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 이야기 7

브라질의 현실

by 요아킴

한국과의 통화 후 그대로 밤을 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해가 밝았다.


1월 8일 아침, 연구단 일행은 첫 방문지로 결정한 브라질 국영전력회사인 일렉드토브라스로 향했다. 일렉트로브라스에서는 룰라 정부가 임명한 로베츠코 페리라 아주로 부사장이 일행을 맞이했다. 아주로 부사장은 브라질 전력사업의 상황과 특히 민영화 과정과 이에 대한 평가를 주제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핵심은 브라질은 경제성장에 따라 전력설비 건설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임 정부는 무리한 자유화와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민영화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주로 부사장은 룰라의 측근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노동조합 위원장 출신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그를 도와 전력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산업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고 주장한 대선 캠프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노조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일렉트로브라스에서 송전 쪽 엔지니어로 일한 사람으로서 보수당 정부의 전력산업 민영화에 반대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대선 기간 그는 룰라의 참모로 활동했고, 룰라가 대통령이 되자 부사장으로 회사 경영자가 됐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회의실에 불이 켜졌다. 커튼을 열어젖히자 리우데자네이루의 여름 햇살이 가득 들어온 회의실은 단출하지만 조금 엄숙해 보였다, 연구단 일행은 짙은 갈색의 길쭉한 오크 원목 테이블을 놓고 아주라 부사장과 마주 앉았다.


김창석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브라질은 정권이 바뀐 다음 지난 정부가 진행했던 민영화를 취소하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정부에 따라 바뀌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아주로 부사장은 김 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1“저는 개인적으로 전력산업은 자연독점 산업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정 부분 전력시장이 개방되고 또 자유화도 진행된 만큼 과거의 완전 독점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룰라 정부는 기존의 자유화 기조를 바꾸려고 합니까? 혹시 대통령이 노조 출신이라서 이념적인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김 교수의 이어진 질문에 아주라 부사장은,

“뭐 그런 것이 없다고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념을 떠나 브라질 전력시장 자체가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파 정부가 계속 이어졌더라고 시장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문제는 우파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더 큰 자유화로 고치려 할 것 같다는 겁니다. 열이 나는데 열을 더 내서 고치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지금 새 정부는 해열제를 투여하려 합니다.”

라고 답하면서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명자 교수가 끼어들었다.

“브라질 전력시장이 실패했다면 이유가 뭔가요?”


최용석으로부터 일렉트로브라스 부사장을 섭외했다는 말을 듣고 룰라가 임명한 사람이기에 민영화에 반대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시장 실패라는 말을 직접 들으니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근석 단장에게 부사장의 생각을 똑똑히 듣게 하고 싶었다.


“브라질 전력시장의 목표는 전력설비 해외매각이었습니다. 자유화나 민영화를 통해서 국가나 소비자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겠다는 생각보다 국가 부채 해결을 위한 매각이 우선이었으니 출발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그리고 일부 국가 전력설비 매각 이후에도 부채는 줄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게 실패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아주로 부사장의 단호한 대답에 김명자 교수와 안현필 교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래, 바로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다, 신자유주의적인 자유화가 필연적으로 민영화를 불러오고 그게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말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국내에서 단편적인 뉴스나 학술 자료만으로 접하던 해외 전력산업 자유화, 그리고 이 무지막지한 구조개편의 실상을 알리고 싶었다.


“브라질은 수력발전량이 전체의 절반이 넘습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해와 가뭄이 드는 해의 발전량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수력에서 얼마나 전기가 나오냐에 따라 가격도 변하겠지요. 최년 몇 년간 강에는 수량이 풍부합니다. 석탄이나 가스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와 수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의 가격이 비교가 안 됩니다. 민영화된 일부 화력발전소들은 아예 가동을 중단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만약 가뭄이 든다며 상황은 반대가 되겠지요. 제 말은 이런 브라질의 현실을 보면 국가에 의한 자연독점이 상황에 따라 전력수급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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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라 부사장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다. 강수량에 따라 전력가격이 요동치는 브라질에서는 발전소끼리의 경쟁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좀 전에 브라질 정부가 부채를 갚기 위해 발전소 민영화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논란은 없었나요? 그리고 해외매각으로 나라의 빚을 갚았나요?”

안현필 교수의 질문에 아주라 부사장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전 정부는 발전소와 배전회사 민영화를 동시에 진행했지요.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의회의 승인을 건너뛰었습니다. 불법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가 밀어붙였어요. 물론 사후에 의회 인준 절차를 밟고 입법도 되기는 했지만, 너무 성급하게 진행됐습니다. 문제는 다들 아시겠지만, 자유화나 규제철폐는 한번 시작하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정부에게 새로운 정책제안을 했습니다.”


“자유화가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제가 알기에는 브라질의 민영화 이후 전기요금도 낮아지고 전력수급도 안정됐다고 하던데요?”

신중진 교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가르치던 신 교수는 원래 한전 출신이었다. 회사 생활 중 석사와 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교수로 변신했다. 그는 전기엔지니어로서 한전의 독점이 싫었다. 전력산업도 변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한전이라는 공룡이 전력산업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는 독점은 현실 안주와 무사안일을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그게 한전의 폐쇄적이고 나태한 기업문화로 나타나고 이는 산업 자체의 발전을 막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자유화가 번지는 이 시점이 한전의 독점을 허물고 전력산업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 연구단의 일원이 됐다.


“물론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까 설명해 드린 것과 같이 최근에 풍부해진 수량 때문입니다. 수력발전량이 늘어나고 자연히 요금은 안정됐습니다. 자유화와 경쟁체제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지요. 그리고 브라질의 전력설비는 지금까지 모두 브라질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어졌습니다. 이런 설비를 민간기업이 가져가면 그 자체가 특혜지요. 민간기업이 번 수익은 주주들이나 기업가들의 주머니로 들어가지는데 반해서 국영기업이 벌어들인 수입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두 기업의 성격은 이렇게 다릅니다.”


아주로 부사장은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정부에게 했던 새로운 제안이라는 것은 간단합니다. 전력산업을 원래 상태로 돌리자는 겁니다. 브라질의 강, 특히 아마존강 같은 경우 상류, 중류, 하류 고도가 다릅니다. 이에 따라 수량과 수압도 다르고 이를 종합적으로 잘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고 수자원을 활용하려면 결국 중앙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브라질 전력산업이 다시 공기업의 통제로 들어와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이유입니다.”


사실 토론을 더 해 봤자 새로울 것도 없을 것으로 보였다. 아주로 부사장은 확실한 민영화 반대론자였다. 연구단의 노조 측도 정부 측도 더 물어볼 내용이 없어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문재송 과장이 질문했다.


“부사장께서는 지금까지 주로 발전소 민영화 쪽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발전소들이 한전의 자회사로 분리만 됐지 민영화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도 무조건적인 발전소 민영화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발전시장 개방으로 민간기업의 참여를 원합니다. 그래야 연평균 3% 이상씩 늘어나는 한국의 전력소비량에 맞추는 발전소 건설이 가능하니까요.”


잠시 말을 멈추고 앞에 놓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문 과장은 질문을 이어갔다.

“주제를 바꿔서 발전이 아닌 배전부문의 분할과 자유화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원래 브라질은 나라가 크기 때문에 배전은 지역별로 나누어져 있었지요? 다수의 발전회사와 배전회사가 현물시장, 즉 전기를 입찰로 사고 팔면 전체적으로 시장의 긴장감이 생기고 가격 인하 요인도 생기고,,, 그래서...결론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과장을 향해 몸을 돌린 아주라 부사장은,

“이론적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요, 전기는 좀 달라요. 현물시장이 위험합니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벌어지고... 다들 아시는 그런 내용입니다. 다수의 기업이 경쟁하는 것도 좋지만 전기는 장기계약으로 안정적으로 발전소와 배전회사가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리고...배전회사의 숫자도 적을수록 좋습니다. 전기는 자연독점산업입니다.”

라고 말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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