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 이야기 6

브라질행 밤 비행기

by 요아킴

샌프란시스코 일정을 마친 공동연구단의 다음 일정은 저 멀리 브라질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 캘리포니아에서도 먼 것은 마찬가지였다. 공동연구단 일행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밤 10시에 출발하는 밤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로 일단 가게 됐다. 마이애미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상파울루로 간 다음 다시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하는, 갈아타는 시간을 다 합쳐서 약 16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이동이었다.

현장조사에 브라질을 포함한 것은 순전히 최용석의 아이디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브라질도 전력산업 자유화의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미의 자원 부국 브라질은 전체 전기의 60% 이상을 수력에서 얻는다.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막대한 수자원을 이용해서 가장 친환경적이고 저렴한 방법으로 전기를 만들고 있었다. 국영전력회사인 일렉트로브라스가 전국 대부분 지역의 수력 및 기타 화력발전소을 운영하며 전기를 생산하고 역시 같은 회사의 송전망을 통해 전국에 전기를 공급한 것이 자유화 이전의 상황이었다. 배전은 일부 지역에서 지역별 공기업 및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배전회사들이 고객들에게 전기를 지역별 독점으로 전기를 팔았다. 199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자유화의 바람은 브라질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1995년에 전력산업 자유화 법안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지역별 배전회사 민영화가 시작됐고, 1998년부터 일렉트로브라스의 발전소들도 하나씩 민간에 팔려나갔다. 특히 듀크에너지, AES, 트랙터벨 같은 미국계를 중심으로 하는 발전전문회사들은 브라질 전력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소를 인수했다. 독점공기업의 주도권이 작아지면서 전력시장 전체를 통제하는 독립규제기관인 국가전력청(ANEEEL)이 발족했고 곧이어 MAE로 불린 전력도매시장이 문을 열었고 경쟁시장의 핵심인 독립송전운영회사 ONS도 생겼다. 바야흐로 전기가 상품처럼 거래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자유화를 추진했던 보수 정권은 발전부문 경쟁을 통해서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볼리비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해서 가스발전설비를 대거 확충할 계획이었다. 전체 전기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던 수력 자원은 때때로 가뭄이 찾아오면 전력생산량이 급감하는 전력위기를 불러왔기에 발전설비 다양화의 차원에서도 수력발전의 불안정을 보존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많은 곳에서 그랬듯이 민영화와 자유화 초기의 브라질 전력산업은 외국자본 유입과 경쟁의 일정한 효과 덕분에 활기를 띠는 듯 보였다.


그런데 브라질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규 천연가스 발전설비의 건설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1997년 이후 2~3년간 예기치 못했던 가뭄이 계속됐고, 그 결과 2000년 들어서 브라질 남서부의 댐 저수율은 위기 수준인 30% 근처까지 떨어졌다. 이 가뭄은 2001년에 들어서도 계속됐고 브라질 정부는 되자 연방정부는 댐 수위를 낮추면서 발전량을 증가시키는 한편 절전으로 위기에 대응한다는 비상대책을 실시하였다.


브라질 정부의 비상대책은 2001년 5월에 결과적으로 브라질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기업의 생산 활동은 축소했고 자영업자들은 영업시간 단축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심각해지며 동시에 정부의 전력정책에 대한 브라질 국민의 불만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2002년 1월 이타이푸댐과 연결된 송전선로 이상으로 브라질 최대 도시인 상파울루를 포함한 남서부 지역에서 발생한 광역정전은 카르도스 대통령 정부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같은 해 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조합 출신 룰라가 당선되면서 브라질 전력산업 자유화에 급제동이 걸렸다. 노조 출신답게 전력산업을 비롯한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 일체 중지를 선언했다.

blackout-101~_v-videowebl.jpg


최용석이 2003년 봄, 세계 에너지와 화학 산업 노동조합들의 연맹체인 국제화학에너지연맹이라고 불리는 ICEM 회의에서 조세라는 브라질 참가자를 만났다. 그리고 둘은 세계적인 전력산업 자유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 브라질은 심각한 가뭄과 더불어 전국적인 정전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고, 조세는 이와 같은 사태의 중요한 이유는 가뭄 그 자체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무분별하게 진행 된 전력산업 분할과 민영화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진 다음 공동연구단 해외조사 현장을 고민하다가 최용석은 조세에게 연락했다. 당장 브라질로 오라는 답을 받았다.

작가의 이전글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이야기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