류도 진행한다. 미국은 중동 석유 의존도는 20%에 머물고 있으며, 세일혁명 이후 석유수출국으로 변한 미국의 중동석유 의존도는 2040년이 되면 0%가 된다는 예측이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동에 대한 관심과 간섭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미국이 이라크를 끝으로 중동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미 함대도 본토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에너지 수송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이루어질 일도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와 재생에너지 문제는 더는 큰 이슈가 아닐 수도 있겠다. 적어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시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 앞에 타조처럼 눈을 감는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에너지전환을 완성하면 외국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낮출 수 있게 된다. 에너지 전환의 세계적 패권을 둘러싼 중미 사이의 심각한 패권경쟁과 미국 없는 홍해 바다의 중동산 석유 공급망의 위협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정치인, 공무원, 그리고 전문가들의 지혜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