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이야기 5

코파카나바의 포근한 밤바람

by 요아킴

리우데자네이루의 밤공기는 묵직했다. 골퍼들이 여름에 흔히 말하는 표현처럼 습기를 잔뜩 품은 리우의 밤공기는 말 그대로 무거웠다. 최용석이 코파카나바나 해변의 호텔 방에 들어간 시간은 정확히 저녁 9시였다. 덥고 습한 공기에, 상파울루 공항에서 3시간의 기다림, 그리고 다시 1시간 30분 리우까지의 비행…. 그리고 리우 공항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에 이끌려 애매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시내 구경, 저녁 식사……. 물먹은 종이 같은 몸을 침대에 던졌다. 그리고 잠에 빠졌다.


문득 눈을 뜨니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가벼운 타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 5시간이 넘게 잠에 빠져 있었다. 창가로 향해서 누가 이 시간에 노래를 부르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가벼운 파도 소리와 함께 리우 새벽의 맑은 공기가 최용석의 얼굴을 마사지했다. 저녁까지는 무덥다고 생각했는데 새벽의 공기는 참 깨끗하고 감미롭기까지 했다. 창밖으로 머리를 내미니 해변의 흰 파도가 어렴풋이 보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호텔 방은 25층, 꽤 높았다.


창밖을으로 내려다다 보이는 코파카바나 해변에 현지 젊은이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모래밭에 앉아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작은북 같이 생긴 악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것이 쿠이카라는 브라질 전통악기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살랑거리는 달콤한 바람 흥겨운 노랫가락, 내가 브라질에 온 게 맞는구나라는 생각이 새삼스러웠다.


조금 뒤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었다. 이게 뭐지? 이 시간에 내 휴대폰에 전화를 할 사람이 누구 지 하는 궁금증에 침대 위에 던져져 있던 묵직한 삼성 휴대폰을 집었다. 회사에서 공식 업무에 사용하는 조건으로 빌려온 국제로밍 전용 휴대전화기였다.


“여보세요?”

전화를 건 상대가 누군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한국말로 말했다.


“어, 나야 오빠. 지금 자는 시간 아니야?”

뜻밖의 목소리는 바로 서울의 아내였다.


본능적으로 시계를 보니 3시 20분. 정확히 12시간 시차가 나므로 서울 시각은 오후 3시 20분인데 왜 전화를 했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뭔가 일이 있구나. 그런데 순간 아내의 목소리가 매우 침착함을 느꼈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 알려 줄 게 있는데, 오늘 낮에 성원이가 응급실에 갔어.”

역시나. 뭔가 사고가 있었구나. 그런데 아내는 왜 이렇게 침착하지?


“그래? 무슨 일인데?”

혹시 무슨 사고인지, 어디가 많이 아픈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더는 열리지 않았다. 그런 단어를 입에 담기가 두려웠다.


“어. 오전에 또 열이 나길래 장승배기에 있는 소아과를 갔어. 그리고 약 처방받고 와서 약 먹고 자다가 갑자기 경기가 난 거야. 그래서 119를 불러서 강 건너 용산에 있는 중앙대병원으로 갔지. 지금은 괜찮아.”


만 네 살이 조금 모자란 아들 성원이는 작년부터 중이염을 앓아왔다. 가끔 이유 없이 보채고 울었는데 처음에는 동네 소아과에서 가벼운 처방을 받았다. 그러다 동네에서 소문난 소아과를 가니 단순 감기 같은 것이 아니라 중이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후 그 소아과에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증상이 많이 완화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경기가 오다니 알 수 없었다.


“그래? 많이 놀랐겠네. 지금은 괜찮다고?”


“그래. 의사 선생님이 상태를 좀 더 지켜보자며 며칠 입원하라고 하셨어. 지금은 활발하게 잘 놀고 있어.”


“다행이네. 애들은 원래 한 번씩 경기한다는데. 큰 병원이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 고생했고.”


“출장은 어때?”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열흘 더 돌아다녀야 집에 가는데. 뭐 다 괜찮아.”

서로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위로하면서 전화통화는 끝났다.


전화를 끊고 나서 최용석은 갑자기 잠 깨기 전의 꿈 생각이 났다. 전화가 올 때까지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일종의 악몽을 꾼 것이었다. 꿈에서 아들 성원이가 머리를 다쳤다. 붕대를 감고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던 것이 꿈 내용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예전부터 아내가 한 말이 있었다. 이상하게 최용석이 출장으로 집을 비우면 성원이가 아팠다고. 뭔가 미신 같은 이 현상은 성원이의 동생 둘이 더 태어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최용석이 집을 비우면 셋 중 한 명은 가벼운 감기라도 걸리곤 한 것이다.


나중에 귀국 후 아내가 최용석에게 물었다. 성원이 때문에 전화했을 때 시간도 새벽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놀라지도 않고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꿈 이야기를 했다. 평소 예지몽을 가끔 꾸는 아내도 놀라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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